[극단 예인방 ‘우리도 꽃이었다’] “장애인도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광주일보 2026. 3.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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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바퀴가 무대 바닥을 천천히 가른다.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장치 대신 한 사람의 삶이 조용히 무대 위에 선다.

"이 무대엔 연기가 없습니다. 오늘은 '사람'이 섭니다."

그는 "장애를 설명하려는 순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다"며 "이 공연은 장애를 보여주기보다 한 사람의 삶을 무대 위에 올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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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교육청 장애인식개선 일환
장애인이 주인공인 옴니버스 연극
지체장애인 등 무대 올라 삶 이야기
오늘 무안 남도소리울림터서 공연
휠체어 바퀴가 무대 바닥을 천천히 가른다. 말을 대신하는 손짓이 허공에 길을 만들고, 잠시 흐르는 침묵조차 장면의 일부가 된다. 극적인 사건이나 화려한 장치 대신 한 사람의 삶이 조용히 무대 위에 선다. 관객은 이야기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삶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다.

장애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연극 ‘우리도 꽃이었다’가 24일 오후 4시 무안 남도소리울림터 무대에 오른다. 이번 무대는 전남도교육청이 추진하는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전문예술극단 예인방이 주관하고 나주변화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협력한다.

“이 무대엔 연기가 없습니다. 오늘은 ‘사람’이 섭니다.”

작품은 뇌병변·지체·청각·지적 장애를 지닌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됐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에필로그까지 총 10개의 장면이 이어지며, 각 장면은 서로 다른 삶의 시간과 감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장애를 소재로 삼았지만 특정한 설명이나 교훈을 앞세우기보다 배우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와 몸짓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 장면은 전동휠체어를 탄 박상준 배우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는 느린 말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저는 말이… 조금… 느립니다. 글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누구처럼… 일하고, 사랑하고, 웃고… 싶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한마디씩 이어지는 그의 고백은 장애를 넘어 한 사람의 일상과 바람을 또렷하게 전한다.

세 살 때 청력을 잃은 화가 박진은 무대 위에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말 대신 손짓과 표정, 그리고 캔버스 위에 쌓여 가는 색채가 그의 시간을 대신 설명한다. 관객은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언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삶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장애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극 ‘우리도 꽃이었다’가 24일 오후 4시 무안 남도소리울림터에서 펼쳐진다. 배우들이 공연 연습을 하는 모습(위). 연극 ‘우리도 꽃이었다’ 지난 공연 모습. <예인방 제공>
김영아 배우는 부모님과 함께한 기억을 따라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장애를 지닌 개인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자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 그 속에서 겪어 온 고통스럽고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차분한 어조로 이어진다. 그의 이야기는 장애를 특별한 사례가 아닌 일상의 관계 속 이야기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밖에도 시각장애를 안고 살아온 이영자 배우, 자립을 선택한 홍지영·김애희 배우 등 총 10명의 장애 배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무대에 선다. 누군가는 세상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의 선택을 되짚고, 또 다른 배우는 사고 이후 달라진 삶의 방향을 고백하거나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한다.

연출을 맡은 배우이자 예인방 이사장 김진호는 배우들의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해 무대의 현실성과 진정성을 높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는 “장애를 설명하려는 순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다”며 “이 공연은 장애를 보여주기보다 한 사람의 삶을 무대 위에 올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강의나 영상 중심으로 이뤄져 온 기존 장애 인식 교육 방식과 달리 공연예술을 통해 관객이 직접 공감의 시간을 경험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객은 배우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장애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삶으로 만나게 된다.

공연의 말미, 장원옥 배우는 관객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제 얼굴의 흉터도, 이 눈도 모두 제 삶의 일부입니다. 저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동정이 아니라 존중이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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