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박해준 "'폭싹' 직후 악당 역 제안에 부담… 류승완 감독 믿고 OK"[인터뷰]

[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영화 '휴민트'에서 박해준은 흡입력 강한 연기력으로 악랄하고 인간미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타인의 약점을 죄책감 없이 유린하는 북한 총영사 황치성를 맡아 압도적인 빌런의 매력을 선보였다. 전작 '서울의 봄'에서의 카리스마나 '부부의 세계', '폭싹 속았수다'에서의 생활 밀착형 얼굴과는 또 다른 결을 완성했고, 특히 차갑고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과 맞물린 그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날것의 욕망을 가진 악역의 존재감에 푹 빠져들게 했다.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준은 완성된 영화에 대해 "배우들의 움직임이 충분히 절제되고 깊이가 있어서 멋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입을 뗐다. 이어 그는 "(함께 연기한) 다른 친구들이 감정을 절제하면서 깊이 있게 표현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긴장감이 서려 있는 게 무척 멋있게 느껴졌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류승완 감독과의 작업이었지만, 박해준에게는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전작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상반된 악역 캐릭터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에 대한 연기적 부담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누구나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감독님이지 않나요? 대본도 정말 잘 읽혔어요. 다만 작년에 '폭싹 속았수다'를 했는데 이번에는 악당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좀 있었죠. 이전에 했던 연기랑 겹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고요. 그런데 감독님과의 첫 만남에서 딱 해결이 됐어요. 황치성이라는 배역이 그간 했던 연기들과 다르고, 무엇보다 감독님이 이 역할에 대해 정말 촘촘하게 알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저는 액션보다는 휴머니즘 같은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톰 행크스의 연기를 좋아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매력에 눈이 가더라고요. 감독님이 저를 찾으셨을 때 정말 감사했죠."

영화 속 황치성은 우아한 액션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박해준은 대역을 쓰기보다 직접 몸을 던지며 인물의 절박함을 시각화하는 데 주력했다.
"사실 '휴민트'에서 저는 직접 타격을 주고받는 액션보다는 혼자 구르고 자빠지고 소리 지르는 걸 더 많이 했어요. 다른 친구들보다는 액션 강도가 낮았고 오히려 총기를 다루는 모습이 능숙해야 했죠. 그런 부분을 태상호 군사 전문 기자님(자문)이 잘 만져주셨어요. 저는 액션을 할 때 몸을 안 사리는 편이에요. 인물 간의 움직임이 좀 다르다 싶으면 대역을 쓰기보다 제가 직접 하는 편이죠. 황치성은 액션에서 훨씬 자유로워요. 급하면 한 손을 써야 할 때도 있고 절박하게 코너에 몰리는 상황도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죠. 우스꽝스럽게 자빠지는 모습조차 과감하게 표현해야 인물의 절박함이 잘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라트비아의 이국적인 공간은 배우 박해준에게 황치성으로서의 권위를 세워주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는 공간이 주는 힘을 믿고 그 안에서 스스로 우위에 서기 위해 끊임없이 몰입했다.
"박정민 배우가 저를 보고 '얼음이 됐다'고 할 정도로 압도감을 느꼈다는데, 아무래도 무스탕 의상이 좀 위압적이긴 했어요. 어떻게 보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현지 날씨나 구조물들을 보니까 궁합이 참 잘 맞더라고요. 저는 작업을 할 때 그 공간이 내 공간이라면 스스로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극 중 식당이나 사무실처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최대한 편안하게 연기하고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지려고 했죠."

살을 에듯 차가운 블라디보스토크의 공기를 담아내기 위한 라트비아 로케이션 촬영은 고됐지만 배우들 사이의 유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끈끈했다. 낯선 타국 땅에서 서로가 유일한 의지처였던 시간은 작품 속 앙상블로 이어졌다.
"현지 촬영은 생각보다 버틸 만했어요. 외국 분들이 춥다고는 하는데 뼛속을 아리는 추위까진 아니었거든요. 근데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진짜 춥더라고요. 공항 신 찍을 때 정말 추웠죠. 그래도 배우들끼리 저녁도 먹고 힙한 곳에서 맥주도 한 잔씩 했어요. 이동 중에 눈이 엄청나게 와서 다 같이 눈밭을 걷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도 남아있을 거에요. 해외다 보니 우리가 배우인 줄 모르고 그저 낯선 동양인 관광객처럼 보잖아요? 현지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는데 함께 뛰고 노래도 불렀어요. 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죠. 현장에서 의지할 곳이 서로뿐이라 더 절실하게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정민이는 그 기억이 너무 좋았는지 나중에 라트비아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죠."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부터 '서울의 봄'의 노태건,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 그리고 '휴민트'의 황치성까지 박해준의 필모그래피는 최근 쉼 없는 흥행 연타석을 기록 중이다. 그는 이 모든 성과를 자신의 안목보다는 '운'과 제안해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돌렸다.
"사실 제가 한 작품들은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작품들이에요. 아내는 제가 그런 작품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좋대요. 제가 눈이 좋아서 고른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좋은 작품을 제안해 주신 거니까 참 고마운 일이죠.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얼마 전 아내랑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부부의 세계' 이태오를 했던 사람을 '폭싹 속았수다' 관식으로 캐스팅할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 당신도 참 잘했다'고 해주는데, 뿌듯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인터뷰 내내 작품과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은 박해준은 최근 홍보차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틈만 나면,'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출연했는데 게임에서 이기니까 금메달을 딴 것처럼 좋더라고요. 홍보하는 동안 함께 연기했던 친구들과 어떤 일을 같이 도모한다는 게 참 재미있고 기분이 좋았어요. 영화 '휴민트' 역시 그런 즐거운 에너지와 치열한 고민이 담긴 작품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eyoree@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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