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수의 닥치GO] '왕사남 성지' 훼손되기 전에 가보세요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6. 3. 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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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 덕에 11만명 몰린 영월
봉래산 모노레일·보도교 추진에
충절 상징 낙화암 훼손 논란 커져
단종 알리려는 초심 잃지 말아야
관광지 찾는 발길 유지할 수 있어

"왕사남(영화 '왕과 사는 남자') 보셨어요?"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어지는 물음도 있다. 명색이 여행전문기자신데, 단종 유배지 영월(강원도) 투어는 다녀오셨냐는 거다.

이번 칼럼을 빌려 답변을 드린다. 영화? 안 봤다. 영월은? 휴, 다행이다. 그나마 찍고 왔다. 심지어 1000만 돌파 다음날 당당히 오픈런을 해 영월 입성, 단종의 흔적이 밴 곳들은 죄다 훑고 돌아왔다.

영화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해외에서 줄줄이 개봉하면서 K무비 단종 신드롬까지 번질 조짐이다. 대부분 평가가 '생애 처음(1st time) bawling(대성통곡)'했다는 것. 여간해서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 외국인들까지 대성통곡을 했다니.

영화를 본 이들은 감동을 품고 영월로 향한다. 2월 한 달간 벌써 11만명이 영월을 찍었다. 영월군민 수라야 3만6000명 선. 군민 숫자의 3배가 한꺼번에 몰렸다는 얘기다.

직접 가보면 안다. 왕사남 돌풍이 장난이 아닌걸. 진입 포인트 서영월IC부터 차가 밀린다. 심지어 동영월IC로 우회 진입하라는 안내문까지 있다. 30분 이상 걸려 진입을 해도 주차장 풀. 청령포 가는 배를 타려면 또 2시간 이상 웨이팅이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하필이면 왜 단종이었을까. 역사를 다룬 사극은 많다. 그런데 왜 단종 스토리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걸까.

답은 '영월'에 있다. 한국 나이로 17세. 한 나라의 왕이 그 어린 나이에 유배를 온다. 그것도 오지 중의 오지, 일반 백성조차 닿기 어려운 땅에 국왕이 왔으니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터.

중요한 건 왕을 대하는 시선이었다. 영월 사람들에게 단종은 더 이상 '왕'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삼촌에게 버림받은 어린 조카, 안타까운 한 아이였던 것. 그래서 영월은 이 이야기가 묻히는 걸 볼 수 없었다. 후대에 잇겠다는 집념으로 영월은 안타까운 단종의 역사를 땅에 새겼고, 영월 사람들은 가슴에 담았다. 반드시 '진짜' 역사를 전하겠다는 의지였다. 그 흔적은 지명으로 남아 있다. 선돌이 있는 소나기재, 어음정, 군등치까지 모든 지명에 단종의 얘기가 들어 있다. 영월군민 누구나 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땅에 새긴 이야기를, 영월 사람들은 세대를 건너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온 것이다. 그러니 60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감 있게 단종 스토리가 느껴지고, 감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금맥'이 터지니 수양대군처럼 오만해진 걸까. 이런 영월군이 흔들리고 있다. 심지어 '수상한 짓'까지 벌이고 있다. 그게 봉래산 명소화 사업(모노레일 설치)으로 인한 '낙화암' 훼손이다. 부여에 백제 의자왕의 낙화암이 있듯, 영월에 단종의 낙화암이 있다. 영화 속 매화(전미도 분)처럼 단종을 끝까지 모셨던 궁녀들이 단종을 따라 차가운 동강 물로 몸을 던졌던 '충절의 성지'다.

논란이 시작된 건 영월군이 최근 봉래산 모노레일과 연결되는 보도교 설치를 위해 이 일대를 파헤쳐버리면서다. 단종의 역사를 땅에 새겼던 영월이 '돈 되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역사를 파헤쳐버린 꼴이다. 영월군은 '현상변경허가'를 받은 적법한 사업이라며 탁본으로 만든 가짜 비석까지 세울 움직임이다.

군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있다. 생생한 현장을 뭉갠 뒤 재가공한 장소에서 '가짜' 비석으로 관광객을 맞는 건, 역사를 박제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영월군청 홈페이지에도 비난 글 일색이다. "군수가 세조나 한명회의 후손인지 의심스럽네요" "자연 그대로 두는 게 산 역사다. 영월군 제정신인가" 등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여행전문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지자체 관광의 흥망성쇠를 자주 목격한다. 끝이 비참한 건 항상 초심을 잃어서다. 단종 신드롬 역시 '가짜'가 아닌, '진짜' 역사가 주는 울림을 땅에 새겼다는 점을 영월군은 잊지 말아야 한다.단종이 보셨다면, 분명, 이리 일갈하셨을 게다. '영월 네 이놈, 네놈이 감히 왕족의 역사(낙화암)를 능멸하려 드는가.'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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