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에게 ‘봄맞이 대청소’라는 것[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2026. 3. 2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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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집 정리를 했다. 겨우내 닫혀 있던 장들을 차근차근 열어보기로 했다. 출발은 그저 평범한 봄맞이 대청소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했다. 퇴직 전보다 짐들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쁘기로는 회사 다닐 적이 훨씬 더했다. 늘 하루가 모자랐고 챙겨야 할 물품도 그만큼 다양했다. 하지만 정작 집 안을 채우고 있는 살림은 지금이 배나 많았다. 벽장과 서랍을 열 때마다 잊고 있던 짐들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큰맘 먹고 말끔하게 치우려 했는데 오히려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유독 눈에 띈 것은 종이류였다. 퇴직 후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받아 온 자료들, 설명을 들으며 기록했던 노트들, 당시에는 꽤 집중했던 흔적들이다. 회사에 다녔을 때의 물품도 적지 않았다. 중요한 회의마다 꺼내 입었던 재킷, 사내 행사에서 받았던 기념품 등 쓰지 않으면서도 내내 끌어안고 지낸 물건들이 상당했다.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 많은 짐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쌓인 걸까. 처음에는 그냥 귀찮아서 미뤄온 결과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대로 치워보리라 다짐했다. 먼저 무엇부터 버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서랍 속 맨 위의 지갑을 집어 들었다. 검은색 명함집이었다. 그 안에는 신입사원 무렵부터 퇴직하기 직전까지 썼던 명함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명함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자꾸만 손이 멈칫했다. 고작해야 자그마한 종이에 불과한데도 쉽게 버리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도로 놓고 말았다.

이후에도 매한가지였다. 퇴직 후 공들여 땄던 자격증, 첫 아르바이트 일터에서 찍은 기념사진 등 일단 들었다 하면 그대로 제자리에 두는 상황이 반복됐다. 청소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미리 준비해 둔 커다란 쓰레기봉투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걸까. 곰곰이 헤아려 보니 나는 물건 하나를 볼 때마다 그것을 사용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명함에서는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고, 재킷에서는 땀 흘려 노력했던 열정을 회상했다. 나와 마주하는 모든 물건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내 소중했던 지난날을 나에게 전해줬다. 그러니 그토록 귀한 인생의 조각들을 어찌 단번에 끊어낼 수 있으랴.

이유가 분명해지자 정리는 되레 어려워졌다. 물건을 비우는 과정이 한때의 나와 영원히 결별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놓아버리려 해도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 행동을 가로막았다. 한번 떠나보내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돌이켜보면 퇴직 뒤 나는 종종 예전 물품들을 꺼내 보곤 했다. 무언가에 마음이 흔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그것을 통해 옛 기억을 더듬었다. 위안이 필요한 날도, 견뎌야 하는 날도 과거에 기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지나간 시간들이 현재 삶의 버팀목이 돼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물건은 물건일 뿐이었다. 명함을 남겨둔다고 해서 내가 이전 직위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킷을 보관한다고 해서 수년 전 섰던 발표 무대에 오를 수도 없었다. 도리어 과거에 갇혀 있는 태도는 나를 뒷걸음치게 할 뿐이었다. 알면서도 그 시절 없이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방도가 없기에 덮어두고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멈춰야 했다. 당장 정리하는 기준부터 바꿔 보기로 했다. 여태껏 그래왔듯 단순히 필요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내 옆에 남겨둘 게 뻔했다. 대신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아니면 과거에 머물게 하는가. 그러자 작업이 수월해졌다. 혹시 쓸지 몰라 쌓아뒀던 참고서적들, 나중에 신게 될 듯해 남겼던 정장 구두, 특별한 날을 위해 간직했던 묵직한 펜까지…. 그제야 하나둘씩 놓아줄 수 있었다. 실상은 이 모두가 언젠가의 쓸모를 핑계로 억지로 붙잡고 있던 것이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집 안의 풍경이 달라 보였다. 감춰져 있던 공간이 드러나면서 집이 한층 넓어진 기분이었다. 서랍을 열면 무엇이 있는지 바로 눈에 들어왔고, 벽장을 괜히 뒤적거리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살림살이가 적어진 만큼 동선이 짧아져 방안을 오가기도 한결 편해졌다.

더 크게 변한 것은 마음이었다. 물건을 내려놓는 단계에서 과거도 서서히 제 위치를 찾아갔다. 지난날은 조용히 간직할 대상이지 기댈 대상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내 마음속에도 새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퇴직자인 내게 집 정리는 삶의 정리였다. 내가 버린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에 붙들려 있던 나였다. 결국 집에서 시작된 정리는 그렇게 마음 정리로 끝이 났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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