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이면 양자컴 1대 제조…‘1만 큐비트’ 시대 연다[코어파워 KOREA]
■ 최초 양자컴퓨터 개발 ‘파스칼’ 본사 가보니
세계 첫 상용화 이후 1000큐비트 성공
2년 걸리던 양자컴 생산기간 절반 줄여
극저온 대신 레이저로 원자 배열 조율
상온서도 안정적 가동·큐비트 확장 가능
유럽 등 잇따라 수출…양자 주권 이끌어

파스칼 본사와 연구소에서 직접 확인한 양자컴퓨터의 경쟁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양자컴퓨터가 다른 연산장치보다 기술적인 우위를 가진 것을 넘어 생산능력 측면에서도 비약적인 개선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자기술이 인공지능(AI) 인프라를 비롯해 다양한 산업군에서 핵심 솔루션으로 안착할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는 얘기다.
파스칼은 연구소 안에 뒀던 제조 시설을 본사로 확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본사 신규 제조 시설에는 양자처리장치(QPU) 공간이 9곳이 마련돼 있어 연구개발(R&D)용은 물론 데이터센터(클라우드)용 양자컴퓨터 제조가 가능하다. 프랑스 외에 북미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캐나다에도 생산 시설을 마련했다.
2019년 프랑스 광학연구소(Institut d’Optique)에서 출발한 파스칼은 그해 최초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구글이 처음으로 양자컴퓨터를 만들었다고 발표한 해와 같은 시기다. 파스칼은 20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주목받았다. 창업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던 양자 석학 알랭 아스페는 양자얽힘의 존재를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후 파스칼은 2024년 1000큐비트 시연에도 성공했다. 큐비트는 물질의 양자 상태를 활용한 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다.

파스칼은 일찍이 선도적인 기술력을 선보인 데 이어 우수 인력을 유치하며 제조 기간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275명이 넘는 전체 파스칼 인력 중 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는 약 70명에 달한다. 가에탕 에르세 엔지니어는 “과거에는 양자컴퓨터를 완성하는 데 2년 이상 걸렸지만 이제는 9~12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제조업 공장과 달리 양자컴퓨터는 생산과정에서 숙련된 기술자가 일일이 수많은 부품의 최적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만큼 업력을 확실하게 다진 양자 기업만이 제조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평가다.
이뿐 아니다. 파스칼 양자컴퓨터는 다른 경쟁사와 달리 극저온 냉동고가 필요 없으며 약 20도 수준의 상온에서도 작동한다. 원자는 낮은 온도에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냉동 장비가 양자컴퓨터에 탑재돼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파스칼은 그 대신 레이저로 원자 배열 상태를 조율해 계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번에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한 양자컴퓨터 제조 현장에서도 직원들은 광학 장비를 활용해 레이저를 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정밀하게 조정된 레이저를 특정 원자에 쏴 원자 배열을 정렬시킴으로써 원자 간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양자얽힘 상태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양자얽힘이 구현돼야 일반 컴퓨터로는 수년 걸릴 복잡한 연산을 양자컴퓨터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에르세 엔지니어는 “양자 단위의 정렬인 만큼 레이저 조준 범위도 몇 마이크로미터 이내에 불과한데 파스칼의 선도적인 설계 역량 덕분에 레이저를 활용한 정렬이 매우 용이하다”면서 “이러한 정렬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온도 변동 폭을 0.1도 이하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성원자 기술의 우수성은 QPU 성능 고도화에도 있다.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 기술은 큐비트 수에 비례해 내부에 설치해야 하는 케이블이 늘어나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반면 중성원자 기술은 일종의 무선 기술인 레이저 광선으로 양자 단위를 조절할 수 있어 같은 크기의 공간에서도 유연하게 성능을 높일 수 있다.
파스칼은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아직 전 세계에서 실현된 적 없는 1만 큐비트급 양자컴퓨터 개발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다. 로베르토 마우로 파스칼 한국지사 대표는 “우리는 진공 챔버 안에서 레이저 기술로 큐비트 단위를 조절하기 때문에 같은 규격의 제품이어도 1000큐비트까지 확장이 가능하다”면서 “이후 단일 QPU 내 큐비트 수를 1000개에서 1만 개로 증가시키기 위해 고체 레이저 대신 보다 정밀한 제어가 가능한 첨단 광학 기술의 일종인 광집적회로(PIC·Photonic Integrated Circuits) 기술이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파스칼의 이 같은 경쟁력은 전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와 사우디아라비아 외에도 이탈리아·캐나다·독일 등에 양자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지난달 파스칼 양자컴퓨터를 도입한 이탈리아는 자국 내 슈퍼컴퓨터에 이를 통합해 독자적인 하이브리드 인프라를 구축했다. 유럽 전역으로 기존 AI 인프라와 양자컴퓨터가 통합되는 시도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유럽 초고성능 컴퓨팅 공동사업단(EuroHPC JU)이 발주한 유럽 내 8개의 양자컴퓨터 중 3대가 파스칼 제품이다.
유럽이 이러한 AI 인프라 정책에 더해 양자 이니셔티브 전략을 강화하면서 양자기술의 리더십 확보에 힘을 싣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7월 2030년까지 양자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는 △양자 설계 시설 및 6개의 양자 반도체 파일럿 라인 설립 △유럽 양자 인터넷 상용화를 위한 시범 시설 구축 △EU 전역으로 양자 클러스터 네트워크 확장 △우주 양자기술 로드맵 마련 등이 포함됐다. EU 집행위는 “EU의 양자 전략은 유럽의 과학적 리더십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EU의 기술 주권과 안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국가가 기술·안보·외교·행정·문화 등 각 영역에서 확보한 독자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역량을 의미한다.
마시-팔레조=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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