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집 벽에 걸린 민주화운동


조치원의 어느 순댓국집 벽에는 특별한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어느 날 식사하러 온 지역의 노동자들이 우르르 나가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흥얼거리자, 식당 주인이 반색하며 “어 그 노래 나도 아는데” 호응했다. 그 주인이 원풍모방에서 일한 선배였다는 걸 알게 된 노동자 손님들은 이후부터 ‘전설의 누님’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지역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하는 동지가 되었다. 어느 날은 그들이 빈 액자를 하나 사 들고 와서 망치와 못을 찾았다.
“누님, 거 무궁화 마크 찍힌 자랑스러운 훈장을 왜 서랍에 넣어둡니까? 모두 볼 수 있게 걸어둡시다.”
그날부터 일흔을 바라보는 순댓국집 주인의 업장에는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가 식당 벽에 높이 걸렸다.
1982년 검찰, 구청, 노동부, 회사, 경찰로 구성된 ‘관계기관대책회의’에 의해 민주노조의 모범인 원풍모방 노조는 해체당했다. 이때 저항하다 구속되거나 해고된 560명은 국가가 배포한 ‘블랙리스트’로 재취업조차 차단당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로, 십여명을 빼고는 모두 여성이었던 수백명의 원풍모방 해고자들이, 해고보다 잔혹한 블랙리스트 등재자가 된 뒤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구술생애사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에 일부 담겨 있다.
구술정리 작업 중 자신의 삶을 꺼내기도 전에 복받치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쏟던 동료,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남편과 다투다 원풍모방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튀어나오자 “데모하던 ×이라 그랬구먼” 막말을 해 이혼 직전까지 갔다는 동료, 이 공장 저 공장에서 신원조회에 걸려 거듭 해고된 동료들, 자포자기로 결혼한 뒤 동향을 감시하러 찾아온 경찰 탓에 이른바 ‘전력’이 드러나 “빨갱이 ×이 들어와 집안 망하게 생겼다”는 시어머니와 그에 동조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떼 놓고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동료, 경찰이 헤어진 남자의 직장까지 찾아가 괴롭혔다는 동료의 이야기다. 국가 폭력으로 생존의 근거인 일터를 잃은 것도 모자라 존엄과 정의를 위해 싸웠던 시간이 ‘불순’과 ‘빨갱이’로 왜곡된 채 울분을 삼키며 살아왔다.
하지만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사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당시 국회의 이해찬, 노무현 의원 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민주노조가 파괴된 날을 기점으로 겨우 사오십명 남짓만 연락을 유지하던 법외 원풍노조는 과거사 재조명과 함께 전국에 흩어진 조합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연락을 끊었거나, 자식에게 혹여 피해가 미칠까 염려되어 숨죽여 살았거나, 남편에게 ‘원풍’은 언급도 하지 않고 “전에 공장에 좀 다녔어” 정도로만 말했거나, 원풍 모임에 가는 걸 마땅치 않아 하는 시부모를 피해 노조 자료를 장롱 밑에 숨겨두며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서로 연락해서 모였다.
끝내 연락이 닿지 않거나 “아들이 공무원이라서” 등으로 참여를 꺼리는 사람은 어쩌지 못한 채 157명이 순차적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원풍모방 노동조합 탄압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접수했다. 면담과 증빙자료 조사를 거쳐 원풍모방 노조 해체는 명백히 국가기관의 폭력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무궁화 마크가 선명한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가 각자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건 단순한 종이 한장이 아니었다. 명예의 복구이자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퇴근해 보니 등기가 와 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제일 먼저 원풍동지회 사무실로 전화를 건 동료들이 외쳤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원풍동지회에 훨씬 활기가 돌았다. 모임 날마다 못마땅해하던 남편이 손수 운전해 데려다주었다는, 시가 식구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했다는 고백이 쏟아졌다. 아내가, 며느리가, 엄마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민주화운동가라지 않는가. 동료들은 비로소 가족에게 슬프고도 반짝였던 ‘청춘의 빛’을 꺼낼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내용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하기로 했다. 5년여를 끈 재판 과정은 지난했다. 알고 보니 사법농단이 있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관련 단체·인사들과 연대해 돌아가며 법원 정문에서 손팻말을 들었다.
판결이 예정된 날, 작은 법정은 수십명의 원풍노조 사람들로 터질 지경이었다. 40여년 전의 원풍모방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그때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일한다는 동료, 양말 공장, 플라스틱 그릇 공장, 미용실에서 일하고, 새벽에 건물을 청소하거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죽은 사람의 마지막 밥상을 차리는 동료들이 하루를 비우고 법원으로 왔다.
드디어 원풍노조의 사건번호와 이름이 호명되었다. 수십개의 눈과 귀가 판사의 입에 꽂혔다. 재판장이 주문을 읽었다.
“피고 대한민국은….”
다른 내용은 서류로 남았을 뿐 들어오지 않았다. “피고 대한민국” 그 단어에 전율이 일었다.
원고로서 국가의 잘못을 응징하는 순간이었다. 억울하나 어쩌지도 못한 거대한 권력이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 맞다고 대한민국 법원이 판결했다. 그 자체로 수십년의 체증이 내려가는 심정이었다고 이날 참석한 모두가 말했다.
국가 폭력에 의해 죽고 병들고 간난신고를 거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완벽한 해결이나 보상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 세월을 어떻게 무슨 수로 보상한다는 말인가. 좀 치사한 이야기 같지만, 이 또한 지식인 피해자와 노동자 피해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차별은 평생 사라질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인증’은 큰 위로였다.
숭숭 구멍 뚫리고, 여기저기 쭈그러들고 사라지고 깨지면서도 대한민국의 사과를 받아낸 우리는 축제를 열었다. 그리고 40년 전 우리가 부른 노래를 자녀들과 함께 불렀다.

1982년 가을, 원풍노조가 해체되고 간부들이 구속된 뒤였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공단 노동자들을 중심에 두고 활동하던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에 잠시 머무르며 복직 투쟁을 하고 있었다. 조지송 목사가 나에게 구속자 문제를 세상에 알릴 전단지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고심하던 중 김준태 시인의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시의 한 구절이 번개처럼 와닿았다. 미술하는 이기연(현 질경이 우리옷 대표)씨와 의논해 구속자들의 사진을 넣은 그림을 그리고 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에서 활동했던 이미영씨가 곡을 붙인 노래를 넣었다.(그 노랫말에 김준태 시인의 시를 무단발췌했음을 밝힌다.) 전단을 배포한 뒤 나는 전주에서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던 박상희 목사의 집에 한동안 피신했다. 그 와중에 군산 지역 교사들의 독서 모임이 반국가단체 활동으로 조작되었던 일명 ‘오송회’ 사건 재판을 방청하러 간 기억도 있다. 이삼주쯤 지났을까, 별일 없겠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는 안타깝게도 내가 너무 음치라서 원풍 동료들에게 제대로 전파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후 가수 안치환씨의 비정규 앨범 ‘노스탤지어’(1997년)에 ‘작사·작곡 미상’의 민중가요로 수록되어 있어 반갑고 놀라웠다.
‘사라지고 부서진다는 건 단지 모양이 달라질 뿐’ 어디에서라도 살아 있다. 사십년 전, 희망의 다짐처럼 와닿았던 이 구절을 다시 부르며 우리는 서로를 칭찬한다.
“우리, 잘 살아왔어!”

장남수 | 경남 밀양 출생. 1958년생으로 열여섯살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신정야학에서 공부했다.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된 뒤 노동운동을 하며 글을 써왔다. 늦깎이로 검정고시를 거쳐 성공회대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제주도에 살면서 걷고 배우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1984년 ‘빼앗긴 일터’를 시작으로 ‘빼앗긴 일터, 그 후’ ‘파문’ ‘노동의 시간이 문장이 되었기에’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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