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작품이 ‘천만 영화’, 제작자가 말하는 ‘왕사남’

차형석 기자 2026. 3. 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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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역대 34번째로 ‘천만 영화’ 자리에 올랐다. 영화 제작사 온다웍스의 첫 작품이다. 임은정 대표에게 ‘왕사남’ 제작기를 들었다.

영화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40)는 서핑을 즐겨 한다. 바다 위에 떠 있을 때,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오면 모두 설레어 ‘온다, 온다’고 한다. 임 대표는 그 단어가 귀엽다고 느꼈다. 퇴직과 독립을 고민할 즈음 그는 포르투갈로 여행을 갔다. 한 서핑숍에 들어갔는데, 상점 이름이 ‘온다(onda)’였다. 그때 알았다. 포르투갈어로 파도라는 것을. 운명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23년 ‘온다웍스’를 창립했다. 온다웍스가 기획한 첫 영화가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다. 2월4일 개봉해, 3월6일에 ‘천만 영화’가 되었다(3월11일 현재 누적 관객 1205만명). 창단 팀의 첫 타석에서 만루홈런을 친 격이다.

영화 ‘왕사남’을 기획한 임은정 대표는 2023년 온다웍스를 창립했다. Ⓒ㈜쇼박스 제공

영화의 배경은 1457년,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 마을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청한 촌장(유해진)과 왕위에서 밀려난 단종(박지훈)의 이야기가 이처럼 흥행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개봉일 스코어(11만7000명)도 평범했다. 손익분기점(260만명)을 못 넘겨, 임 대표가 ‘나 사기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찾는 이가 불어났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18일, 누적 관객수 417만명을 기록했다. 그 뒤 탄탄대로에 올랐다. ‘왕사남’은 개봉 후 한 달여 만에 역대 34번째 천만 영화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일곱 번째다. ‘제작자로서 보는 흥행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임 대표는 “이 영화는 애도에 관한 이야기다. 단종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 그런 비슷한 감정을 관객들이 느낀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 제작사 창업 전 임 대표는 CJ ENM 영화사업부에서 일했다. 투자팀에서 6년, 기획제작팀에서 6년을 근무했다. 〈국제시장〉 〈베테랑〉 〈엑시트〉 등 영화 투자 업무를 맡았고, 〈불한당〉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기획·진행했다. 〈연애 빠진 로맨스〉 프로듀서로 일할 즈음, 동시에 ‘왕사남’을 기획했다. 영화 〈박열〉 각본가인 황성구 작가가 첫 시나리오를 썼다. 초고가 나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왕사남’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황 작가님이 ‘저를 기다리겠다’고 했고, ‘다음 타이밍이 올 때 회사 안이 됐든 밖이 됐든 내가 꼭 해보겠다’고 말했다. 5년은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회사를 나와 그 프로젝트를 다시 하게 된 거다(임은정 대표).”

배우 유해진씨(오른쪽)가 ‘왕사남’의 엄흥도 역을, 박지훈씨(왼쪽)가 단종 역을 맡았다. Ⓒ(주)쇼박스 제공

첫 영화로 ‘왕사남’을 만드는 데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 영화는 최소 90억원 이상 제작비가 들 것 같은데, 60억원 미만의 중예산 작품을 하라, 그래야 투자를 받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임 대표는 뚝심 있게 나아갔다. “초기에는 엄흥도라는 역사 속 인물의 포지션이 무척 드라마틱하다고 느꼈다. 영화 〈타인의 삶〉을 좋아하는데, 역사의 장면에 기록되지 않는 어떤 개인을 보여준다. 드라마틱한 설정뿐만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사회적 참사나 재난이 벌어지면 ‘기억해야 해’ 하면서도 금세 잊혀지곤 하는데, ‘기억하게 하는 것’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마음으로 좀 더 집념을 가지고 ‘왕사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은정 대표는 장항준 감독을 섭외했다. CJ ENM 투자팀에서 일하던 시절, 임씨는 시나리오를 많이 읽었다. 뭔가 막히는 느낌이 들 때, ‘장항준에게 가져가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뛰어난 각본가’라는 인식이 강했다. 장 감독의 〈리바운드〉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 실존 인물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임 대표가 보기에, 장 감독은 ‘왕사남’에 적합한 이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장항준 감독. Ⓒ(주)쇼박스 제공

장항준 감독과의 첫 만남

일면식이 없던 장항준 감독을 만났는데, 그가 망설였다. “첫 만남에서 장 감독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면서도 시나리오가 어떻게 하면 더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지 조언했다. 그 말을 들으며 ‘이 영화의 주인’이라고 확신했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극장은 열려 있다. 묵혀둔 영화를 틀고 나면 상영할 영화가 없다. 그러면 두세 개 영화에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잡자.’ 이렇게 일장연설을 했다(웃음). 나흘 후에 장 감독이 수락했다.”

다음 고비는 배우 캐스팅이었다. 장항준 감독이 한 유튜브 방송에서 배우 유해진씨를 만났다. ‘왕사남’ 프로젝트에 호감을 표시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시나리오를 두 번 고쳐 그에게 전달했고, 캐스팅에 성공했다. 단종 역에 배우 박지훈씨를 추천한 것도 임은정 대표였다. 장항준 감독에게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약한 영웅〉을 보라고 권했다. 엄흥도·단종 역할의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후 ‘왕사남’은 급물살을 탔다. 〈범죄도시〉 시리즈 등을 만든 BA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사로 참여했다.

임은정 대표는 촬영 현장을 자주 찾았다. 촬영 회차의 80% 이상 현장에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처절한 느낌마저 드는 배우 유해진씨의 연기를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며 흥행을 직감했다고 한다. ‘왕사남’ 관객층은 세대별로 고른 편인데, 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임은정 대표는 “전 연령대가 이야기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게 제일 기쁘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극장을 그리워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웃고 우는 극장 체험의 즐거움을 다시 느낀 것 같아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임은정 대표는 〈죄 많은 소녀〉의 김의석 감독,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 황성구 작가 등과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한 작품은 ‘경성 열차’를 배경으로 한 장르물이고, 다른 작품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 액션이다. 임 대표가 보기에,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고, 무조건 의미 있어야 한다”. 자신이 혹은 관객들이 잊고 있었던 결핍은 무엇인지, 그게 시대정신과 부합할지 고민한다. 첫 영화는 ‘천만 영화’로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탔다. 온다웍스의 두 번째 작품도 주목하게 만들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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