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 쓰는데 1분에 100弗…실험실 갇힌 韓 [코어파워 KOREA]
난제 해결 도구로 글로벌 선점 경쟁 뜨거운데
韓은 고비용에 보안 우려 커 활용 장벽 높아
2035년까지 年평균 25%씩 시장 성장 전망
정부, 아이온큐 협업…3년간 1500만불 투자

“양자컴퓨터를 클라우드로 사용하려면 분당 100달러를 내야 합니다. 실험을 위해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단백질 구조 최적화 연구를 진행 중인 권태호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박사는 이달 20일 서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양자 생태계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권 박사는 신약 후보 탐색 과정에서 후보 물질이 단백질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는지, 어떤 구조가 더 적합한지 등을 정교하게 찾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기존 컴퓨터가 유력 후보를 빠르게 추려내는 데 강점이 있다면 양자컴퓨터는 그 후보가 실제로 잘 작동할지를 분자 수준에서 더 정밀하게 따져보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반복 실험이 필수인 연구자 입장에서는 분당 100달러 안팎에 이르는 해외 양자컴퓨터 클라우드 사용료가 까마득히 높은 벽이다. 권 박사는 “일부 기업이 10분 안팎의 무료 사용 혜택을 제공하지만 실제 연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 과제로 진행되는 연구에서 이 같은 고비용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이런 비용 문제 때문에 양자 산업은 초반부터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자본이 넉넉한 글로벌 빅테크의 경우 양자컴퓨터 활용에 적극적이다. 글로벌 양자 기업들은 신약·배터리·금융·물류 등 산업별 활용 사례 선점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이온큐는 아스트라제네카, 아마존웹서비스(AWS), 엔비디아 등과 협력하며 산업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고 IBM도 300개가 넘는 네트워크 멤버와 65개 이상의 상업 파트너 스타트업이 참여하는 IBM 퀀텀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활용 사례를 축적하고 있다.
정부 ‘2025 양자 백서’에 따르면 양자컴퓨팅 시장에서는 양자 하드웨어 시장은 2025년부터 2035년까지 연평균 12.2%, 응용 소프트웨어는 같은 기간 1조 7519억 원에서 16조 1286억 원으로 커지며 연평균 24.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자컴퓨팅을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QCaaS 시장도 3059억 원에서 3조 8653억 원으로 확대돼 연평균 28.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양자로 풀 수 있는지 검증하는 작업이 빠르게 쌓이고 있지만 국내 연구자와 스타트업은 비용 장벽 때문에 실증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양자 기업과 장기 협력 체계를 짜기 어렵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연구기관은 양자컴퓨터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 국내에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탓에 많은 연구자는 시뮬레이터로 사전 검증을 한 뒤 꼭 필요한 순간에만 해외 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속한다. 하지만 높은 비용 때문에 충분한 반복 실험과 검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용 감당이 가능한 일부 대기업만 양자 생태계에 발을 디딘 상황이다.
SK텔레콤이 미국 아이온큐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인공지능(AI) 및 양자컴퓨팅 협력에 나섰고 LG전자는 IBM 퀀텀 네트워크에 합류한 데 이어 프랑스 파스칼과 산업용 양자 알고리즘 및 핵심 하드웨어 기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아이온큐와 협력해 전기차 배터리용 리튬 화합물의 구조와 반응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기업들이 양자기술에 주목하는 것은 최적화, 분자 시뮬레이션, 신소재 탐색, 금융 계산, 보안 등 기존 컴퓨팅의 한계가 뚜렷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용이 양자 연구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이 양자 산업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도 이런 격차를 의식하고 올해 1월 양자컴퓨터 원천 기술 개발과 함께 자동차·제약·금융 등 산업 활용 확산을 담은 양자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아이온큐가 국내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하고 3년간 매년 500만 달러를 투자받는 방안도 포함됐다. 국산 양자컴퓨터가 산업 현장에 본격 투입되기까지 남은 시간의 공백을 해외 기업과의 협력으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아이온큐와의 계획이 현실화하면 국내 연구자와 기업의 양자기술 활용 비용은 지금보다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통해 일반 기업과 연구자들의 활용 사례를 늘려갈 것”이라고 했다.
다만 외산 서비스 의존이 커질 경우 데이터 주권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바이오·소재 등 민감한 과학기술 데이터를 해외 양자컴퓨터 서비스에 쌓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하지만 동시에 연구자와 기업이 그 기술을 얼마나 자주, 싸게, 자유롭게 써보며 활용 사례를 쌓을 수 있는지도 관건”이라며 “흩어져 있는 연구, 소재·부품·장비 기업, 투자와 수요를 하나로 엮는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BTS 공연효과 끝났나…하이브 장초반 13%대 급락
- ‘보완수사’에 쏠리는 이목…폐지땐 사건 암장 등 부작용
- 칩 하나 팔던 엔비디아, 이젠 데이터센터 통째로…GTC 2026 톺아보기
- “독자 AI가 필요한 이유”… 국가 전략 자산이 된 AI
- “제네시스 한 대 값, 야구 유니폼에 태웠죠”…15년 동안 1억 써서 ‘550벌’ 채운 LG트윈스 덕후
- “이게 진짜 되네?”…석유 최고가제 시행 첫 주, 주유소 기름값 하락 전환
- 이란전쟁 여파… 소비심리 얼마나 악화됐나
- ‘레이디두아’ 속 구두 어디꺼? 불티나는데…발 건강엔
- 중동 리스크에 환율 쇼크까지…코스피 장중 4%대 급락
- “美해병·공수, 이란 지상군 투입 본격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