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단지 하나 갖고 온 한국인 여승, 중국 원시림서 고수차 싹 틔우다 [서영수의 명산명차]

쏠쏠한 돈바람이 불어온다는 윈난성 과펑짜이刮風寨를 향해 출발했다. 새벽하늘 끝자락에 손톱달이 걸려 있다. 이우고진 동쪽으로 굽이굽이 감도는 산길을 따라 사륜구동으로 24㎞ 이동했다. 비포장으로 좁고 험했던 길은 우기가 되면 산에서 밀려 내려온 토사와 집채만 한 바위가 통행을 가로막아 수시로 끊기곤 했었다. 이제는 차가 돈이 되는 세월을 만나 제법 넓은 포장도로로 변신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를 알려주던 소박한 표지석이 사라진 자리에 소수민족 전통과 결이 다른 중화민족을 상징하는 패방이 세워져 있었다. 오지마을 초입부터 예전에 없었던 돈의 힘이 느껴졌다.
이우향 마헤이짜이에 속한 과펑짜이는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변경 마을이다. '모진 바람이 분다'는 마을 이름값을 과시하듯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맞바람이 드세게 불었다. 눈발처럼 몰아치는 굵은 흙바람은 고글을 꼈는데도 눈앞이 어지러웠다. 턱턱 숨 막힐 정도로 바람 부는 마을, 과펑짜이는 소수민족 야오족瑤族이 산골짜기 아래 모여 사는 3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졌다. 야오족 전설에 의하면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가 갑자기 불어 닥친 세찬 바람에 휘말려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소녀를 추모하며 야오족은 그날 이후 마을 이름을 과펑짜이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를 데려갔던 바람이 10여 년 전부터 마을에 돈을 몰고 왔다.

어린 소녀 데려간 바람, 돈 몰고 오다
이우차스럽지 않은 강렬함과 이우차다운 섬세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과펑짜이는 이우차왕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됐다. 과펑짜이 차를 차지하려는 돈의 전쟁이 봄마다 벌어진다. 보이차 연간 생산량 1t 미만인 과펑짜이는 다른 차산과 견주어 보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물량이 적다. 게다가 고수차古樹茶는 200㎏이 채 되지 않은 형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서 과펑짜이 이름표가 붙은 보이차 유통량은 한 해 15t을 넘어간다. 이런 부조리를 잘 아는 보이차 마니아와 열혈 상인은 진짜배기 고수차를 구하려고 돈을 잔뜩 들고 앞다퉈 올 수밖에 없다. 이우차왕이라는 유명세와 희소성은 해마다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과펑짜이를 처음 찾아온 사람은 마을에 의외로 고차수가 없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차가 돈이 되기 시작한 20여 년 전에 조성된 어린 차나무밭만 마을 주변에 보이기 때문이다. 과펑짜이 고차수를 보러 온 탐방객은 실망과 의심을 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제부터 고생문을 통과해야만 고차수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고수차를 만들 수 있는 수령 100년이 넘는 고차수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원시림 속에 숨어 있다. 사실 과펑짜이는 산속에 감춰져 있는 보물을 찾으러 가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마을이다.

과펑짜이 동쪽으로 4시간을 더 가야 하는 차핑띠茶坪地 지역 고차수 군락지가 그나마 제일 가깝다. 비교적 길이 좋은 바이샤허白沙河도 마을 남쪽 방향 6시간 거리다. 오늘 가려는 차왕수茶王樹 산은 거리도 멀지만 가는 길이 험하기로 악명이 높다. 식사와 술을 브런치로 준비하려는 지인의 호의를 어렵사리 사양하고 함께 길을 나섰다. 해 지기 전에 마을로 다시 돌아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마을 서쪽으로 나서자마자 차가 다닐 수 없는 비좁은 험로가 시작됐다. 낡아빠져 터덜거리는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속력을 낼 수 없는 지그재그 내리막길을 속절없이 털컥대며 내려갔다. 등골이 비명을 질러댔다. 경보보다 조금 빠르고 산악자전거보다 훨씬 느린 속력으로 네 시간 만에 차왕수 지역에 들어왔다.
산길 네 시간 오토바이…등골브레이커
차왕수 산 들머리부터는 두 발로 걸어야만 했다. 산 넘고 물 건너가다가 길이 끊기면 '정글도'로 잡목을 가르며 길을 만들어가며 전진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떴다. 트레킹 폴은 시야를 가리는 풀을 헤치고 발 디딜 위치를 확보하는 탐침봉 역할로 유용했다. '장비빨' 덕분에 예전보다 신속하게 산을 탈 수 있었다. 급경사 리지를 만나면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 암벽을 기어오르듯 삼지법三肢法을 써야만 갈 수 있는 구간도 있었다. 날것의 산은 공인된 등산로와 달리 낯선 사람에게 선뜻 길을 내주지 않았다.

경사 60도가 넘는 비탈 위에서 허덕일 때 쏟아 붓는 빗줄기는 산행을 고행으로 만들어 줬다. 고어텍스 재킷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흠뻑 젖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처럼 여유가 아닌 억지 춘향으로 굵은 비와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네 발로 기어오르기도 벅찬 필자와 동행한 원주민은 트레킹 샌들도 아닌 얄팍한 슬리퍼만 신고도 헐렁헐렁 산책하듯 산등성이를 넘었다. 독을 품은 뱀과 같은 야생동물의 위협도 있었지만, 맨발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낮에도 활동하는 흡혈 모기와 살 속으로 파고드는 살인 진드기 같은 미세하지만, 치명적인 위험이 지뢰밭처럼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로에 자리 잡은 초막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한숨 돌렸다. 흠뻑 젖은 상의를 벗어 쥐어짜는 사이에 얄궂은 비는 그치고 무지개가 떴다. 원시림 속에 드문드문 서 있는 수백 년 묵은 차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야생 차나무와 야방野放 차나무가 한 장소에서 혼재되어 서식하고 있는 흔치 않은 풍광이었다. 어렵사리 찾아온 필자에게 차왕수 산의 고차수 군락지는 과펑짜이를 유명하게 만든 주역이 바로 '나야 나'하고 자랑스레 속살을 드러냈다. 고차수 사이를 누비며 안구 정화 시간을 가졌다. 행복했다, 형용사와 부사의 도움 없이.


야생과 양식 차나무가 공존
수백 년 전부터 차왕수 산을 개간해 차 농사를 짓던 부랑족과 후이족이 100여 년 전 야오족에게 차 농장을 넘겨주고 라오스로 이주했다. 차가 큰돈이 되지 않았던 시절 탓에 야오족은 차왕수 산을 떠나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평탄한 땅을 찾아 과펑짜이로 가게 됐다. 환금성 작물과 식량 증산에 바빴던 야오족은 차왕수 산 차밭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100년이 넘도록 인간의 손을 떠나 방치되면서 재배형 차나무가 야생화되어 야방 차나무로 진화했다. 야오족에게 버려졌던 차왕수 산은 천연자원 보호 가치를 인정받아 국유림으로 지정됐다.
차왕수 산의 기운과 고차수의 아우라에 흠뻑 젖었다. 어린 찻잎 하나를 혀로 굴려보며 메마른 입안을 달랬다. 찻잎이 침샘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이내 갈증은 사라지고 입안이 촉촉해졌다. 긴 세월 동안 찻잎 속에 응축돼 있던 아로마가 가슴을 뻥 뚫어줬다. 지난밤부터 누적된 허기를 신선한 공기로 가득 채웠다. 아무도 찾지 않는 우기의 차왕수 산을 찾아온 보람을 맛봤다.


찻잎을 채취하는 봄에는 농약과 비료를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수기에 차 산을 둘러보면 사용하고 버려진 농약병이 우후죽순처럼 굴러다니는 곳이 의외로 많다. 생태환경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이런 지역의 차는 피하는 것이 좋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포함한 그 어떤 농약과 화학비료로부터 자유롭고 퇴비와 유기농 비료조차 필요 없는 차나무들은 건강한 생태계를 증명하는 푸른 이끼와 기생식물이 밑동과 가지에 잔뜩 끼어 있었다. 인공 차밭에서 자연으로 돌아와 야성을 회복한 차왕수 산을 20여 년 전 홀로 찾아와 거친 산속에서 비박Bivouac하며 고수차를 만든 전설의 주인공이 있었다.

홀로 비박하며 고수차 만든 여승
고수차가 밀식 재배한 밭 차에 비해 우월하다는 개념이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조차 미미했던 시절, 라마교 승적을 갖고 있는 미모의 여승이 장삼 자락 휘날리며 차왕수 산에 나타났다. 차를 덖는 데 필요한 솥단지 하나 달랑 둘러메고 오토바이를 몰며 능숙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여승은 한국인이었다. 해발 1,700m 차왕수 산에 올라온 그는 고차수 군락지에서 밤이슬 맞아가며 찻잎을 가공해 모차毛茶로 만들었다. 지금은 차왕수 산 모차 1㎏ 가격이 500만 원을 우습게 넘어서지만 그 당시는 밀식 재배한 일반 밭 차 가격과 차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같은 무게의 옥수수 가격과 같았을 정도였다'고 하니 격세지감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결혼해 자녀도 있었지만, 뜻한 바 있어 사바세계를 떠나 출가했다고 한다. 훗날 바람결을 타고 온 소리는 그가 얼마 전 승적을 버리고 다시 환속했다고 알려줬다. 마을 사람 얘기로는 그가 차왕수 산에서 고수차를 직접 만들어간 첫 외지인이라 했다. 꿈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열혈 한국인을 이제는 다시 보기가 불가능하다. 2023년 3월 1일부터 외국인을 고수차 산업에서 실질적으로 배제시키는 법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차별하는 법적 근거는 2022년 11월 30일 제13차 윈난성 인민 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35차 회의에서 채택된 30개 조항에 이르는 '윈난성 고차수 보호 조례'에 있다. 이 보호 조례는 윈난성 고차수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관리 및 이용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 조례 제17조에 따르면 외국인은 고차수 종자, 열매, 뿌리, 줄기, 묘목, 새싹, 잎, 꽃 등을 채집하거나 구매하는 것이 금지된다. 단순한 고차수 탐방 행위와 연구 활동조차 외국인은 공식 절차를 밟아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나무류의 희토류인 수령 100년 이상 된 고차수 접근을 원천 봉쇄한 불의타不意打를 윈난성 정부가 외국인에게 날린 셈이었다.
윈난에서 부는 돈바람은 족집게처럼 피해 다닌다, 외국인만.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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