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곳엔 아내도 자식도 없었다, 디지털 간통의 민낯 [이수진의 이혼 이야기]

의뢰인이 남편의 외도 중거라며, 떨리는 손으로 건넨 스마트폰. 그 화면 속 빼곡히 찬 수백장의 사진들은 낯 뜨거운 장면도, 은밀한 호텔 결제 내역도 아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의 대화 캡처본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10년의 결혼 생활을 비극으로 만들어 버린, 잔인한 이중생활의 기록이었습니다.
남편은 그곳에서 서른 초반의 유능하고 자유로운 비혼남이었습니다. 그가 설계한 '가짜 인생'의 정교함은 흥미롭다 못해 기괴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외제차 사진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자신의 것인 마냥 공유하고, 있지도 않은 해외 지사 발령을 핑계로 '가상의 이별'을 준비하며 온갖 여성들과 연애를 즐겼습니다. 그 세계에서 아내와 아이는 철저히 지워진 존재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육체적인 외도를 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완벽한 '페르소나'를 구축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엔 외도가 은밀한 장소에서 물리적 만남을 통해 벌어졌다면 최근에는 디지털 세상 속 '평행 우주'를 구축하는 형태로 변모했습니다. SNS와 오픈 채팅방 속에서 배우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성격 차이로 오래전 이혼한 전처가 되기도 합니다. 이혼 소송에서 이런 디지털 증거들은 부정행위의 결정적 단서가 되지만, 이를 마주한 피해 배우자가 입는 타격은 물리적 외도 그 이상입니다. 내가 10년을 함께 숨 쉬며 살았던 사람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공포, 즉 '나라는 존재의 총체적 부정'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몰래 휴대폰을 본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형법상 비밀침해죄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 적용 여부를 떠나 맞닥뜨리는 비참한 현실이 더 끔찍하게 만듭니다. 누구보다도 믿었던 사람의 배신과 그로 인한 인간 신뢰의 상실입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의 배신은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비겁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휴대폰 잠금을 해제했을 때 마주하는 게 따뜻한 대화가 아니라, 내가 알던 사람의 완전히 뒤틀린 인격일 때, 그 충격은 한 가정을 순식간에 재로 만듭니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사랑한 것은 온전히 그 사람 자체였을까요, 아니면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편집된 이미지였을까요? 관계의 밀도는 함께한 세월이 아니라, 서로의 민낯을 얼마나 정직하게 공유하느냐에 비례합니다. 하지만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디지털 공간은 그 진실함을 너무나 손쉽게 휘발시킵니다. 액정 너머의 달콤한 위로를 위해 곁에 있는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는 행위,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디지털 간통'의 민낯입니다.
이수진 변호사 ·법무법인 수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