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내몰린 아빠, 아이들 믿고 맡길 곳 알았더라면…
아픈 몸으로 생활고 시달리며
홀로 네아이 육아까지 짊어져
물품전달 중심의 지원 넘어
가정위탁·그룹홈·양육원 등
자립기반 닦을 시간 벌어줄
아동보호제도 충분히 알려야
지난 18일 울산 울주군의 한 빌라. 고요함이 감도는 문틈 사이로 발견된 일가족 5명의 시신은 우리 사회 복지 안전망에 묵직하고도 슬픈 과제를 던졌다. 아버지와 네 아이가 세상을 떠난 이 사건은 단순한 생활고를 넘어, 육아와 자립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진 한 가정의 절규였다.
행정의 손길이 이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이 가족은 지난해부터 사회복지사들의 집중적인 관리를 받아온 '사례관리' 대상이었다.
울주군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어머니가 행정기관에 생활고를 호소한 뒤 긴급지원이 이뤄졌고, 올해 2월에도 사례관리 대상으로 재지정돼 읍 맞춤형복지팀이 두 차례나 가정을 방문했다. 복지사들은 쌀과 양말 등 생필품을 전달했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나 한부모가정 지원 등 제도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거듭 안내했다.
하지만 복지 현장의 분투에도, 아버지는 행정의 도움이 "필요 없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군은 규정에 따라 다음 긴급지원이 가능한 5월까지 기다리며 지원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그사이 가족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물품 전달' 위주의 복지가 가진 한계다.
가장은 아픈 몸을 이끌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네 아이를 직접 양육해야만 했다. 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만약 그에게 쌀이나 현금 지원 외에 '아이를 잠시 믿을 수 있는 곳에 맡기고 자립할 기반을 닦을 시간'이라는 선택지가 적극적으로 제시되고 설득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현재 울산에는 위기 부모와 아이를 위한 다양한 아동복지 제도가 시행 중이다.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가정위탁보호사업'이다. 이는 부모가 실직이나 질병, 수감 등 아이를 양육할 수 없거나 능력이 없는 경우 고모나 이모, 조부모 등 친척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제도다.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 월 50만원의 지원금과 병원비, 학비 등이 지원된다. 지난해 말 기준 울산에는 223가구가 267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특히 지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동도 전문 위탁가정에서 품어준다.
2순위는 '공동생활가정(그룹홈)보호사업'이다. 전용면적 82.5㎡ 이상 주택형 기숙사에 9명 이내의 아이들이 같이 생활하는 공동생활가정으로, 아동청소년의 자립 능력 향상과 원가족과의 관계 회복 등의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울산 내 8개 그룹홈에서 43명의 아이가 자립 또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보루는 '울산양육원'이다. 위탁가정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학대 등의 사유로 긴급 보호가 필요한 경우, 혹은 부모가 양육 한계에 부딪힌 아이들을 모두 수용한다. 이유 불문하고 긴급 입소가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입소할 수 있다. 특히 양육원 내 '일시보호시설'은 최장 6개월간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을 집중 케어하며 부모가 자립할 시간을 벌어준다. 이 기간 행정은 아이의 가정 복귀 여부를 종합 검토하며 가족의 재결합을 돕는다.
이러한 제도들은 아이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밖에서 치열하게 자립의 기반을 닦는 동안 국가가 아이의 생존과 안전을 책임지는 '가족 회복의 베이스캠프'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는 이를 '천륜을 저버린 유기'이거나 '나쁜 부모라는 낙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굶어 죽어도 내 새끼는 내 품에서 키워야 한다'는 비극적 가족주의가 오히려 가족 전체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황태희 울산양육원 원장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자체는 잘 구축돼 있지만, 홍보 부족과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며 "형편이 어렵다면 가까운 행정복지센터에 적극 도움을 요청해달라. 자립할 능력을 기를 때까지 국가와 사회가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기다려 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