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 논란을 접하며
조선의 정궁이자 법궁인 경복궁의 대문인 광화문은 궁궐 그 자체보다 훨씬 많은 질곡의 역사를 짊어져왔다.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천도한 후 조선 왕조의 권위 수립을 위해 태조 4년(1395) 경복궁이 창건됐다. 정문의 이름을 광화문이라 정한 것은 세종 시대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전소되어 275년간 폐허로 방치됐고, 대원군 때 재건됐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 건립을 이유로 훼손·이전됐으며, 한국전쟁 때는 불타 없어지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콘크리트 건물로 복원됐다가 2010년 목조건물로 재건됐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시작된 광화문 현판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자 현판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문화유산 복원이라는 의미에서 19세기 말 복원 당시 걸었던 현판을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은 19세기 말을 기준으로 하는 복원도 완전한 원형 복원이 아니며, 불가능한 원형 복원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한글 현판을 걸어 한글 창제가 이루어진 곳으로서 경복궁이 갖는 의미를 널리 알리자는 입장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절충안은 상단의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하단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새로 걸자는 것이다. 대통령도 긍정적 반응과 함께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는 대립하는 양 입장을 절묘하게 절충한 시의적절한 시도라 생각된다. 문화유산 복원은 눈에 보이는 외형뿐 아니라 그 문화유산이 지닌 정신적 의미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건국된 조선은, 건국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지도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태조 4년에는 하늘(천)의 별자리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태종 2년에는 땅(지)의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만들어졌다. 이는 조선의 핵심적 철학 기반이었던 ‘천지인 사상’을 지도에 담고자 한 것이었다.
그 결정판인 ‘사람(인)의 지도’는 세종대왕에 의해 완성됐다. 백성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세종대왕은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새로운 문자이자 ‘사람’을 중심에 둔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훈민정음의 중성자(홀소리, 모음)는 천지인 개념을 담고 있으며, 초종성자(닿소리, 자음)는 조음 시 조음기관의 핵심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훈민정음’이야말로 ‘천지인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사람의 지도’인 것이다.
이처럼 훈민정음은 ‘사람’을 국가의 중심에 두고자 했던 세종대왕 통치 철학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한글은 단순한 문자체계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한류 문화가 전 세계에 큰 울림이 되고 있는 지금, 한류 문화의 시작점인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의 정문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함께 걸어두는 일은 단순한 문화유산 복원을 넘어서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현재와 미래에 맞게 새롭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는 조선에서 대한제국,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첫걸음이며,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을 세계에 알리는 상징적 행위가 될 것이다.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 논의가 단순한 찬반을 넘어, 문화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성숙한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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