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초토화 공언해도…‘이란 대정전’ 현실화 어렵다

정의길 기자 2026. 3. 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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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내에 있는 복합화력발전소. 이란인터내셔널 갈무리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소를 파괴하겠다고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박으로 이란 전력망에 관심이 쏠린다. 이란 전력망은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넓게 분산돼 있어, 전면적이고 장기적인 군사공격이 아니면 무력화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 등의 22일 보도를 보면, 이란 전력 생산의 95% 이상은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전국에 약 130기의 화력발전소가 있고, 총 설비용량은 7만8천㎿(메가와트)에 이른다. 이 중 1천㎿가 넘는 대형 발전소가 약 20곳, 2천㎿가 넘는 초대형 발전소가 3곳이다. 이는 이란 전력망이 집중되지 않고, 비교적 넓게 분산된 인프라라는 점을 보여준다.

테헤란 등 수도권 일대 전력은 최대 발전소인 다마반드를 비롯해 라자이 등 5개 대형 발전소에 의존하고 있다. 테헤란 시내에는 베사트, 레이 등 중소형 발전소들이 보조 역할을 맡는다. 미국의 표적으로 거론되는 다마반드 등 대형 발전소는 군사적 관점에서 결코 쉬운 표적이 아니다. 다마반드 발전소는 시설들이 200헥타르 부지에 흩어져, 테헤란 아자디 광장의 30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완전 무력화를 위해서는 다수의 정밀 타격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시설 하나를 완전히 파괴해도 이란 전체 발전 용량의 손실은 3.7%에 불과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발전소 타격’이 실제로 실행되도, 제한적·선별적 공격만으로는 단기간에 ‘이란 전역 대정전’ 시나리오를 만들기 어렵다.

이란 전력망의 또 다른 특징은 광범위한 분산이다. 고압 송전 및 중간 송전망만 약 13만3000㎞에 이르고, 전체 전선 길이는 130만㎞를 넘는다. 이를 지탱하는 설비는 85만7천기의 변압기와 2천∼5천개 정도의 대·중형 변전소들이다. ​변전소에 대한 타격은 특정 구역에 일시적인 정전을 유발하지만, 상대적으로 빨리 교체·복구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번 전쟁에서 테헤란 서부와 카라지에서 변전소 폭발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복구됐다.

이란은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 이후 군사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력 네트워크 분산과 예비 용량, 변전소 교체 역량을 꾸준히 키워왔다고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전소 파괴를 위협하자, 이란이 즉각 보복 공격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자신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1991년 걸프전 때 이라크 전력망은 19개 발전소에 전력이 비교적 집중된 통합 그리드 구조여서 “전략 공격의 이상적인 표적”으로 분류됐다. 미군은 개전 1주일 만에 발전소 등 전력망을 집중적으로 타격해 이라크 설비용량을 9500㎿에서 약 300㎿로 감소시켰다. 전쟁 후 4개월이 지나도 발전 용량은 전쟁 전의 20~25% 수준에 그쳤다. 미 국방부는 “1920년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란 전력망은 이라크와는 달리 폭넓게 분산됐고, 그 규모도 10배에 달한다. 이란 전력망을 타격해 정권이나 국민에게 실제로 고통을 주려면, 1991년 걸프전과 유사한 대규모 작전을 수일이 아닌 수 주간 지속해야 한다. 그런 결과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압박과 제재 속에서 이란의 복구를 억제해야 한다. 주변국의 에너지 및 담수화 시설을 공격하겠다는 이란의 보복이 훨씬 더 치명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전력망 공격은 이를 사용하는 일반 시민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식수 부족, 질병 확산, 그리고 대규모 민간인 사망을 야기할 수 있다. 1991년 이후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상황이다. 에드 마키 미 민주당 상원의원 등은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기 위한 계획이 없는 트럼프가 민간 발전소 공격을 위협하고 있다”며 민간 전력 인프라 공격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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