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멋진 야경 30분만 투자하세요 [퇴근 산행]

퇴근 후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끌고 현관문을 연다. 자동센서등이 주인을 반긴다. 가방을 바닥에 던져놓고 뱀 허물 벗듯 옷을 벗는다.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유튜브를 튼다. 10초에 한 번씩, 재미 없으면 1초에 한 번씩 스크롤을 내린다. 의미 없이 쇼츠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방 안은 어둑해지고, 저녁 식사는 한참 늦어졌다. 배달 앱을 열고 야식을 시킨다. 첫 입은 만족하지만 이내 더부룩하다. 순간은 달콤하지만 끝맛은 공허하다.
문득 떠오른다.
'퇴근 후 일상을 건강한 레포츠로 채울 수 없을까?'
이왕이면 실내보다 실외면 좋겠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준비했다. 동네 뒷산 같은 근교 산에서 노을과 야경을 즐기는 직장인 산행 가이드. 야간 산행은 특별한 즐거움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여러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유의사항을 잘 지키고 준비물을 챙긴다면 도심 속에서는 느끼기 힘든 특별한 감성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이토록 멋진 뷰
서울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으로 간다. 친절하게도 역명에 산 이름이 있어 산행 기점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퇴근 인파를 거슬러 서울 북동쪽으로 향하는 기분이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같다. 요즘은 시차출퇴근제가 활성화돼서 그런지 제법 이른 시간인데도 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재택근무자나 프리랜서도 시간을 조율해 퇴근 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무리 없을 듯싶다.
'퇴근 후 산행'의 첫 행선지가 용마산(349m)인 것은 이만한 '가성비'를 지닌 산이 서울에 몇 없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와 광진구, 구리시 경계에 있는 용마산은 도심과 바짝 접해 있어 30여 분 만에 정상에 이르며, 산 규모가 크지 않고 데크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보다 조금 낮은 아차산(296m)과 이어져 있어 두 산을 연계해 산행할 수도 있다. 북한산처럼 국립공원은 법적으로 야간 산행이 금지되니, 시선은 자연스레 근교의 작고 아담한 산들로 향한다.

용마산역 2번 출구로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하늘채 아파트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들어간다. 아파트 뒤편으로 놀이터가 있고 먼지털이기계 옆에 등산로가 나 있다. 아직 산에 오르기도 전인데, 가로로 누운 햇살이 볼을 어루만진다.
이제부터 '중랑둘레길(용마봉)'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라간다. 돌길을 10분 정도 걷다 보면 나무 데크 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의 시부야 스카이'로 불리며 몇 해 전부터 SNS 명소로 각광받은 곳이다. 용마산 데크 계단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이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다본 도쿄 야경과 꼭 빼닮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계단을 오르는 내내 운동화에 트레이닝팬츠 차림의 20~30대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가파른 절벽이 이어진다. 그러나 중랑구에서 용마산과 망우산을 잇는 약 10km의 '중랑둘레길' 조성과 함께 공들여 만든 계단 덕분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계단은 용마산龍馬山이라는 이름답게 용처럼 바위벽을 휘감아 오른다. 용마란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하고 있는 전설의 동물로, 용마산이라는 이름은 '아기장수가 죽은 뒤 용마가 날아올랐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마산 서쪽 사면에 설치된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 동부가 발밑에 있다.

그중 90도로 꺾이는 계단참과 그 위의 마당바위, 정상 바로 아래 있는 데크 전망대가 주요 사진명소다. 관악산·남산·북한산이 접시처럼 감싸고, 그 안으로 중랑천과 왕복 4차선의 답십리로가 교차한다. 노을이 점점 서울을 뒤덮는다. 서서히 불빛이 들어오는 도시의 빌딩들. 퇴근길 차들의 궤적. 이 모든 것들이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의 한 장면 같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반짝반짝 빛난다. 해발 349m에 불과하지만, 인근 답십리·장한평 일대가 홍수가 잦았던 저지대라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고도감도 느껴진다. 이 황홀한 찰나를 즐기려면 오르는 시간을 감안해 일몰 시간 20~30분 전에 출발하는 게 좋다.
적막과 어둠 속의 몰입
이내 어둠이 내려앉는다. 야간 산행의 필수품, 헤드랜턴을 장착한다.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 있지만, 야간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고자 능선을 타고 아차산까지 가기로 한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이어져 있어 같은 아차산군에 속한다. 따라서 '용마봉'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듯싶다. 북쪽으로는 망우산과 연결된다. 1933년부터 공동묘지가 조성된 망우산에는 한용운·방정환·이중섭 등 근·현대 역사 인물 80여 명이 잠들어 있다. 밤에 묘지를 지나친다는 게 썩 달갑지 않아 아차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계 방향으로 빙 돌아간다. 용마산 정상과 이후 '산스장'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시야도 제한되고 사람도 없어 괜히 긴장되는 탓에 지도의 나침반 방향을 참고한다. 이제 도시의 불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본 적 없는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는 순간, 담력 훈련 목적이 아니라면 야간 산행은 혼자선 금물이라는 점을 되새긴다. 그렇다고 무섭기만 한 건 아니다. 어둠이 주는 힘도 있어, 주변 시야가 차단되면서 불필요한 것들은 보지 않고 오로지 헤드랜턴이 비추는 내 주변 반경에만 집중하게 된다.

용마산에서 아차산으로 본격 접어들면, 길은 숱한 발걸음에 닳아 완만한 U자형으로 파여 있다. 3보루(아차산 정상)부터 부드러운 야자매트가 깔리고, 왼쪽으로 한강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 1보루에서 구리 방면으로 한강 조망이 제대로 터진다. 초록색 워커힐호텔 골프장과 구리암사대교, 무지갯빛 현수교 고덕토평대교가 눈에 띈다. 이 풍경을 보려고 여름밤이면 주민들이 아차산을 즐겨 찾는다. 일출 명소인 해맞이광장에 이르면 롯데타워가 정면으로 보인다.
'다음번 불꽃축제는 여기서 봐야겠는 걸?'
불꽃축제 명당을 점찍고 아차산역으로 서둘러 내려온다.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작고 가벼운 헤드랜턴 2종
야간 산행에서 헤드랜턴은 '선택'이 아닌 '필수' 장비다. 스마트폰 플래시는 밝기가 제한적일뿐더러, 지도 앱과 카메라를 병행하다 보면 배터리가 금방 바닥난다. 반면 헤드랜턴은 스마트폰이나 손전등과 달리 머리에 착용해 두 손을 자유롭게 해주며, 시선이 닿는 곳을 즉각 비추어 야간 이동을 한층 편하게 한다. 도심 근교 산행에 적합한 작고 가벼운 헤드랜턴을 소개한다.
블랙다이아몬드 디플로이 러닝 라이트

애초에 새벽이나 야간 러닝용으로 출시된 모델이다. 작고 날렵한 모양에서 이전까지 사용했던 헤드랜턴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받았다. 고무 재질의 밴드는 유연하고 가벼워 마치 헤드밴드 하나만 두른 듯한 느낌. 램프 본체는 납작해서 역동적인 움직임(수차례의 헤드뱅잉)에도 덜렁거리지 않고 미동도 없었다. 렌즈가 아래로 기울어져 있어 별도의 조절 없이 최적의 각도로 발 앞을 비출 때 든 생각, "디테일이 남다르다."
페츨 스위프트 LT

역동적인 활동에 최적화된 '퍼포먼스 헤드램프' 라인업의 따끈따끈한 신상품이다. 램프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이마뿐 아니라 목에 걸어서 정면을 비출 수 있다. 신발끈처럼 얇은 '초슬림' 헤드밴드는 땀에 젖을 걱정 안 해도 되며. 탈착해서 세탁할 수 있다. 특히, 뒤통수 부분에 달린 조임 장치에 검지를 넣어서 머리 크기에 맞게 조이고 풀기 매우 편리하다. 야간 시력 보호를 위한 적색 조명 기능은 덤.

야간 산행 유의사항

조명 사용
야간 산행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조명 에티켓이다. 다른 등산객과 마주칠 때는 헤드랜턴을 아래로 향하고, 상대방 눈에 불빛을 비추지 않는다. 헤드랜턴의 적색등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적색등은 야간 시력을 보호하고 주변 사람의 눈부심을 방지한다.
함께 가기
혼자서 야간 산행을 하면 길을 잃거나 위험할 수 있다. 아차산 일부 구간처럼 가로등이 설치돼 있거나 등산로가 잘 닦인 곳이 제외하고는 지리를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한다. 꼭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더라도 심리적 안정감 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방한 대비
겨울철에는 해가 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두꺼운 패딩 한 벌보다는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는 것이 보온에 효과적이다. 노을과 야경을 감상하며 장시간 머물 계획이라면 여분의 다운재킷이나 은박 담요(서바이벌 블랭킷)를 챙긴다. 추위로 인한 배터리 방전에 대비해 보조배터리도 휴대한다.
속도 조절
시야가 좁아진 만큼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한다. 서두르다 보면 갈림길에서 잘못된 길로 들 수 있다. 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발을 헛디뎌서 사고가 날 수 있다. 헤드랜턴의 조명이 닿는 정도로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걷는 것이 안전하다.
소음 관리
밤에는 자연의 소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로써 주변 야생동물의 서식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산행길잡이
용마산 데크 계단 코스는 용마폭포공원에서 시작한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용마산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 우회전하거나, 출구 반대 방향으로 돌아 하늘채 아파트를 끼고 왼쪽으로 도는 방법이 있다. 공원 끝 놀이터 옆에 먼지털이기계가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등산로가 나있다. 이후 '중랑둘레길(용마봉)'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10분 정도 걸으면 SNS 명소인 데크계단이 나오고, 곧이어 마당바위와 데크전망대가 닿는다.
용마산 정상부터 아차산 정상까지는 조망이 가려져 있고 어두워서 야간 산행 시 헤드랜턴이 필요하다. 다만 고도차가 크지 않은 능선길이고, 정비 상태가 좋아 산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해맞이광장부터는 가로등이 있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단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므로 지도를 참고하며 방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아차산보다 용마산 야경이 더 인상적이어서 용마산만 단독으로 산행해도 좋다. 만약 두 산을 연계해서 산행하고 싶다면, 르포 코스와 반대로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밝을 때 아차산 보루 위를 걷다가 용마산에서 노을과 야경을 만끽하며 내려오는 편이 더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교통
용마산과 아차산 모두 각 산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용마산의 경우 주로 서울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에서 출발하나, 사가정역에서도 출발할 수 있다. 아차산의 경우 주로 5호선 아차산역을 이용하며, 광나루역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아차산역에서 산 입구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맛집(지역번호 02)
산 아래 동네답게 용마산역과 아차산 인근에는 식당이 많다. 그중 아차산통갈비탕(6369-1008)은 커다란 갈빗대 두 개가 통째로 들어간 갈비탕을 선보인다. 맑은 국물과 품진한 고기는 산행 후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왕갈비탕(2대) 1만6,000원, 특갈비탕(3대) 1만8,000원. 원조할아버지손두부(447-6540)는 아차산자락 대표 두부 전문점으로, 신선한 두부와 콩국수, 다양한 막걸리를 낸다. 모두부(7,000원), 순두부(4,000원), 콩국수(7,000원).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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