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병동에서 쓰는 또 하나의 처방전

한태환 2026. 3. 2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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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12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생님, 우리 아이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소아병동 회진을 하다 보면 보호자들에게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다. 낮의 병동은 분주하다. 아이들은 제 키보다 큰 수액 폴대를 끌고 복도를 오가고, 부모들은 그 뒤를 따라다니며 상태를 살피거나 끼니를 챙긴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며칠 전의 긴박했던 순간, 서늘한 공포 앞에 여전히 멈춰 있다.

얼마 전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15개월 민준이(가명)도 그랬다.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몸이 뻣뻣해지고 팔다리를 떨었다고 했다. 발작은 1분 남짓 지속됐고, 체온은 39도까지 올랐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검사 결과는 흔한 인플루엔자 감염, 그리고 전형적인 단순 열성 경련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달리 보호자는 좀처럼 평온을 되찾지 못했다.

"혹시 나중에 뇌전증으로 이어지진 않을까요? 발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죠? 이제 겨우 돌을 지난 아이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건 아닐까요…."

첫째였고, 태어날 때도 자라면서도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끝마다 짙은 자책이 묻어났다. 조금 더 자란 뒤에 어린이집에 보냈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열을 알아챘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질병은 예기치 않은 사고처럼 찾아오지만, 부모는 그것을 자신의 선택과 연결 지으며 스스로를 죄책감이라는 감옥에 가두곤 한다.

소아신경 분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나는 이런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 열성 경련은 생후 6개월에서 5세 사이 아이들의 약 2~5%가 경험하는 비교적 흔한 현상이다. 그래서 숫자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설명하려 애쓴다.

나는 이를 '미완성 설계도'에 빗대곤 한다. 아이들의 뇌는 아직 성장 과정에 있고,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망도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고열이라는 강한 자극이 더해지면 미성숙한 회로에 일시적인 과부하가 걸린다. 잠깐의 '전기적 소동'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소동이 뇌세포를 손상시키거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물론 드물게 예외는 있다. 15분 이상 지속되거나 하루에 여러 차례 반복되는 복합 열성 경련이라면 추가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준이처럼 짧게 끝나는 단순 열성 경련은 훗날 뇌전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이를 경험하지 않은 일반 인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도 어릴 적 같은 일을 겪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의사에게는 익숙한 상황일지라도, 부모에게는 생애 처음 맞닥뜨린 공포다. 그래서 '흔하다'거나 '일시적이다'라는 말은 충분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루 종일 입원 환자를 돌보는 입원전담 전문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다. 짧은 외래 진료에서는 아무리 성실히 설명해도 보호자는 근심 어린 얼굴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병동에서는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사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돌봐야 할 대상은 둘이다. 증상을 또렷이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 환자, 그리고 그보다 더 아파하고 더 불안해하는 보호자. 때로는 아이의 몸보다 부모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결국 굳은 표정을 풀어주는 가장 확실한 처방은 전문의로서의 성의와 확신을 담은 한마디다.

"괜찮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입원 3일째, 민준이는 더 이상 경련을 보이지 않았고 열도 내렸다. 얼굴에 드리웠던 걱정 역시 서서히 옅어졌다. 퇴원을 앞둔 마지막 회진에서 나는 재발 시 대처 방법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혹시 다시 발작이 나타나더라도 아이를 흔들거나 입에 무언가를 넣지 마세요. 옆으로 눕혀 기도를 확보하고, 지속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교육은 어쩌면 아이보다 보호자를 위한 것이다. 열성 경련은 대개 몇 분 안에 자연스럽게 멈춘다. 올바른 자세와 침착한 대응만으로도 충분히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다시 찾아올지 모를 그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와 무력감은 크게 줄어든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놀랍다. 퇴원하던 날, 민준이는 며칠 전의 소란이 언제 있었냐는 듯 건강한 모습으로 병실을 나섰다. 곁을 지키던 수액 폴대도 더는 필요 없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그에게 이 시간은 기억의 창고 깊숙이 들어가 흐릿한 배경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기억 속에는 서늘했던 장면이 또렷이 새겨져, 언제라도 다시 떠오를지 모른다. 의학적 완치가 곧 마음의 안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열성 경련은 이제 눈을 감고도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질환이다. 나에게는 수없이 반복해 온 설명이지만, 보호자에게는 단 한 번뿐인 이야기다. 같은 문장을 건네면서도 매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병동에서 배운다. 나의 익숙함이 혹여 누군가의 두려움을 가볍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소아과 전문의로서 아이 곁에 머문 시간이 신체의 회복을 돕는 과정이었다면, 입원전담 전문의로서 나눈 긴 대화는 부모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처방전이 되었기를 바란다.

아이는 곧 나를 잊겠지만, 부모는 내가 전한 설명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훗날 다시 아이 이마가 뜨거워지고 경련을 일으키는 순간을 맞닥뜨리더라도, 덜 당황하고 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안을 수 있도록.

내가 돌보는 것은 한 아이의 질환만이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견디는 보호자의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음 환자에게 향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태환 교수

대한입원의학회 병원진료위원장

(연세대의대 용인세브란스병원 입원의학과 임상조교수)

<편집자주>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한태환 교수 (howyadoin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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