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궁전, 미앙궁(未央宮)

기호일보 2026. 3. 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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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은 수도 장안(長安)에 황궁을 건립하고 미앙궁(未央宮)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안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미앙궁의 터만 남아 있다.

비슷한 시기 로마 제국의 찬란했던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을 맞으며 그 옛날의 영광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중국에는 진나라의 아방궁이나 한나라의 미앙궁이 오늘날 그저 빈터만 남아 있는 것이 너무나도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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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오늘날 미앙궁의 입구에는 '한나라 장안성 미앙궁의 유적지(漢長安城未央宮遺址)'라는 이름만 남아 있고, 특별히 기념할 만한 유적이나 유물이 남아 있지 않다.
문승용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은 수도 장안(長安)에 황궁을 건립하고 미앙궁(未央宮)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안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미앙궁의 터만 남아 있다. 유방은 미앙궁이 너무 호화스럽다며 화를 냈다. 하지만 소하(蕭何)가 황제의 권위에 걸맞은 궁전이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자 그제야 유방은 받아들였다고 한다.

미앙궁이라는 궁전의 이름이 독특하다. '아직 ~하지 않았다'라는 뜻의 미(未)자에다가 '끝마치다'라는 뜻인 앙(央)자를 조합한 것으로 미앙이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라는 뜻이다. 무엇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미앙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홍안지십(鴻雁之什) 편에 '밤은 어찌 되었는가? 밤이 끝나지 않고 마당의 불빛만 있네.(夜如何其 夜未央 庭燎之光.)'라는 시구에 나온다. 여기에서도 그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인데 궁전의 이름으로 채택되면서 재앙이나 재난이 없이 '오래도록 즐겁고(長樂)' '만수무강(萬壽)'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풀이한다.

미앙궁은 궁전이 가로와 세로 각각 2㎞가 넘는 규모로서 당시 세계 제국의 위용을 갖췄던 당시 최고의 궁전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진나라의 아방궁이 지금 작은 공원으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기념할 만한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덩그러니 남겨진 미앙궁 터는 한마디로 별 볼 것이 없이 그저 휑하기만 하다. 지금 이곳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고 동네 노인네들이 나무 그늘에 한가롭게 앉아 있으며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200여 년 전에 세워졌던 궁전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슷한 시기 로마 제국의 찬란했던 유적들이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들을 맞으며 그 옛날의 영광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중국에는 진나라의 아방궁이나 한나라의 미앙궁이 오늘날 그저 빈터만 남아 있는 것이 너무나도 비교된다.

이곳에 으리으리한 궁전이 세워지고 나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이는 아마도 한신(韓信)이었을 것이다. 한나라 건국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명의 공신인 한초삼걸(漢初三傑)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항우와의 싸움에서 뛰어난 장수였던 그가 없었다면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나라 건국과 함께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말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던 장량과 달리 한신은 건국 이후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에는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 한신은 젊은 시절 가난해 동네에서 빨래 일을 하던 아주머니에게 밥 한 그릇을 얻어먹으며 지내다가 결국 나중에 성공, 천금으로 은혜를 갚았다고 하는 일반천금(一飯千金)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처럼 한신이 평소 거지처럼 빌어먹다 보니 한신을 우습게 본 동네 건달들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굴욕을 당했다고 해 과하지욕(胯下之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어찌하다가 유방의 부대에서 대장군으로서 자신의 특기를 인정받게 된 한신이 어느 때인가는 항우와 대치한 불리한 상황에서 아예 강을 등진 '배수의 진(背水之陣)'을 치고 필사적으로 싸워 이겨 항우 군을 무찌르고 마침내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공신이 됐다.

한나라 건국 이후 한신은 유방으로부터 시기와 견제를 받게 되자 결국 자신도 다른 개국공신들처럼 억울하게 죽음을 당할까 싶어서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돼 잡혀 죽게 됐다. 이때 한신은 산에 토끼가 사라지면 이제 쓸모없게 된 충성스러운 개도 삶아져 죽게 된다는 의미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한 시대 영웅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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