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酒토피아' K-전통주 이야기…바다 바람이 빚은 한 잔, '그랑꼬또'
(안산=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대부도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지역성입니다."
잔에 담긴 황금빛 와인을 바라보며 와인메이커 김한식 팀장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 한마디는 대부도라는 섬이 어떻게 '와인의 땅'으로 바뀌었는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말이었다.
제작진은 독일 출신 유학생 마들렌 포군트케(서울대 박사과정), 신종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자리한 '그랑꼬또 와이너리'를 찾았다. 바지락 칼국수로 유명했던 이 섬이 이제는 '한국 와인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와이너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끝없이 이어진 발효탱크였다. 이곳에서 연간 약 10만 병 규모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그랑꼬또는 프랑스어로 '큰 언덕'을 뜻한다. 대부도의 한자 이름 '대부(大阜)'에서 착안해 만든 이름이다.
이곳이 와인 산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 미네랄이 풍부한 해풍, 그리고 큰 일교차가 포도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
김 팀장은 "바닷가에 있던 미네랄이 비와 안개를 통해 토양에 쌓이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지면서 포도의 당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대부도 테루아'다. 자연이 만든 조건이 곧 와인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이 된다.
그랑꼬또의 대표 품종은 국산 청포도 '청수'와 국내에서 가장 친숙한 '캠벨얼리'다. 특히 청수 와인은 상큼한 산미와 시트러스 향, 열대 과일 풍미가 특징이다. 오크통 대신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숙성해 포도 본연의 신선함을 극대화했다.
시음에 나선 마들렌은 잔을 들어 향을 맡은 뒤 웃으며 말했다.
"신선한 과일 향이 나요. 굉장히 깔끔하고 드라이한 느낌이에요."
신 칼럼니스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끝맛에 미네랄 느낌이 살아 있어서 해산물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실제로 이 와인은 한식과의 궁합으로 주목받으며 APEC 정상회의 만찬주로도 선정됐다. 캠벨얼리로 만든 와인은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대중이 익숙하게 먹던 '포도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 팀장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어온 포도라서, 이 와인을 마시면 누구나 '아는 맛'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랑꼬또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 포도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던 농가들이 모여 '그린영농조합'을 만든 것이 시작이다. 와인을 전혀 몰랐던 농업인이 사업계획서를 쓰다 대표가 되고, 해외를 오가며 양조 기술을 배우고,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지금의 와인이 완성됐다.
김 팀장은 "처음에는 한국 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받았다"며 "마셔보게 하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가 바뀌었다. 국제 대회 수상과 만찬주 선정 등을 계기로 '한국 와인도 경쟁력이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그랑꼬또는 30여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포도를 공급받고 있다. 재배부터 양조까지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구조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포도 농가의 소득이 안정되고, 와이너리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숙박업까지 함께 성장하고 있다.
연간 방문객은 3만 명 안팎. 와인 시음과 양조 체험을 위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부도는 '체류형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그랑꼬또의 목표는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머물지 않는다. 김 팀장은 "와인은 결국 그 지역 사람들의 입맛과 환경이 반영된 술"이라며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는, 한국적인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겹살과 화이트와인, 해물파전과 청수 와인의 조합처럼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페어링도 제안하고 있다. 앞으로는 스파클링 와인 등 다양한 스타일의 한국 와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구성 : 민지애, 진행 : 신종근·마들렌, 영상 : 박소라·김정민, 연출 : 김현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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