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신용 위기는 ‘빅뱅크’의 축제?…“제2의 리먼인가, 찻잔 속 태풍인가”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는 A 씨는 한국 시간으로 3월 19일 새벽 3시경 진행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기자회견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그의 말 한마디에 최근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사모신용’ 리스크가 진화될 수도 더 점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날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법무부가 조사를 마칠 때까지 임시의장으로서 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파월이 유임되어 워시 취임 후 기대됐던 금리인하 움직임을 지연시킬 것이란 ‘매파적’ 시그널로 읽혔다. 하지만 ‘신용 시장 균열에 대한 구제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별도 질의도 없었다.
A 씨가 파월의 입에 주목한 이유는 사모신용 시장의 환매 중단 사태가 AI와 반도체라는 실물경제의 ‘엔진’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내 데이터센터 투자의 약 30%는 BDC(비즈니스 개발 회사)를 포함한 사모신용 자금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장 40개 크기에 달하는 초대형 데이터센터들이 사모펀드의 대출을 기반으로 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환매다. ‘블루아울’처럼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펀드들이 환매 요청을 견디지 못해 ‘대출 회수’에 나서면 당장 짓고 있던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이 끊기게 된다. 이는 곧 반도체 수요 둔화와 D램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9월 저신용자 대상 자동차 담보대출 업체인 트라이컬러의 파산으로 시작된 이른바 ‘바퀴벌레’의 습격이 이제 AI의 심장부를 겨누게 된 셈이다. 그해 10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은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며 신용시장의 과잉을 주의해야 할 때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발언은 현실이 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연 10% 이상의 수익을 안겨주며 ‘돈 복사기’로 칭송받던 사모신용 시장이 AI 인프라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뇌관으로 변했다.
은행이 떠난 자리, ‘그림자 금융’의 탄생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바젤III’와 ‘볼커 룰’은 대형 은행들의 손발을 묶었다. 예금자 보호를 위해 위험 자산 비중을 줄이고 자본 확충을 강요하는 엄격한 규제가 시작되면서 은행들은 더 이상 리스크가 큰 중소기업이나 고위험 사업군에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없게 됐다.
은행이 떠난 빈자리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사모펀드(PEF)와 헤지펀드들이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막대한 자금을 들고 이 위험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른바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순간이다. 이후 시장은 거침없이 몸집을 불렸다.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 속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전 세계 자금이 연 10% 이상의 수익을 약속하는 사모신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결과 전 세계 사모신용 시장 규모는 약 15년 만에 2조2000억 달러(약 3000조원) 규모로 비대해졌다.

특히 2023년 초부터 2025년 초까지 몰아친 AI발 투자 열풍은 이 시장에 거대한 기름을 부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AI 스타트업과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은행 대신 사모신용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KKR과 블랙스톤, 블루아울 같은 대표 운용사들의 주가는 1년 새 두 배 가까이 폭등하며 ‘돈 복사기’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찬란했던 시장에 균열이 인 것은 작년 9월부터다. 저신용자 대상 자동차 담보대출 업체인 트라이컬러와 자동차부품 공급사인 퍼스트브랜즈가 연속으로 파산하면서 월가에 공포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벤 루리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교수는 당시 외신 인터뷰에서 “사모 대출 시장이 너무 과열되어 있었고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기업들에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줬다는 공포가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름도 생소한 부품 회사의 붕괴는 금융위기의 ‘첫 번째 도미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다이먼 JP모간 회장 역시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며 신용시장의 과잉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본격적인 위기는 사모신용 시장의 거물이자 테크 대출의 강자인 블루아울에서 터져 나왔다. 발단은 이른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 불리는 AI발 소프트웨어 학살 공포였다.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 산업은 그간 사모대출 시장의 핵심 고객이었다. AI가 부실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자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진 것이다.

블루아울의 비상장 펀드인 ‘OBDC II’에서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지난 2월 19일 블루아울은 인출 제한을 선언했다. 문제는 사모신용 펀드의 구조적 한계다. 펀드 자금은 이미 기업의 공장부지나 기술개발비로 묶여 있어 당장 현금화할 수 없다. 운용사 측은 “완전 동결이 아닌 구조 변경”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자금줄이 말랐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포춘지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증발한 시가총액만 2650억 달러(약 350조원)에 달한다. 블루아울의 주가는 고점 대비 3분의 2가 증발했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졌다. 블랙스톤의 대표 펀드인 BCRED에서 38억 달러의 인출 요청이 쏟아졌고 경영진이 사비 4억 달러를 투입했음에도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3월 초에는 세계 최대 운용사 블랙록마저 260억 달러 규모의 대출 기금 인출을 제한했고 모건스탠리 역시 환매 요청에 배당금을 5%로 제한하며 방어에 나섰다.
올해 1분기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사모대출 펀드에 접수된 환매 요청 규모는 101억 달러(약 13조5000억원)로 추산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운용사들은 환매 요청액의 70%만 지급하기로 합의하며 시간을 벌고 있으나 아레스매니지먼트와 골드만삭스 등 대형사들마저 환매 규모를 집계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SaaS 산업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3월 18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소비자 및 소상공인 대출을 보유한 스톤리지자산운용의 펀드마저 최근 환매 요청이 급증하면서 투자자들이 요구한 금액의 단 11%만을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소프트웨어와 무관한 펀드다. 이는 사모신용에 대한 우려가 AI의 습격이 두려운 소프트웨어 산업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월가를 흔들고 있는 사모신용 시장 위기의 전말이다.
위기의 씨앗 vs 찻잔 속 태풍
월가의 시나리오는 두 갈래다. ‘탄광 속 카나리아’가 다시 등장했다는 비관론과 시장의 자정 작용 내에 있는 ‘찻잔 속 태풍’이라는 낙관론이다.
비관론자들은 현재 사모신용 시장의 흐름이 2008년 금융위기 초기 국면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블루아울의 환매 중단 조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서막을 알렸던 베어스턴스의 파산과 흡사한 순간이란 지적이다. 알리안츠의 경제 고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이를 “2007년 8월과 유사한 ‘탄광 속의 카나리아’ 순간”이라고 말했다.
비관론의 핵심은 사모신용 대출들이 시장 가격이 없는 ‘깜깜이’ 자산이라는 점이다. 이승재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사모신용 자산은 공신력 있는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주관적 모델에 의존한다”며 “2008년 당시 복잡한 주택담보대출 유동화 증권(MBS)이 실제 시장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채 높은 등급을 받았던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2008년 당시 은행들은 위험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대출을 중단하며 신용 경색을 일으켰고 이는 MMF 가치 폭락과 증시 소용돌이로 이어졌다. 현재 사모신용 역시 장부상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 가치는 이미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반면 데이터에 주목하는 이들은 사모신용의 부도율이 여전히 낮고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규모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 재무부 산하 금융연구국(OFR)은 은행과 비은행권의 사모신용 펀드 노출액을 약 4100억 달러에서 5400억 달러 사이로 추산했다. 이는 미국 전체 은행 자산(33조 달러)이나 비은행 금융기관 자산(94조 달러)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시스템 전체 규모와 비교했을 때 사모신용은 ‘작은 점(약 2%)’에 불과하며 최악의 경우에도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기에는 부족하다는 논리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번 사태를 2008년식 금융위기와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충격은 복잡한 파생상품에 의한 시스템적 폭발이라기보다, 특정 섹터(테크)에 집중된 과대평가와 유동성 불일치가 해소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심리 위축은 주시해야겠으나 시스템 위기로 확대 해석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깜깜이’ 구조로 금융권 전염 위험은 남아 있다. 중소형 펀드들은 자기 돈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와 다시 기업에 빌려주는 다층 구조다. 도미노의 한 칸이 쓰러지면 연결된 모든 금융사가 타격을 입는 구조다. 2008년 금융위기가 은행 중심 구조였다면 현재는 리테일, 사모펀드, 보험사, 연기금 등으로 파편화되어 분산된 구조를 띠고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분산된 위험은 대형 은행의 파산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나 반대로 리스크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연기금과 보험사들이 약정한 ‘미인출 약정 자본’은 약 3100억 달러에 달한다. 유동성이 마른 상황에서 대규모 자본 납입 요청이 들어오면 연기금은 다른 자산을 투매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위기가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는 점이다. AI 기술 발전에 따른 테크 기업 부실 우려가 지속되는 한 투자자들은 환매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새로운 ‘신용 바퀴벌레’들은 끊임없이 기어 나오고, 사모신용 펀드들은 당분간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Fed는 ‘구원투수’로 등판할 것인가

시장은 Fed가 ‘구원투수’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Fed는 물가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이중 책무를 수행하면서도 금융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위협받는 순간에는 원칙을 깨고 시장에 개입해 왔다. 1998년 헤지펀드 LTCM의 붕괴를 막기 위해 세 차례 연속 금리를 인하했던 사례나 2019년 인플레이션과 무관하게 레포(Repo) 시장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던 전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지난 3월 FOMC에서 Fed의 화력은 오직 ‘물가’에 집중됐다. 특히 이란 전쟁에 따른 잠재적 영향력을 최우선 순위에 뒀다. Fed는 1월에 이어 금리를 동결하며 “중동 상황의 전개가 미국 경제에 갖는 함의가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Fed에 가장 시급한 변수는 신용 시장의 미세한 균열보다는 거시적인 전쟁 리스크인 셈이다.
파월 의장은 “금리 전망은 경제 성과에 달려 있으며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을 3.4%로 유지하며 연내 한 차례의 인하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사모신용 시장의 균열에 대해서는 별도의 질의도 언급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미국 경제는 알다시피 꽤 잘 돌아가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의 충격을 이겨낸 경제의 회복력을 “놀랍다”고 치켜세웠다. 사모신용 리스크는 뱅크런이 아닌 펀드런이다. 지난 3월 FOMC만 보면 아직 시스템을 흔들 정도의 위협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원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사모신용 이슈는 아직 국지적인 사안으로, Fed 의장이 직접 나설 만큼의 시스템 리스크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오히려 당국이 위기를 언급하는 순간 환매 압력이 가중될 수 있어 신중을 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가의 지배적인 시나리오 역시 FOMC 이후 사태가 "위험하지만, 시스템 리스크는 아니"라며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낙관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물론 Fed가 공식적으로 사모신용 구제를 발표하지 않더라도 신용 긴축이 실물경제를 위축시키는 상황이 오면 결국 금리인하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사모신용 시장은 이제 중앙은행이 좌시하기엔 너무나 비대해진 ‘그림자 은행’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파국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우리는 과거의 뼈아픈 실책을 염두할 필요도 있다. 2007년 벤 버냉키 전 의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을 두고 “제한적(Contained)”이라며 시장을 안심시켰으나 이는 곧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초전이었다. 유니커스의 락스 가나파티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2008년에 돈을 잃은 투자자들은 너무 일찍 패닉에 빠져서가 아니라 너무 늦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라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사모신용 위기가 월가의 승리라고?
사모신용 시장의 위기를 두고 ‘빅뱅크(대형 은행)들이 웃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손발을 묶어 생긴 ‘그림자 금융’ 시장에 균열이 생기자, 역설적으로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에 다시 기회의 땅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최근 대형 은행들의 자본 적립 의무를 줄여주는 규제 완화안을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미셸 보먼 Fed 부의장은 '바젤III 엔드게임'으로 불리는 글로벌 자본 규제안을 수정해, 당초 계획했던 대폭의 자본 상향 대신 전체적인 자본 요건을 소폭 낮추는 방향으로 재설계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대형 은행들의 규제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Fed 내 인적 쇄신과 맞물려 있다. SVB 사태 이후 규제 강화를 주도했던 마이클 바 부의장이 지난 1월 물러나고, 친트럼프 인사인 미셸 보먼 부의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FT는 “이번 제안은 월가 로비스트들의 승리”라며 “규제를 풀어 은행들이 사모신용 그룹에 빼앗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도록 하려는 압박이 강화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간 은행 대출이 규제에 막히자 기업들이 규제 사각지대인 사모펀드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최근 블루아울 등 대형 사모펀드의 환매 중단 사태는 이 ‘그림자 금융’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Fed은 은행 규제를 완화해 대출 여력을 키워줌으로써, 사모펀드에 의존하던 자금을 다시 제도권 은행으로 흡수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월가에 대한 특혜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차기 Fed 의장 후보인 케빈 워시의 철학에 따라, 과도한 규제를 걷어내고 은행 본연의 기능을 회복시켜 경제 활력을 높이려는 ‘금융 정상화’의 사전 작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자신의 SNS에 “사모펀드 대출을 막는 대안도 되겠지만, 과도했던 은행 규제를 풀어줘서 은행들이 정상적인 수준에서 성장을 자극할 수 있도록 대출해주게 하자는 취지도 담겨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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