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나들이] 카프카의 '또 다른 밤'

2026. 3. 2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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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매우 민주적인 매체이다.

그러나 누구나 찍을 수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예술로서의 사진의 정의가 애매하게 보인다.

누구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사진찍기도 기호식품처럼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전시장 작품들을 둘러보며 사진과 공간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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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사진평론가

사진은 매우 민주적인 매체이다. 그러나 누구나 찍을 수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예술로서의 사진의 정의가 애매하게 보인다. 누구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사진찍기도 기호식품처럼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예술로서의 사진은 분명한 기준이 있다. 모든 지성의 영역이 그러하듯 사진도 보이는 만큼 보인다. 보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좋은 작품을 자주 만나보는 것이 보이는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달이면 두어 번 서울에 올라가 지인들의 전시장을 찾아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미리 생각해 둔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큰 전시장도 그렇지만 작은 전시장을 찾는 소소한 즐거움도 크다. 이달 둘째 주에 찾아간 삼청동 뒷골목 PKM갤러리의 백현진 전시도 좋았고, 충무로의 브레송 전시도 좋았다. 파리와 런던에 지점을 둔 한남동의 타테우스 로팍이나 리움미술관 옆 페이스 갤러리도 해외 갤러리이지만 갈 때마다 주목할만한 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공공미술관도 그렇지만 갤러리마다 기획자에 의해 전시의 방향도 달라지고 전시의 결이 달라진다.

사진을 작업하는 지인들이 활동하는 서울, 부산, 대구, 전주에 흩어져 있다보니 찾아가야 하는 전시장이 종횡무진이다. 지난주에는 가까운 전주 F갤러리에 초대된 '오래된 상상토기전' 오프닝에 가는 길에 전주 갤러리 AP9을 찾았다. 마침 '라인석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 속에 깊은 사유가 있다. 조셉 코수스나 소피 칼이 보여준 텍스트의 개념보다 더 시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자유롭다. 전시장 작품들을 둘러보며 사진과 공간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가 오는데도 긁히고 흔들리는 파스텔 블루는 이달의 상큼함으로 전시장이 환하다. 공간을 통해 만나는 시적 유희. 공간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재맥락화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전시다. 작가와 기획자의 섬세한 교감이 돋보인다. 함께 간 수요 코뮌 회원들의 눈빛이 빛난다. 2층의 텍스트가 있는 사진-그것도 갱지로 프린트된- 텍스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사진은 한 편의 시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거기 사유의 깊은 동굴에서 한 멋진 동물(?)을 보았다.

블랑쇼는 카프카를 '또 다른 밤'을 위해 굴(글)을 파는 동물에 비교했다. 작가는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굴을 파고들지만, 그것을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출구를 만들려고 한다. 카프카는 일기에서 자신의 불완전한 인간 조건을 모세의 삶에 비유한다. "모세가 죽기 전, 바로 전날에야 약속을 땅을 볼 수 있었던 사실은 믿을 수가 없다, 약속의 삶에 대한 기다림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한순간일 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모세가 가나안에 도착하지 못한 것은 그의 생애가 짧아서가 아니라 그의 삶이 인간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카프카에게 문학이란 사막을 떠도는 걸음과 같았다. 궁극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헤매고 탐색하는 그 자체가 문학을 향한 고유의 가능성이었다, 가혹한 현실을 통해서 자기 처지를 확인하고, 방황 속에서 오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다름 아닌 작가들이다. 어둠과 오류의 방황 속에서 헤매는 동안 겪게 되는 고통과 소외를 통해 인간의 조건과 예술에 대해 새로운 자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또 다른 밤'을 향해 나아간다. '또 다른 밤'은 낮에 연결된 침묵과 휴식의 밤이 아니다. '또 다른 밤'은 잠들지 못하여 깨어있는 밤이다. '또 다른 밤'에 잠들지 못해 깨어있으면서 듣게 되는 내밀한 밤의 소리,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만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예감하게 될 것이다. 이정희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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