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도 치켜세운 '42세 최고령 투수'… 노경은을 만든 '인생 스승' 세 명

김진주 2026. 3. 2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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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노경은 인터뷰]
'제2의 전성기' 노경은, WBC서 '영웅'으로
방황 시기, 벼랑 끝에서 만난 3명의 은인
김진욱 전 감독, 2군서 함께 멘털 다져... 첫 전성기
포크볼 가르친 정명원 전 코치... "자신감 채워줘"
태극 마크 추천한 조계현 KBO 전력강화위원장
믿음에 화답했던 2026 WBC... "감사할 따름"
"은퇴는 없다... 실력으로 현역 생활 이어갈 것"
노경은이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의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조별리그에서 2회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고 있다. 도쿄=뉴스1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1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만난 노경은(42·SSG)은 단호했다. 그는 이달 초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를 구해내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의 역투를 치켜세웠지만, 정작 그는 담담했다. 도리어 “지나간 영광은 이미 다 잊었다”며 “앞으로 더 잘해야 야구를 오래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박수 치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야구가 징글징글해질 때까지 하는 게 내 목표”라며 “나는 아직 야구가 고프다”고 했다.

노경은이 21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SSG 제공

벼랑 끝에서 만난 3명의 '인생 스승'

베테랑 중의 베테랑, 노경은의 ‘야구 갈증’은 그의 굴곡진 야구 인생에서 비롯됐다. 2003년 당시 고졸 신인 사상 최고액인 3억5,000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두산에 입단했지만, 데뷔 후 5년간 부상과 성적 부진 등으로 흔들렸다. 2010년까지 50이닝 이상 던진 시즌이 없었고, 한 시즌 최다승도 데뷔 첫해 기록한 3승이 전부였다. 스스로도 “방황이 깊었던 시기”라고 돌아봤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던 시절, 그에게 새 방향을 제시한 세 명의 ‘인생 스승’이 있었다. 바로 김진욱 전 두산 감독과 정명원 전 투수코치, 그리고 조계현 전 투수코치다. 노경은은 “가장 힘들 때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분들”이라며 “야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마음 깊이 감사한 존재”라고 했다.

노경은의 인생 스승 3명. 김진욱(왼쪽부터) 두산 전 감독, 조계현 전 투수코치, 정명원 전 투수코치. 한국일보 자료사진

먼저 김진욱 전 감독은 ‘멘털 스승’이었다. 2011년 두산 2군에 머물던 시절, 당시 투수코치로 만났다. 노경은은 “야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기였다”며 “감독님과 매일 야구와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 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감독님께서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까지 꺼내며 내 고민에 깊이 공감해 주셨다. 또 내가 흔들릴 때마다 함께 해답을 찾으려 하셨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믿음은 2012년 첫 전성기로 이어졌다. 김 전 감독이 두산 1군 사령탑에 오르면서 노경은에게 기회를 건넸고, 노경은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데뷔 10년 만에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시즌 12승(선발 10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리그에 각인시켰다. ‘33이닝 연속 무실점’ 대기록도 이때 세운 기록이다.

정명원 전 코치는 ‘기술 스승’이었다. 정 전 코치는 “네 볼은 남다르다”고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포크볼이라는 결정적 무기를 안겼다. 노경은은 “그때 포크볼을 배운 덕분에 다양한 구종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노경은이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의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3회말 무실점 호투를 한 뒤 포효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그래픽=이지원 기자

오랜 스승의 믿음에 화답한 2026 WBC

1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단 이번 WBC 역시, 노경은에게는 오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무대였다. 노경은은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장인 조계현 전 코치의 깊은 신뢰 속에 대표팀에 합류했다. 조 전 코치는 2012년 노경은에게 “마운드에선 순해 보이면 안 된다”며 당시 노경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수염’을 권하기도 했다.

최근 3년 연속 30홀드 이상을 기록하고, 2년 연속 홀드왕에 오르는 등 경쟁력은 여전했지만,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를 고려하면 대표팀 합류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이번 WBC에 참가한 20개국 투수 중 최고령이었다. 노경은은 “(조계현 전 코치가) 추천해 주셔서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베테랑으로서 역할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 부담을 털어낸 무대가 바로 호주전이었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무조건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던 그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일찌감치 몸을 풀었다. 예상치 못하게 선발 손주영(LG)이 1이닝 만에 부상으로 내려갔고, 노경은은 “내가 올라가겠다”고 자처했다. 이후 노경은은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대표팀의 17년 만의 8강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정말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왜 내가 대표팀에 뽑혔는지’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나를 믿어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노경은이 지난해 10월 1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삼성과의 2025 프로야구 KBO리그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2차전 7회초에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루기? 내 야구엔 없다

42세 노경은이 20~30대 후배들과 견줘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역시 철저한 자기 관리다. 그는 훈련 루틴을 하루도 거르지 않음은 물론이고, 사소한 몸 상태 변화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노경은은 “팔 컨디션이 좋아야 경기가 잘 풀린다”며 “팔이 조금만 무거워도 바로 풀어준다. ‘미루기’란 내 야구에 없다”고 강조했다. WBC 귀국 당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곧바로 훈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꾸준함은 2022년 SSG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견인하고, 본인의 '제2의 전성기'를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노경은에게 나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제는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성적으로 계속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면서 “꾸준히, 오래 버텨 구단의 명물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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