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한국형 사회법원’ 추진…장애인·노인·아동에게 쉬운 재판

김은경 기자 2026. 3. 2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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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담재판부 간담회 모습. /서울행정법원

서울행정법원이 장애인·노인·임산부·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한국형 사회법원’ 구축에 나선다. 사회보장 사건 전문성을 높이고, 판결문은 쉬운 말로 쓰고, 소송 비용 부담은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독일의 사회법원 모델을 국내 법 체계에 맞게 적용해 한국형 사회법원을 추진하는 안건을 23일 전체 판사회의에서 논의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사회보장 전담재판부 확대·개편 △쉬운 판결문 도입 △소송구조(재판을 받는 데 드는 비용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제도) 확대를 추진한다.

독일 사회법원은 연금·장애급여·실업급여 등 사회보장 분야 분쟁만 전담하는 특수법원으로, 핵심 원칙이 ‘원고 친화성’이다. 일반 소송에서는 원고가 직접 증거를 모으고, 변호사를 선임해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 비용도 원칙적으로 원고가 부담한다. 하지만 독일 사회법원은 장애인이나 수급자가 소장을 낼 때 인지대(소송 수수료)가 없고, 판사가 직접 사실 조사에 나선다. 원고가 무슨 주장을 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법원이 먼저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 사회보장 분쟁의 상대방은 대개 국가나 공공기관으로 사회적 약자인 원고가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원이 나서 보완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독일 사회법원 모델을 따오겠다는 것이다. 먼저 사회보장 전담재판부를 확대한다. 기존 서울행정법원의 사회보장 전담재판부는 산업재해 사건을 전담으로 맡아왔다. 이를 올해부터는 장애인·노인·임산부·아동 관련 사건 전반으로 확대했다. 3월 현재 합의부 6곳과 단독 판사 7명이 사회보장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쉬운 판결문’도 시범 도입한다. ‘이지 리드(Easy Read)’라고도 불리는 쉬운 판결문은 복잡한 법률 문서를 짧고 쉬운 문장·그림으로 바꿔 쓰는 것이다. 예컨대 보통 판결문에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 같은 법률 용어가 쓰이는데, 이를 ‘원고는 수어 통역을 거쳐야 하는 청각장애인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면접 시간이 주어졌어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세심하게 살펴본 결과, 면접 과정은 불공평하지 않았습니다’와 같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소송 결과를 전달하는 것이다.

소송구조도 확대한다. 장애 유형별 전문 변호사 풀(pool)을 구성하고, 장애 관련 사건은 접수 단계에서 원칙적으로 전액 소송구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는 주거지 근처 변호사를 배정하는 ‘찾아가는 소송구조 서비스’도 도입한다.

서울행정법원은 법원행정처에 소송구조 변호사 보수를 현행 대비 4~5배(400만~500만원)까지 올리는 예규 개정을 요청한 상태다. 전문 공익 변호사의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법률구조공단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에게 먼저 연락하는 ‘보다 쉬운 변호사 연결 서비스’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형 사회법원은 올해 2월 부임한 정선재 법원장과 강우찬 수석부장판사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 법원장은 사법연수원 기획총괄 교수이던 2009년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판사인 최영 판사(당시 사법시험 합격자)의 연수원 입소를 직접 총괄했다. 서울고법 재판장을 맡던 2023~2026년 업무 과중으로 자살한 중간관리자 사건, 화학물질 노출로 췌장암에 걸린 근로자 사건 등 1심에서 기각된 사회보장 사건을 항소심에서 잇따라 뒤집는 판결을 했다.

강 수석부장판사는 2022년 국내 최초로 ‘쉬운 판결문’을 작성한 판사로 알려져 있다. 지적장애인 원고가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은 사건을 기각하면서 판결문 주문 옆에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고 적고, 그림과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을 붙여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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