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상자산시장에도 ‘전자공시’…코인 평가·자문업도 자본시장 수준 규제 유력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6. 3. 23. 17:3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융위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청사진
서울대 로스쿨, 금융위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
코인 평가·자문업 자본시장법 준용 ‘등록제’ 제안
가상자산판 ‘다트(DART)’ 도입 제언도 나와
6대 판매규제 등 금융소비자보호법 수준 적용 등
정부와 여당 주도로 추진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의 초기 설계도에서 가상자산 관련 공시를 현행 ‘전자공시(DART)’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가상자산 평가·자문·공시업의 신설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수준의 강력한 행위 규제 도입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매일경제가 단독 입수한 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의 ‘가상자산 규제사항 검토 연구’ 최종보고서는 지난 2024년 금융위가 2023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1단계 입법) 시행 이후 국회 후속보고를 위해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물로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 정부안의 밑그림을 그린 문건이다.

해당 보고서는 제3장(가상자산 평가업·자문업·공시업 규율 체계), 제4장(통합시세·공시 시스템 및 입증책임), 제5장(가상자산 사업자 영업행위 규제)에 걸쳐 가상자산 시장을 전통 자본시장 수준의 투명한 인프라로 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업권의 제도화’와 ‘촘촘한 영업행위 규율’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 가상자산 평가업 인가제 도입, “독립성 없인 시장 신뢰 없다”
보고서 제3장 집필자인 김유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전혀 다루지 않는 세 가지 시장 인프라 업종의 규율 체계를 설계했다.

보고서가 가장 먼저 다룬 가상자산 평가업은 국내에서 지난 2023년 발생한 ‘쟁글(Xangle)’ 사태를 문제 삼았다.

과거 국내 1위 가상자산 공시·신용평가 사업자였던 쟁글은 거래소 상장 지원 명목으로 코인 발행업체로부터 금전을 수령했다는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관련 사업을 종료했다. 당시 쟁글은 외부 영업 인력에게 업체 소개 대가로 평가비용의 약 10%를 지급했지만 거래소와 결탁한 부정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추가 논란을 막기 위해 공시·신용평가 사업을 접었다.

보고서는 이 문제의 해법으로 자본시장법상 신용평가업 규제와 유사한 체계를 제안했다. 핵심은 ▲무인가 가상자산 평가업을 금지하고 금융위원회 인가를 의무화 ▲인가 요건으로 주식회사 형태, 일정한 자본금, 금융사 지배구조법에 준하는 임원 자격·대주주 건전성 요건, 이해상충 방지 체계 구비를 요구 ▲평가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법에 명시하고, 평가기준에 따른 수행 의무·기록 보존의무·비밀 유지의무·이해상충 방지의무를 영업행위 규칙으로 결정 등 세 가지다.

보고서는 다만 현재 글로벌 규제 현황을 고려할 때 가상자산 평가업에 대한 규제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있다고 인정했다. EU의 MiCA(암호자산시장법)조차 이 영역에 별도 규정을 두지 않았고, 이 점을 자문한 라스클뢘(독일) 교수도 “MiCA에서 가상자산 평가업은 고려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S&P글로벌이 2023년 12월부터 스테이블코인 평가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시작한 것처럼, 독립적 가상자산 평가업자의 출현 가능성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가상자산 평가업을 ‘시장의 기초 인프라’로 인식하되, 단기에는 가상자산 가상자산거래소 등이 발표하는 조사분석보고서(리서치보고서)에 대한 공적 가이드라인을 먼저 마련하고, 향후 ETF 등 가상자산 지수 기반 금융상품이 등장할 경우에 본격적인 평가업 규제를 도입하는 단계적 접근을 권고했다.

◆ 가상자산 자문업, 리딩방·AI봇까지 잡는다
가상자산 자문업 규제는 사회적 폐해가 이미 현실화된 영역이다. 보고서는 2023년 11월 경향신문 보도 등 코인 리딩방 일당 검거 사건 등을 직접 인용하며 규제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보고서가 제안한 규율 체계는 이중 구조다. 특정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가상자산 자문업은 등록제를 적용하되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투자판단 조언을 제공하는 ‘유사자문업’(현행 리딩방의 법적 성격)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자동화된 가상자산 자문 서비스, 즉 AI 기반 자문봇에 대한 언급이다. 보고서는 “주식자동매매 프로그램도 특정성을 갖출 경우 투자자문업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 논리를 인용하며 가상자산 AI 자문 서비스 역시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망 안에 포섭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등록 요건으로는 일정한 자기자본, 전문인력 보유, 임원·대주주 자격요건을 제시했다. 또한 EU MiCA 제66조와 제81조를 참고하여 이해상충 방지 방안 마련의무, 자문의 독립성 관련 정보 공시의무도 포함시켰다.

보고서는 “가상자산 자문업의 허용 여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선제적으로 필요하며, 적합성 원칙 등이 함께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 가상자산 공시업, 실험적인 별도 업종
가장 실험적인 제안은 가상자산 공시업 신설이다.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공시업을 운영한다고 분류할 만한 유의미한 업체는 발견되지 않는다”며 이 업종의 전무한 글로벌 사례를 솔직히 인정했다. EU MiCA조차 공시업을 별도 규정으로 두지 않았고, 자문한 라스클뢘 교수도 “MiCA에서 가상자산공시업은 별도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보고서가 2024년 당시 공시업 신설을 검토한 배경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2024년 5월 보고서 작성 시점 기준 가상자산에 대한 공시의무 자체가 없고 모든 정보가 자발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불공정거래의 판단 기준이 되는 ‘미공개 중요정보’의 공개 시점과 경로가 제각각인 실정이다.

특히 1단계 입법에 따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불공정거래행위로 금지되므로 자발적 공시의 법적 효력 발생 시점을 명확히 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졌다.

보고서가 설계한 공시업의 규율 내용은 MiCA가 발행인에게 부과하는 공시의무를 집행할 민간 인프라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식이다. ▲환경 관련 부정적 영향 공시 ▲가상자산의 특성·기능·위험에 관한 정보 공시 ▲이해상충 요소 공시 ▲유통수량·준비자산 가치 및 구성내역 공시 ▲발행인의 가격결정 정책 공시 등이 공시 의무사항으로 제시됐다. 공시업자에게는 형식적 심사의무(실체적 진실 심사는 제외)와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작성하는 의무가 부과된다.

진입 규제 측면에서는 금융위원회 인가제를 적용하되, 공시업자는 다른 가상자산 업종과 겸영을 금지해 공시의 독립성을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 가상자산도 DART처럼 통합공시 시스템 만든다
보고서는 제4장에서는 국회가 입법 과제로 요구한 ‘통합 전산 시스템’의 구체적 설계를 다뤘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서 통합 시세·공시 시스템은 전 세계 어디에도 구축·운영된 사례가 없다.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조차 비트코인 관련 정보를 게재할 때 “데이터 불일치나 업데이트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는 면책 고지를 달고 있다. 각 거래소가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공시를 낼 경우 법적 분쟁의 불씨가 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보고서가 제안한 청사진은 단기와 장기로 나뉜다. 단기적으로는 공시 시스템을 우선 통합하고, 시세 시스템은 각 거래소의 개별 시스템과 병존하는 방식을 허용한다.

시세는 중개업자의 최선집행의무를 통해 불일치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지만, 공시는 불공정거래 판단의 기준이 되므로 반드시 단일 창구로 통합돼야 한다는 논리다.

장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DART(전자공시시스템)처럼 공적 기관이 통합 운영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명시했다.

◆ 거래소 해킹사고, 전금법처럼 ‘사업자가 입증책임’으로 전환
제4장의 또 다른 핵심은 통합 전산 시스템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 구조다. 보고서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제9조를 모델로 삼아 시스템 운영자에게 무과실 책임의 원칙을 부과하고 이용자 고의·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면책을 허용하는 방식을 권고했다.

이는 가상자산 사용자에게 매우 유리한 규정이다. 현재 가상자산 사고 피해자들은 거래소나 시스템 운영자의 귀책사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전금법 방식이 도입되면 사업자가 “우리 과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하므로, 해킹·전산 오류 등으로 인한 피해자 구제가 실질적으로 강화된다.

다만 보고서는 이 조항이 순수한 ‘입증책임 전환’ 규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책임제한’에 가깝다는 점도 정확히 짚었다.

전금법 제9조는 무과실 책임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이용자에게 고의·중과실이 있거나 법인 이용자의 경우 사업자가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증명하면 면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다.

◆ 영업행위 규제와 ‘코인판 금소법’
보고서 제5장을 집필한 임재혁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사업자 전반의 영업행위 규제 체계를 설계했다.

핵심 출발점은 충돌 문제다. 현행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은 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 등 투자자 보호의 6대 판매행위 규제를 담고 있으나,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금소법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이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를 놓고 세 가지 방향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가상자산을 금소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이다. 가장 신속하지만,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법체계상 전제와 충돌한다.

두 번째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금소법과 유사한 판매 규제를 별도로 신설하는 방안이다. 법체계의 정합성은 유지되지만 중복 규제의 비효율이 생긴다.

세 번째는 자본시장법과 마찬가지로 ‘업자 유형별’ 규제 체계를 구성하는 방안이다. 보고서는 세 번째 방향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면서, 단기적으로는 금소법의 개정 전 체계를 참고하여 가상자산법에 관련 규정을 이식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영업행위 규제 중 가장 실천적으로 중요한 투자권유 준칙에 대해 보고서는 “가상자산의 경우 거의 모두가 고위험(5등급)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고 명시하며, 투자권유 준칙에 대한 전면 재검토 필요성을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체계에서는 적합성 원칙 적용 시 금융투자상품의 위험 등급에 따라 투자자 접근 가능 여부와 방법이 달라진다. 비트코인·이더리움은 물론 대부분의 알트코인이 5등급(최고 위험) 분류를 피하기 어렵다면,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사실상 대부분의 가상자산 투자 권유 자체가 규제의 걸림돌에 부딪힐 수 있다. 보고서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가상자산 고유의 투자권유준칙 설계가 입법 과정에서 별도로 논의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편, 보고서가 제안한 가상자산 사업자 공통 영업행위 규제의 목록은 자본시장법·MiCA의 틀을 참조했다. 신의성실의무(MiCA 제66조, 자본시장법 제37조), 겸영·부수업무 규제, 이해상충 방지(정보교류 차단벽 설치), 업무 위탁 규제, 임직원 직무 관련 정보 이용 금지, 광고 및 수수료 공시 의무, 불만 처리 절차 수립 의무(MiCA 제71조)가 공통 의무로 제시됐다. 가격 정책·수수료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도록 하는 투명성 의무는 특히 업비트·빗썸 등 주요 거래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DAXA 자율규제는 한계…법적 의무화가 필요
보고서는 현행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인 DAXA(닥사·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의 역할을 평가하면서도 자율규제만으로는 이해상충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DAXA의 표준 내부통제기준이 마련돼 있으나 향후 2단계 입법에서 가상자산사업자의 영업행위 규제와 자율규제의 관계 설정을 입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업자별 추가 규제와 관해서는 보관업자·평가업자·공시업자를 분리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용자 자산 보관에 관해서는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6조 이하 규정을 2단계 입법에서 보관업자 전담 규제로 이관·재편하고 평가업자는 자본시장법상 신용평가회사 규율을 준용한다.

공시업자는 다른 가상자산 업종과의 겸영을 원천 차단해 독립성을 보장한다. 자본시장법상 인가를 이미 받은 금융투자업자가 동일 형태의 가상자산업을 영위하려면 가상자산법상 별도의 인허가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주목할 사실은 보고서가 EU·일본 등 선진 사례를 참조했음에도 결론에서는 이들이 아직 도입하지 않은 영역(공시업)까지 선제적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는 점이다.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규모가 글로벌 평균을 크게 웃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