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냈는데, 내 건 없다”…구독경제가 낳은 ‘디지털 월세’의 덫
기업은 ‘서비스’라지만…소비자는 통제권 잃은 ‘이용자’로 전락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테슬라는 2월14일 북미 시장에서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 기능을 월 구독 모델로 전환했다. 테슬라는 당초 FSD에 대해 8000달러 일시불 구매와 월 99달러 구독 모델을 병행 판매했으나, 비용 장벽을 낮춰 소비자를 유인하고자 구독 모델 확대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소비자 사이에서는 "차량을 7년 이상 타지 않을 것이라면 구독이 이득"이라는 의견과 "장기적으로 구독료가 인상돼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BMW는 2022년 차량에 내장된 열선 시트를 월 구독제로 전환하려다 소비자 반발을 샀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장착된 열선 시트를 사용하려면 월 2만4000원, 열선 핸들을 사용하려면 월 1만3000원의 구독료를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BMW 측은 해당 하드웨어의 가격이 차량 판매가에서 제외됐으며, 사용 시에만 구독료를 납부하면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비자들로부터 "이미 내장된 기능으로 구독을 강요하는 건 기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서비스를 철회했다.
웹툰 플랫폼 피너툰은 편당 500원을 내면 웹툰을 무제한 열람할 수 있는 '소장권'을 판매했다. 일시 대여가 가능한 상품도 판매됐지만, 한 번 결제하면 평생 웹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격이 비싼 소장권을 택하는 소비자가 적잖았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소비자들이 구매한 소장권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피너툰 측은 환불은 물론 백업과 대체 서비스 제공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웹툰을 평생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소비자와 창작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언제든 해지 가능? 그만큼 쉽게 사라진다
4900원으로 수천 개 영화와 드라마를 마음껏 시청할 수 있는 시대. 우리 사회에 스며든 구독경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편리성과 경제성을 앞세워 빠르게 확산됐다. 고가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필요한 기간만 이용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해지할 수 있다는 '선택지'는 마치 소비자가 거래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그러나 모든 재화에 구독 서비스가 적용되면서 비용을 지불하고도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불완전한 소유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는 구매와 동시에 소유권이 소비자에게 이전되지만, 구독 서비스는 소유권이 기업에 귀속돼 있어 이용을 중단하는 순간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권한을 일절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정 비용을 계속 지불해야만 소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월세'에 가깝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IT 업계에서는 문서 작업에 활용되는 한컴오피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이 최근 구독형 서비스로 전환되면서 이 같은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한컴오피스는 구독형 개인용 서비스를 월 6900원에 제공한다. 영구 사용이 가능한 제품(9만9000원)과 비교하면 초기 비용이 낮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최신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독형이 유리한 것처럼 비친다. 필요할 때만 서비스를 구독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해지하는 방식을 통해 비용 절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상 장기 구독이 불가피한 구조다. 서비스를 장기간 이용하거나, 서비스를 완전히 해지하는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한컴오피스를 5년간 사용하면 총 구독 비용은 24만5040원을 부담해야 한다. 영구 라이선스 제품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다. 또한 서비스를 해지하면 구독형 모델에서 작성한 문서의 편집이나 폰트 변경도 제한된다. 현명한 소비를 위해 구독을 택했지만, 자신이 만든 문서조차 활용할 수 없어 구독을 영영 끊지 못하는 일종의 인질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구독 서비스의 '반쪽 소유권'이 이용 중에는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동안 언제든지 이를 해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구독을 해지하거나 기업이 서비스를 중단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해당 서비스의 소유권이 없어 구독을 쉽게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비용을 지불하고도 안정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밑 빠진 독에 '디지털 월세'만 붓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는 것이다.

영구 소장, 실체는 라이선스 대여?
불완전한 소유권 문제는 특히 디지털 콘텐츠 등 무형 서비스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웹툰·웹소설 플랫폼들은 일정 금액을 구독료로 지불하면 '평생 소장'이 가능한 것처럼 상품을 판매한다. 그러나 정작 서비스가 종료될 경우 해당 콘텐츠의 이용 권한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다. 실물이 존재하는 상품은 상품의 빈껍데기라도 소유할 수 있지만, 무형의 서비스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종료한 웹툰·웹소설 플랫폼 코미코는 경영상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판매된 소장 작품을 환불하겠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환불 대상에 포함된 상품은 구매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도서에 한정됐다. 업체는 콘텐츠 이용자 보호지침에 규정된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지만, 소장권을 구매해 책을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독자들로서는 황당한 조치였다.
백지연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보고서에서 "디지털 콘텐츠 거래 시 사용하는 '영구 소장' '구매' 등의 용어는 콘텐츠 이용이 무기한으로 가능함을 강조해 이용자가 디지털 콘텐츠의 소유권을 구매한다는 오인·혼동을 일으키는 이용자 기만의 우려가 있다"며 "사업자가 사업 포기 등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되는 경우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권을 보장하거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구제 조치를 명문화해 콘텐츠 구매에 따른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구독 서비스를 둘러싸고 소비자의 오인을 막기 위한 규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소비자가 구독 전에 실질적인 소유권이나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부터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게임, 영화, 음악, 도서 등을 구입할 때 소유권으로 인한 오인·혼동을 막기 위해 '구매'나 '소유'라는 표현 사용을 제한하는 디지털 상품 라이선스 명시법을 시행 중이다. 디지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해당 상품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구독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도 디지털시장·경쟁·관리·소비자법(DMCC)을 통해 구독형 서비스가 '소유(Own)'라는 표현으로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 경우 글로벌 연 매출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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