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35) 조현수 한국화가

한유진 2026. 3. 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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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 위 동박… 시간의 흔적 쌓는 곳

한국화 전공… 전통적 이미지 현대적으로 풀고 싶어
일상서 마주한 감각으로 작업… 다양한 재료 실험도
닥종이·동박 주재료, 부식되는 과정서 생명감 느껴
“그간 쌓아온 작업에 집중… 지역 풍경 담아내고파”


조현수(31) 한국화가는 닥종이 위에 동박을 입혀 시간이 지나가는 풍경을 담아낸다. 부식되어 가는 동박은 소멸이 아닌 생동의 과정이다. 일상에서 마주한 감각과 맞물리며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시간의 흔적을 쌓아가는 그를 창원 사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조현수 화가가 작업실에서 닥종이에 입힌 동박이 부식되며 만들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조명 위치와 종이 배열에 따라 앞면(오른쪽)과 뒷면의 이미지가 다르게 드러난다.

조현수 화가가 작업실에서 닥종이에 입힌 동박이 부식되며 만들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조명 위치와 종이 배열에 따라 앞면(오른쪽)과 뒷면의 이미지가 다르게 드러난다.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위치한 조현수 화가 작업실.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위치한 조현수 화가 작업실.

◇시간과 계절을 마주하는 공간

-작업실 소개를 부탁드린다.

△여기는 세 번째 작업실이다. 지금껏 모든 작업실이 사림동에 있었다. 현재 작업실은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도 들리고 옆에는 경로당이 있어 어르신들께서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리는 정겨운 공간이다. 특히 여름이면 작업실에서 보이는 나뭇잎들이 무척 아름답다.
조현수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반지하 작업실에서 닥종이에 입힌 동박이 부식되며 만들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조명 위치와 종이 배열에 따라 앞면(왼쪽)과 뒷면의 이미지가 다르게 드러난다. /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반지하 작업실에서 닥종이에 입힌 동박이 부식되며 만들어지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조명 위치와 종이 배열에 따라 앞면(왼쪽)과 뒷면의 이미지가 다르게 드러난다. /김승권 기자/

-작업실 곳곳 화분이 많은데.

△저는 식물을 키우는 걸 좋아한다. 식물은 처음 받아봤을 때의 모습도 예쁘지만,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 또한 즐겁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선들이 특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과정을 제 삶에 대입해 보기도 한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식물들이 자라나듯 저 역시 그렇게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때때로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러한 관심은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수풀’이라는 작업이었는데, 생생하게 자란 모습보다는 여름 끝자락 더위에 말라죽기도 하고 또 새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그런 풍경들을 보며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다양한 재료 실험 흔적도 눈에 띈다.

△어느 날 땅을 그리고 싶어 흙의 색을 유심히 바라봤는데,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이유를 찾아보니 철이 산화되면서 나타나는 색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흙으로 물감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또 말라카이트라는 원석을 열로 부식시키며 원하는 색을 찾기 위한 실험도 진행했다. 무엇이든 해볼까 싶으면 시도해 보는 편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결국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작업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조현수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닥종이에 입힌 동박이 부식되며 형성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의 반지하 작업실에서 닥종이에 입힌 동박이 부식되며 형성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승권 기자/

◇일상에서 자라나는 작업들

-작가가 된 계기가 있다면.

△삼남매 중 막내인데, 오빠와 언니 모두 미술을 공부했다. 언니와 오빠는 미술 교사의 길을 걸었고, 저 역시 자연스럽게 미술 교사를 생각했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당시 미술학과는 서양화, 한국화, 조소 세 전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서양화는 익숙했지만 한국화는 무엇을 배우는지 잘 몰랐다. 오히려 그 낯선 점이 흥미로워 선택하게 됐다. 접해보니 전통 재료와 종이를 다루는 방식에 이끌렸다. 그때부터 다양한 재료를 실험하는 재미를 느끼며 용접을 배우거나 돌을 깎는 등 여러 시도를 이어갔다.

작업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러한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주민들이 예술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어야 작가 역시 설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작업과 교육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 됐다.
조현수 화가 작업실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 작업실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영감은 어디서 받나.

△제 작업의 영감은 생활하는 반경에서 오는 것 같다. 산을 그릴 때는 백패킹이 취미여서 배낭을 메고 창원 일대 산을 다니며 풍경을 많이 접했다. 그때 느낀 감각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 살면서 보게 되는 풍경들, 감각을 마주하기 위해 계속 눈을 뜨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결국 작업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들,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조현수, 스스로 그러한 2024 닥종이 위에 동박 267x780x600cm.

조현수, 스스로 그러한 2024 닥종이 위에 동박 267x780x600cm.
조현수 作.

조현수 作.

◇동박과 닥종이가 표현하는 시간의 흔적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물성을 탐구하고 있다. 닥종이 위에 동박을 입힌 화면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서서히 부식되고 변해간다. 이러한 변화는 낡은 건물의 외벽이나 사람의 주름, 오랜 시간을 지나온 산과 나무의 표면처럼 우리 주변에 축적된 시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제 작업에서 부식은 사라짐과 남음이 교차하며 드러나는 시간의 흔적이다. 화면 속 자연의 형상은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되지 않은 채 흐른다.
조현수, 다시 일어나는 땅 2, 2025, 닥종이 위에 동박, 116.8×80.3cm.

조현수, 다시 일어나는 땅 2, 2025, 닥종이 위에 동박, 116.8×80.3cm.

-지금의 작업 세계는 어떻게 형성됐나.

△한국화를 전공하면서 ‘먹으로 산을 그리느냐’는 식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한국화를 전통적인 이미지에만 머물러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도 중요하지만, 이를 좀 더 현대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재료적인 것들에 관심이 먼저 갔다면, 이후에는 직접 자연을 찾아다니며 그릴 이미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날 대나무 숲을 갔는데,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켜 주는 듯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이 경험을 통해 자연의 이미지에 동박을 콜라주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조현수 화가가 원하는 색을 찾기 위해 실험한 재료를 확대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가 원하는 색을 찾기 위해 실험한 재료를 확대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 작업실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 작업실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 작업실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조현수 화가 작업실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동박과 닥종이를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면.

동박은 시간이 지나며 색이 변하고 부식되는 재료다. 전시 중에도 환경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런 변화가 오히려 생명감 있게 느껴진다. 하나의 장면이 고정되지 않고 변해 가는 상태를 작업 안에 담고 싶다. 사람에게 주름이 생기듯, 재료 역시 시간과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닥종이는 따뜻한 질감과 유연한 특성이 있다. 이러한 물성을 살리기 위해 조명을 활용한 설치 작업이나 재료 연구도 하고 있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은 제가 주로 걷던 산책길의 풍경을 소재로 했다. 조명 위치와 종이 배열을 달리하고 뒷면에 남은 추상적인 형태와 종이 질감을 통해 관람자가 그림 속에서 산책하듯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조현수 한국화가./김승권 기자/

조현수 한국화가./김승권 기자/

◇쌓아온 작업, 확장하는 시간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얇은 닥종이로 레이어를 둬서, 앞에는 동박을 뒤에는 먹을 사용한 작업을 했었다. 이러한 방식의 작업을 더 확장해 보고 싶다. 새로운 도전도 좋지만 올해는 지금까지 쌓아온 작업을 다시 들여다보며 제가 가진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 해온 작업들에 살을 붙이고 그 안에서 발전을 이어가고 싶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고 해외 아트페어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또한 경남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 만큼 지역의 풍경을 담아내고 싶다.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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