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바치고 주검으로 떠났다… 대전 화재 유족 "회사, 왜 바로 달려오지 않았나"

이상무 2026. 3. 23.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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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안전공업' 공장 화재 현장
정년 지나고도 계약직 근무하다 참변
"생의 마지막을 평생 직장서" 동료 울분
괜찮은 임금에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혀
참사 희생자 중 장기 근속자들 포함돼
합동분향소 운영...유족 "왜 네가 여기에"
22일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현장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전=뉴시스

"첫 직장이었고 여기서 평생을 일했습니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다시 나와 일했어요."

21일 대전 '안전공업' 공장 화재 현장에서 만난 황모(66)씨는 중학교 동창이자 40년 지기인 오상열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오씨는 정년인 61세를 넘긴 뒤에도 계약직으로 현장에 남아 일할 만큼 숙련된 인력이었다고 한다. 정년에 맞춰 공장 생활을 마무리했다면 이번 참사에 희생되지 않았을 테지만, 회사의 요청에 그는 평생직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사고 직전까지도 오씨의 일상은 평범했다. 황씨는 "사고 전날 모임 참석 문제로 통화했다"며 "그 뒤 화재 소식을 듣고 오후 9시 14분, 9시 30분에 다시 전화했는데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만 들렸다"고 했다. 이후 가족을 통해 오씨가 실종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공장으로 달려왔다는 그는 "활동적이었고 좋은 친구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생의 마지막을 평생 일터에서...

대전 안전공업 화재로 숨진 14명 노동자의 사연이 하나둘 확인되면서 사고 현장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20대, 30대부터 한 직장에 몸담아온 이들이 생의 마지막을 일터에서 맞이하고, 또 주검으로 벗어났다는 데에 지인, 동료, 유족들 충격은 유난히 컸다.

안전공업은 엔진밸브 등 자동차 핵심 부품을 생산해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완성차 계열사에 납품해온 업체로, 1953년 설립됐다. 안전공업은 하이브리드 차량용 부품 국산화 성과로 인해 산업훈장을 수상했고, 2024년 기준 1,351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대전 지역에서는 임금 수준이 비교적 높고 고용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꼽혔다. 그만큼 오씨처럼 수십 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장기 근속자가 많았다.

희생자 안일덕씨의 동료이자 친구인 민모(46)씨는 "친구는 2011년부터 일했다"며 "원래는 에어컨 설치 기사로 일하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싶어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취업했다. 별도의 전문 기술을 갖춘 상태가 아니라 입사 후 현장에서 엔진밸브 생산 공정 중 '압출' 작업을 배우며 숙련도를 쌓아왔다고 한다.

안씨는 평일에 근무하고 주말에 쉬는, 2교대 근무를 해왔다. 주간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일했다. 야간 근무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30분까지였다. 화재 발생 당일 안씨는 주간 근무 중이었다. 민씨는 "근무 일정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며 "공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희생당했을 생각을 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나도 데려가지"...울분 터져 나온 분향소

22일 대전시청에 마련된 대전 안전공업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 대전=뉴스1

유족들 분노는 커지고 있다. 화재 발생 이튿날이 돼서야 유족과 안전공업 측의 비공개 면담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 대표는 "제일 먼저 달려왔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루가 지나고 왔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어 "회사에서 일하면서 같이 살려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생계 단절에 대한 절박함도 호소했다. 한 유족은 "신랑이 여기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저희는 생계가 끊긴 사람"이라며 "회사 측이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해줄 수 있는 지원을 신속하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사회는 애도한다. 유가족들은 대전시에 합동분향소 설치를 요청했고, 시는 이날 대전시청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에는 떠나보낸 이를 추모하는 유족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아들 살려줘", "나도 데리고 가지", "여보 미안해" 등 울분 섞인 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아들을 잃은 한 유가족은 "화재 현장을 가보니 아들이 최악의 현장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는 오전 10시 5분쯤 회사 관계자들과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손 대표는 "정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유족들에게 할 말이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손을 저으며 시청 건물을 빠져나갔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대전= 김준형 기자 junb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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