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욱〉섬으로 떠나는 인문학 유배여행
최근 전쟁과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한국영화 한편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어린나이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땅으로 유배간 단종과 호장 엄흥도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유배(流配)는 죄인을 멀리 보내 격리시키는 형벌로서 귀양(歸養)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전라도는 대표적 유배지로서 조선왕조실록에는 534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천사섬 신안은 섬들의 고향이자 유배의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흑산도와 임자도이며 주요인물은 흑산도의 정약전과 최익현, 임자도의 조희룡과 김령이고 그들의 유배생활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산어보와 표해시말의 작가 정약전이다.
손암 정약전(1758-1816)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실학자로서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이유로 동생 다산 정약용(강진)과 함께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사리마을의 사촌서당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섬주민들과 교류하며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도 고민했으며 해양생태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이 때 도움을 준 청년 창대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자산어보)는 지난 2021년 상영되었다. 또한 우이도(소흑산도) 문순득의 표류기를 기록한 표해시말은 동아시아 국제사회를 우물안 조선 사회에 소개했다.
문순득은 우이도 사람으로서 흑산홍어를 나주 영산포에 팔았는데 중간에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북경을 거쳐 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정약전은 15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못가고 흑산도에서 생을 마쳤다.
두 번째는 면암 최익현이다.
면암 최익현(1833-1906)은 조선후기 문신이자 항일의병장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되었으며 진리마을에서 일신당이라는 서당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천촌마을로 이사하여 한 바위를 "지장암"이라고 칭하고 조선민족의 위대함을 뜻하는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을 새기기도 했다. 1879년 유배에서 풀려나 정든 섬을 그리워하며 시를 짓기도 했다. 1906년 일본 대마도에서 적들이 주는 음식은 싫다며 거절하다가 사망했다.
세 번째는 우봉 조희룡이다.
우봉 조희룡(1789-1866)은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룬 문인화의 대가이다. 1851년 예송논쟁으로 임자도에 유배 온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캔버스 붓을 들었다. 천재화가의 울분과 외로움은 이론의 정립과 완숙미가 되었는데 가장 빼어난 분야는 매화도였다. 특별히 용매도는 바위 굴속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바닷가 용난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마을주민 청년 홍재욱과 주준석 두명을 제자로 삼았으며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왕성한 집필활동도 했다. 현재 남아있는 문집가운데 4권이 임자도 유배시절 집필했다고 한다. 대광해수욕장 조희룡미술관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으며 임자도에서 남긴 작품과 섬문화에 대한 기록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네 번째는 김령이다.
김령(1805-1864)은 조선후기 유학자로 1862년부터 1년 동안 임자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경상도 산청에서 태어난 그는 관직보다는 시민운동을 하다가 단성민란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귀양가게 되었으며 낯선 섬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일기를 썼다. "간정일록"이 그것인데 간정은 주역에서 인용했으며 어려움을 참고 정절을 지킨다는 뜻이다.
특별히 일기에는 임자도 특산물 민어, 농어, 새우 등이 많이 기록되었으며 말린 생선을 건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풍부한 해산물 때문에 상인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고 했는데 오늘날의 파시를 설명한 것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유배객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서당을 운영했지만 김령은 외로움을 달래고자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인근 지도읍과 임자도의 서당과 훈장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강맹순, 박재권, 주행문 등은 그의 제자들이며 그들은 스승의 유배생활을 안팎으로 도왔다.
그 밖에도 신안군에는 조선시대 외척들에게 빼앗긴 농지를 300년 동안 탈환운동을 펼친 하의3도 농지탈환운동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한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은 인문학 유배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 강원도 영월의 엄흥도가 있다면 전라도 신안에는 창대가 있고 문순득, 홍재욱, 강맹순 등이 있다. 이들은 2021년 촬영한 '자산어보' 영화를 이어 받아서 주인공 유배객들과 친구가 되어 전근대적인 신분사회 조선을 사람사는 평등사회로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