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李대통령이 “이자장사 그만” 했는데… 은행들, 이자 의존 더 깊어졌다

주형연 2026. 3. 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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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자 60조 돌파 역대 최대… 예대마진 구조 굳건
투자금융·자산관리 확대 외치지만 대출 중심 수익 지속
정책 압박 vs 시장 현실… 구조적 체질개선 가능성 주목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국내 은행들이 지난해 이자장사로만 60조원을 벌어들였다. 금융권의 '예대마진 의존 구조'가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자장사에 매달리지 말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고가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 셈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차례 은행의 이자장사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은행들은 투자금융과 자산관리 확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수익의 대부분은 여전히 대출에서 나오고 있다. 정책 압박과 시장 논리가 충돌하면서 은행권이 '이자장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자이익 60兆 시대

23일 금융감독원의 '2025년 국내은행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4조1000억원으로 전년(22조2000억원) 대비 1조8000억원(8.2%) 뛰었다. 순이익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 감소한 이후 2021년 증가세로 전환돼 줄곧 불어났다. 2024년 5%대로 다소 둔화했던 증가폭도 작년에는 다시 확대됐다.

항목별로 보면 이자이익은 전년 대비 1조1000억(1.8%) 증가한 60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첫 60조원 시대를 연 것이다.

수익성의 척도인 순이자마진(NIM)은 전년 대비 0.06%포인트 감소했지만 대출 이자 소득이 발생하는 이자수익자산이 3442조원으로 151조8000억원(4.6%) 증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비이자이익도 7조6000억원으로 1조6000억원(26.9%) 늘었다.

특히 외환·파생 관련 이익이 6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4000억원)보다 5조7000억원(1295%) 급증했다. 일반은행의 순이익은 16조2000억원으로 시중(1조3000억원)·인터넷(1000억원) 은행은 전년 대비 증가한 반면 지방은행은 300억원이 감소했다. 특수은행의 순이익은 7조8000억원으로 전년(7조4000억원) 대비 4000억원 증가했다.

이 대통령의 연이은 이자장사 경고에도 금융권의 수익 구조가 여전히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손쉬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며 금융권을 공개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은행권의 영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담보 잡고 이자먹기, 이게 주축인 것 같다"며 "생산적 금융이 아닌 민간 소비에 돈이 몰려있는데 이것도 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금융당국은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간담회를 잇따라 개최하며 은행권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생산적 금융 확대 목표를 잇달아 제시했다. KB와 신한은 각각 110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 금융 공급 계획을 내놨다. 농협은 108조원, 하나는 100조원, 우리는 80조원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5대 금융에서만 약 508조원 규모의 자금이 생산적 금융 분야에 공급될 전망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이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이다. 대출은 리스크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금리만으로 수익을 예측할 수 있는 사업이다.

반면 투자금융(IB)이나 자산관리(WM) 등 비이자 사업은 시장 변동성에 직접 노출돼 수익의 불확실성이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비이자 사업은 성과가 들쭉날쭉한 반면 대출은 일정한 마진만 확보하면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며 "경영진 입장에서는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요인은 규제 환경이다.

은행은 자본건전성 규제와 대손충당금 부담 등으로 인해 공격적인 투자 확대에 제약이 있다. 결과적으로 '리스크는 낮고 수익은 확실한' 대출 중심 영업이 반복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비이자 확대하는 은행권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 은행권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자산관리, 보험, 카드, 투자금융 등 비이자 부문을 키우며 수익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다.

일부 금융지주를 제외하면 비이자이익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며 이자이익과의 격차도 크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는 인력, 네트워크, 리스크 관리 역량 등에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은행 실적의 핵심 변수는 금리 흐름이다. 금리 하락 기조가 본격화될 경우 예대마진 축소로 이자이익 증가세는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고금리 환경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이자 중심 수익 구조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은행들이 구조적 전환 압박을 본격적으로 받는 시기"라며 "이자이익 성장세가 둔화되는 순간, 비이자 사업 경쟁력이 실적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으로 은행권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이자이익 의존도를 낮추고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특히 기업금융, 투자금융, 글로벌 사업 확대 등이 핵심 전략으로 꼽힌다. 동시에 디지털 전환을 통해 플랫폼 기반 수익 모델을 구축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변화 속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 수익 구조가 견고한 만큼 급격한 전환보다는 점진적인 변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관건은 '타이밍'이다. 금리 하락과 규제 환경 변화가 맞물리는 시점에 은행들이 얼마나 빠르게 체질 개선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향후 경쟁 구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이자장사 비판을 피하기 위한 해법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국민을 은행 주주로 만드는 것"이라며 "은행의 개인주주 숫자가 늘어날수록 금융지주의 양호한 실적에 대한 여론의 비난도 낮아지고 나아가 금융지주가 창출한 안정적인 실적과 적극적인 주주환원이 다수 국민의 자산증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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