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무슨 버스를"… 차별 굴하지 않고 2층 버스 책임지는 이 사람
<25> 여성 버스 기사 강희정씨
어릴 적 아버지 보며 버스 기사 꿈꿔
위협 운전, 승객 차별 고초 겪었지만
성실로 대응하며 20년 넘게 활동해
"여성 근로자의 길 열어 자부심 느껴"
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요즘 부쩍 여성 승객분들이 와서 '버스 기사는 어떻게 해요?' 하고 물어보세요. 나이 드신 분들은 '왜 나는 이런 일을 할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멋있다고 해주시고요."
16일 경기 수원시의 서둔동 차고지. 고개를 꺾어 한참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한 4m 높이의 2층 버스가 줄줄이 주차돼 있다. 오후 3시 30분이 되자 경진여객운수 사무실에서 버스 기사 강희정(63)씨가 나와 7770번 버스에 다가섰다. 꽂혀 있던 전기차 충전기를 뽑고 운전석에 올라타 핸들을 돌리니 버스가 부드럽게 차고지를 빠져나갔다. 집채만 한 동물을 능숙하게 다루는 베테랑 조련사를 지켜보는 듯했다.
올해로 20년 넘도록 버스를 몰고 있는 강씨는 총 6대인 7770번 2층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 중 유일한 여성이다. 777번 입석 버스를 포함해 15년간 수원역과 사당역을 오가며 수많은 이의 통근·통학길을 책임져 왔다. 그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승객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 기사로서, 이 직군에서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길을 튼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성별이 상관없는 새 천년이 온다면 버스를 몰아야지"

새 천년의 희망과 종말론의 두려움으로 어지럽던 1999년. 2000년부터는 초고속 컴퓨터 시대가 된다느니, 성별과 나이의 경계가 모두 파괴된다느니 하며 별천지 세상이 올 것처럼 온 사회가 들떠 있었다.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다 일을 쉬던 젊은 강씨도 괜히 마음이 부풀었다. 사실 그에게는 남모를 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성별과 나이가 상관없는 새 천년이 온다면 나는 꼭 버스를 몰아야지."
강씨는 사업을 위해 덤프트럭을 몰던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아버지는 대형 면허를 따려고 영등포의 한 자동차 학원을 다닐 때부터 어린 강씨를 데리고 다녔다. 딸의 눈에는 아버지가 큰 차를 모는 모습이 더없이 멋있었다. 더 커서 트럭에 타 봤을 땐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달라 보여 더 좋았다. 하지만 큰 차를 몰고 싶단 꿈은 늘 현실 앞에서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혹시 몰라 대형면허를 따둔 강씨는 2000년이 되자마자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지나가는 버스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기사 일을 찾았다. 하지만 "무슨 여자가 버스를 한다 그래?"라는 모진 말만이 돌아왔다. 경기 오산시의 한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여자는 안 뽑는데 검토해 볼게요"라며 심드렁한 답변만 받았다. 그날 강씨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진탕 마시며 좀처럼 일이 안 풀리는 처지를 한탄했다.
뜻밖에도 다음 날 오산의 버스 회사에서 주행 시험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얼떨떨했던 강씨가 "저 어젯밤에 술 마셨어요"라고 하자 "어젯밤에 마신 거지, 오늘 마신 것 아니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주행 시험을 무사히 마친 그는 곧장 버스 기사가 됐다. 2000년 1월 27일, 강씨는 첫 발령일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네가 뭔데 남자가 직장을 잃게 하느냐"던 승객에게

당시 여성 버스 기사는 도로의 구경거리인 동시에 공격의 대상이었다. 강씨는 쉽지 않았던 신출내기 때를 떠올렸다. "괜히 저를 건드려 보려고 다른 운전자들이 위협적인 운전을 많이 했어요. 우리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 여자 기사 언제 나오냐'고 물어서 일부러 제가 운전하는 걸 신기하게 지켜보는 분들도 있었죠."
강씨는 그저 실력과 성실성으로 대응했다. IMF 사태 직후라 실직자가 우후죽순 생겨나던 무렵이라 "네가 뭔데 남자가 갈 수 있는 직장을 하나 잃게 하느냐"며 애꿎은 강씨를 탓하는 승객도 있었다. 그때마다 강씨는 별말 없이 "안전운전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라고 답했다. 이건 고루한 차별의식에 대응하는 강씨 특유의 방식이었다. 업계 내에서도 강씨를 무작정 나쁘게 보는 동료가 더러 있었지만 언젠간 진심을 알아줄 것이란 마음으로 일관되게 일했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냉정했다. 계속된 위협운전 탓에 무리하게 브레이크를 밟다가 강씨 버스가 미끄러졌고, 다른 차를 들이받으면서 취업 1년 만에 면허를 잃게 된 것이다. 억울함을 증명할 블랙박스조차 제대로 달려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2년 공백 끝에 면허는 다시 땄지만 그때부턴 시어머니가 강씨의 재취업을 말렸다. 그러자 1년간 성실했던 강씨를 좋게 봤던 회사의 전무가 직접 시어머니를 찾아 설득에 나섰다. "요즘은 여성들도 직업 전선에 많이 뛰어듭니다, 기회를 주시죠." 전무의 집요함과 강씨의 열정은 시어머니도 말리지 못했다. 늦둥이 아들을 맡아 키워 준 시어머니 덕에 강씨는 지금껏 일할 수 있었다.
정년까지 끝없는 도전... "여자라고 고민하지 마세요"

오전·오후 조로 나뉘는 2교대 근무는 물론 쉽지 않다. 첫차 시간부터 오후 2시까지 종일 버스를 모는 오전 조와, 오후 3시 30분부터 막차까지 버스를 모는 오후 조 모두 대략 하루 10시간씩 고강도로 일한다. 하지만 강씨는 차별 없이 일하는 대로 버는 급여 덕에 만족스럽다고 했다. "제 지난해 연봉이 7,500만 원 정도였거든요. 65세 정년까지 성별 차별 없이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2층 버스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 만큼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 기피하는 기사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3년 전 2층 버스 지원 기사 모집 소식이 들렸을 때 강씨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그는 "퇴직 때까지 새롭게 도전할 기회가 생기면 다 해보고 싶다"고 했다. 최근 노사 협의로 2층 버스 기사는 하루 1만 원씩 더 벌게 됐으니 강씨에겐 더 좋은 일이다.
강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차 전 계단을 오르내리려는 승객에게 안전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매번 승객 안전을 위해 "차 서고 나면 내려오세요" "지금 올라가세요" 등을 안내할 때면 간혹 "시끄럽다"거나 "잔소리가 많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승객도 있다. 그러면 강씨는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건 제 의무이고, 기사의 의무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승객들을 납득시키고 있다.
지금도 강씨는 버스 일을 어떻게 시작하느냐고 묻는 여성 승객들이 남 같지 않다. 대형 면허와 관련 자격증을 따고, 가까운 버스 회사에 문의해 보라는 조언과 함께 간혹 본인 전화번호를 쥐여줬던 것도 그래서다. 그는 말했다. "여자라고 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승객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대담한 성격과 책임감만 있다면 할 수 있는 도전을 다 해 보세요."
수원=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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