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점검했다더니...” 허술한 감시망, ‘유령 영농조합’ 사태 키웠다

박성우 기자 2026. 3. 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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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문제 인지 못해"...도내 영농법인 1700여곳 감시, 인력난에 '끙끙'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생성 이미지.

스타 셰프의 이름값을 도용한 '가짜 조합원' 모집과 '사문서 위조' 논란에 휩싸인 제주도내 모 영농조합법인이 적법한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유령 조합'으로 전락했음에도 행정당국의 감시망이 이를 걸러내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한 세제 혜택을 받는 영농조합법인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제가 불거진 서귀포시 소재 B영농조합법인이 최초 설립된 시기는 2006년이다. 그러나 실질적 운영자인 전 감사 C씨가 정관을 임의로 개정하고 비농업인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조합원 모집에 나선 것은 2020년 이후의 일이었다.

법조계와 내부 관계자들의 교차 검증에 따르면 B조합은 이미 이 시기부터 농업인 조합원 요건을 상실해 조합으로서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껍데기' 상태였다. 영농법인의 설립 및 유지에 필요한 법정 최소 인원은 '농업인 5인 이상'이지만, B조합 내 적법하게 자격을 취득한 조합원은 1~2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문제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정상 운영되는 것처럼 서류가 꾸며져 행정당국의 감시망에 단 한 번도 포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시망이 제때 작동했다면 피해자와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행정당국은 농업법인의 적법한 운영과 효율적 관리를 위해 정기적인 운영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각 읍면별로 진행되는 이 조사는 조합원이나 주주의 인적 사항은 물론, 사업 범위, 소유 농지 규모 및 실제 경작 유무,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 상의 영업 외 수익, 부동산 보유 현황 등을 광범위하게 들여다보도록 규정돼 있다.

정부는 영농조합법인에 막대한 세제 혜택과 각종 보조금 사업 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대신, 관리에 철저를 기하기 위해 이 같은 실태조사를 의무화했다. 행정기관은 법인에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조사 결과 불법 사항이 적발될 경우 과징금 부과는 물론 법인 해산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특히 과거 3년에 한 번씩 실시하던 정기 조사는 시행령이 개정된 2022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것으로 대폭 강화됐다. 현 시점에도 지난해 12월에 시작된 정례 점검이 오는 4월까지 진행중이다.

2022년 이후 최근 3년에 걸쳐 해마다 실태조사가 이뤄졌음에도 B법인의 치명적인 결점은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순 운영상의 미비점이 아닌, 조합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해 감시 제도가 사실상 허점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러한 행정 공백의 이면에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상 한계와 인력난이라는 구조적 모순이 숨어 있다.

현재 제주도내 운영 중인 영농조합법인은 제주시 1042곳, 서귀포시 676곳을 합쳐 총 1718곳에 달한다. 설립 연도 역시 1990년대에 세워진 법인부터 설립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신생 법인까지 다양하다.

원칙적으로 실태조사는 '현장 조사'를 기본으로 하되, 자료 제출 요청 등을 통한 서면 조사를 병행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해당 업무를 전담하는 각 행정시와 읍면 단위의 소수 인력이 1700여곳에 달하는 법인을 매년 실사하는 것은 현실적인 한계가 뒤따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출된 서류를 검토해 보고 눈에 띄는 특이점이 발견되는 경우에만 현장을 찾아보는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마저도 법인의 복잡한 지분 구조나 회계장부의 횡령 정황 등을 파헤치기보다는, 농지에서 실제 농업이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는 정도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관련법이 강화되기 전인 2016년 이전에는 별도의 까다로운 신고 절차 없이도 농업법인을 쉽게 등록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설립된 법인들이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편법 운영을 하더라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고질병도 앓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관할 관청인 서귀포시 관계자는 행정의 한계를 일부 인정했다.

서귀포시 관계자는 "매년 조사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B법인에 대한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해당 영농조합의 문제가 공론화된 만큼, 내부적으로 관련 서류와 운영 실태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해명했다.

조합을 둘러싼 수사기관의 규명과 더불어 제도적 개선 역시 뒤따라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