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점심시간은 쉽니다” 인감 떼러 갔더니 불꺼진 사무실…노동권 VS 서비스 접근권 [세상&]
문닫힌 행정센터 발길 돌리는 민원인
공무원들 “업무 만족도 좋아져” 반겨
부산, 광주 등 전국 100여곳 휴무제

[헤럴드경제(대구)=정주원 기자] “점심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더라고요. 결국 그냥 돌아갔죠.”
지난 18일 정오가 넘어 대구 동구의 안심1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정향숙(66) 씨는 업무를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민원실 입구에는 ‘점심시간휴무제’ 안내문이 붙고 내부는 불이 꺼졌다. 민원인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거나 자리를 떴다.
올해 1월부터 대구 9개 구·군 전역에서 시행된 ‘점심시간 민원실 전면 휴무제’는 두 달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씨는 “기계가 있어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창구를 찾아야 한다”며 “이 시간엔 아예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혼인신고와 전입신고를 위해 방문했다는 30대 직장인 정모 씨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처리하던 일을 못 하게 되면서 결국 연차를 써야 했다”며 “인감증명처럼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업무는 대안이 없다”고 했다.
반면 공무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대구 안심4동 행정복지센터 민원창구 직원은 “예전에는 교대로 식사하다 보니 한 시간을 온전히 쉬지 못했고 바쁠 때는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며 “지금은 한 시간 동안 확실히 쉬면서 업무 만족도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해진 시간 동안 민원에서 완전히 벗어나니 이후 업무 집중도가 확실히 높아졌다”며 “직원 입장에서는 근무 여건이 개선된 제도”라고 평가했다.
초기 혼선은 있었지만 민원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은 “시행 초반 이틀 정도만 문의가 있었고 이후에는 거의 없다”며 “주민들도 빠르게 적응했다”고 설명했다.

점심시간 휴무제는 2017년 경남 고성군이 처음 도입했고 전국 곳곳으로 확대됐다. 부산과 울산, 경북 포항·안동, 전남 목포·순천, 광주 일부 기초지자체 등 전국 100여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대구에선 2024년 말부터 일부 구·군이 시범 도입한 뒤 올해부터 전면 도입됐다.
다만 서울 등 수도권 대형 지자체에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 자치구는 교대근무 방식으로 점심시간에도 민원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까지 점심시간 전면 휴무제가 노동권 문제로 본격 논의된 적은 없고 현장에서는 기존 방식이 유지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점심시간 휴무제는 ‘공공서비스 접근권’과 ‘공무원 노동권’이라는 관점에서 상반된 시각이 공존한다. 공무원들의 휴식할 권리도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지만 민원인들이 큰 어려움 없이 공공서비스를 볼 수 있는 여건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전문가들은 지역별 행정수요 등을 감안해 세심하게 협의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무원 역시 노동자라는 점에서 점심시간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라며 “그동안 교대근무 구조에서는 사실상 ‘쉬지 못하는 점심시간’이 반복돼 온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최근 은행·식당·우체국 등에서도 점심시간 운영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휴식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공공 영역도 이런 흐름에서 완전히 예외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공서비스의 성격’을 보다 강조했다. 그는 “행정서비스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기본적으로 접근성이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한다”며 “특히 서울처럼 직장인 비중이 높고 민원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 점심시간을 일괄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또한 “민간 서비스와 달리 공공서비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며 “노동권을 이유로 획일적으로 운영 방식을 바꾸기보다 지역별 수요와 이용 패턴을 반영한 맞춤형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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