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중동발 LNG 불안에 주목되는 민간터미널

7만톤이 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은 선박에는 사람 몸통보다 굵은 암(Arm·엘엔지선과 터미널 설비를 잇는 하역장치) 네 개가 연결돼 있었다. 엘엔지를 옮기는 암에서는 흰 김이 피어올랐고, 암 끝부분에 낀 성에는 바람에 눈처럼 흩날렸다. 엘엔지 하역 작업을 위해 배관과 설비를 서서히 냉각하는 과정에서 주변 공기 중 수분이 응결해 나타난 현상이었다.
“암 전체에 하얗게 성에가 끼면 섭씨 영하 162도 이하의 엘엔지가 배관을 통과하고 있는 거예요.” 지난 16일 전남 광양시 광양 제1엘엔지 터미널에서 김우헌 포스코인터내셔널 터미널운영그룹장이 제1부두에 접안한 엘엔지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엘엔지는 천연가스를 섭씨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체화한 연료다. 부피를 기체 상태의 약 600분의 1로 줄여 저장·운송한다. 초저온 액체 상태로 운송·저장되기 때문에 전용 저장탱크와 터미널이 공급 능력을 좌우한다. 이렇게 옮겨진 엘엔지는 광양 엘엔지 터미널 저장탱크에 저장된 뒤, 고객사의 자가·상업용 발전, 연료·원료용, 선박 시운전 등에 활용된다.
중동 정세 악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가정·산업·발전용으로 폭넓게 사용되는 필수 에너지원인 엘엔지의 공급 현황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엘엔지의 75%는 한국가스공사가 들여와 판매하는 물량이고, 나머지는 에스케이(SK)·포스코·지에스(GS) 등 민간 기업들이 직수입해 자체 소비한다. 2024년 기준 국내 전체 에너지원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4.1%로 석유(34.7%)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에 따라 국내 민간 엘엔지 터미널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대표적 엘엔지 터미널로는 광양·보령엘엔지터미널, 울산의 코리아에너지터미널 등이 있다. 이들 터미널은 하역·저장·기화·송출 설비를 바탕으로 발전용·공정용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발전사와 제철·석유화학 업체 등 고객사가 직수입한 엘엔지에 대한 탱크 임대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스공사의 엘엔지 생산기지처럼 국가 수급 안정을 위한 법정 비축 의무를 전제로 운영되는 시설은 아니지만, 국내 가스 공급망의 유연성을 높이는 구실을 한다. 겨울철에는 가스공사 및 고객사 간 물량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국가 천연가스 수급 안정에도 기여한다. 지난해 2월 시행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에 따라 자원안보 위기 때 정부가 직수입사 등에 한시적 비축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간 터미널은 비상시 엘엔지 저장·운영 인프라를 보완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국내 민간 최초의 터미널인 광양 엘엔지 터미널을 운영하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23년부터 터미널 증설에 나섰다. 16일 찾은 제2터미널 부지에서는 증설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저장용량 20만킬로리터 규모의 7·8호 엘엔지탱크가 들어서는 제2터미널의 공정률은 이날 기준 87%였다. 제2터미널 안 제2부두의 공정률은 97%에 이른다. 이 시설이 완공되면 하역 가능한 엘엔지선 규모가 기존 18만큐빅미터급(1큐빅미터는 1㎥)에서 27만큐빅미터급으로 확대된다. 한 번에 들여올 수 있는 엘엔지 물량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연내 증설을 마무리해 기존 93만 킬로리터의 엘엔지 저장용량을 133만킬로리터로 늘릴 예정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 국민이 4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난방용 가스 저장 용량이라는 것이 회사 쪽 설명이다. 김우헌 그룹장은 “준공되면 국내 에너지 공급망 안정성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중동 지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멕시코퍼시픽과 연간 70만톤, 셰니에르와 연간 40만톤 등 총 110만톤 규모의 장기 엘엔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올 하반기부터 미국 셰니에르를 통해 자체 확보한 엘엔지 전용선으로 북미산 엘엔지를 국내에 도입할 예정이다.
보령 터미널 역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이 글로벌 물동량 및 운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변수로 보고, 선박 운항 상황과 국제 시황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수급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협조 요청이 있을 경우, 터미널의 운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협조해 나가겠다”고 했다.
광양/유하영 기자 y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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