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교도소서 배운 웹툰 솜씨로 작가 됐어요”…새 삶 찾는 직업훈련 현장

고도예 기자 2026. 3. 23. 14: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 계속 만화 그리고 있습니다.”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용자들에게 ‘웹툰 그리기’를 가르치는 강사 손영목 씨는 최근 출소한 수강생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출소를 앞두고 ‘웹툰 그리기’ 직업훈련 교육을 받았던 김필성 씨(가명)가 보낸 편지였다. 미술과 관련 없는 일을 해왔던 김 씨는 직업훈련 교육을 계기로 처음 만화를 그리게 됐다. 머릿속 장면을 그림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 그는 매일 그림 연습에 몰두했다. 출소할 무렵 그의 손엔 700컷이 넘는 자신의 만화가 들려있었다.

김 씨는 출소한 뒤 본격적으로 웹툰 그림 채색을 하거나 명암을 넣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그렸던 습작을 포트폴리오 삼아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감을 구했다. 웹툰을 그릴 때만큼은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이력보다는 만화 결과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출소를 앞둔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도소의 직업훈련 교육이 과거 용접을 비롯한 단순 기술 분야에서 최근에는 웹툰 그리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수용자들이 교도소에서 기술을 익힌 뒤 웹툰 업계에 종사하거나 주요 공모전에서 입상하면서 새 삶을 사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17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웹툰 콘텐츠 직업훈련 과정을 수강 중인 수용자가 채색 연습을 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 교도소서 그리는 웹툰 작가의 꿈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 직업훈련동에서는 푸른색 수의를 입은 수용자 15명이 태블릿PC 화면을 바라보면서 손에 든 전자펜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웹툰 크리에이터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채색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수용자들은 책상 한쪽에 붙여둔 웹툰 그리기 프로그램 사용법과 단축키가 적힌 종이를 연신 쳐다봤다. 한 수용자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주로 수첩에 습작을 해왔다”며 “지금은 좋아하는 만평을 주로 그리고 있는데 언젠가 공개할 목표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수용자 15명은 일주일에 세 번 매일 6시간씩 6개월 동안 웹툰 그리는 법을 배운다. 컴퓨터로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법부터 웹툰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법까지 배우게 된다. 6개월 교육을 거쳐 재능과 흥미를 보인 수용자들은 교도소 내부에 있는 작업장인 ‘웹툰 스튜디오’로 옮겨간다. 외부에서 웹툰 그리기와 관련한 일감을 받아서 수용자들이 직접 색칠 작업 등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공모전에 나가 입상을 한 사례도 29건이 있고, 출소 후 웹툰 업계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2~3배 많은 급여를 받게 된 경우도 있다.

같은 시각 서울남부교도소의 또다른 직업훈련 교실에선 수용자 30여 명이 책상 앞에 앉아 ‘패션 머천다이징 산업기사’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실 곳곳에 놓인 마네킹에는 수용자들이 직접 만든 여성복이 걸려있었다. 서울남부교도소는 2024년부터 교육부 평가인증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아 패션 머천다이징 산업기사 과목의 ‘학점 은행제’를 시행하고 있다. 강사 이모 씨는 “6개월간 필기, 실기 시험을 준비해 자격증을 따면 패션 상품 기획자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창업을 하려는 분들이 더 많기에 브랜드 이름 짓기부터 원가와 손익 분석까지 ‘사장님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자격증을 딴 뒤 창업 자금을 마련해 쇼핑몰 등을 창업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17일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출소를 앞둔 수용자들이 직업훈련 교육으로 한식 조리 과정을 수강하면서 채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의 접시들은 수용자들이 직접 만든 결과물. 법무부 제공

● 강사 121명에 수강생은 6000여 명

교도소 또다른 층에서는 한식 조리사 수업을 듣는 수용자들이 앞치마를 둘러메고 ‘채썰기’ 연습에 한창이었다. 다만 수용자들이 사용하는 칼은 흉기인 만큼 모두 끝이 뭉툭하게 잘려있었다. 한식 조리를 가르치는 강사는 “직전 기수는 100%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처음엔 시간이나 좀 때우다 나가겠다던 수용자도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로 요리의 길로 가겠다면서 중식 조리법을 가르쳐주는 화성직업훈련교도소로 옮겨간 게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다만 직업 훈련 교육을 할 강사 등 인력이 부족한 점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전국 교정기관에는 청소 냉난방기 세척, 목공, 애견미용 등 총 260여 개 직업훈련 과정이 있는데 교사 인원은 이보다 적은 121명에 불과하다. 교정기관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인원은 매년 늘어 지난해 6023명 수준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형자가 직업훈련을 성실히 수료하고 출소한 이후 취업이나 창업을 한다면 안정적 사회 정착으로 이어져 사회 안전을 위한 재범의 방지에 매우 효과적”이라며 “현장 직업훈련을 담당하는 훈련교사의 인력보강과 실습장비 등 예산 확충과 지원이 필수적인 이유”라고 전했다.

법무부 제공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