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갈 수 있는데 멈춘다… 강연주 ‘시선’, 이어지지 않기로 남겨둔 자리

제주방송 김지훈 2026. 3. 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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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걸어 들어가지 못합니다.

더 진행할 수 있고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더 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남겨둔 채 멈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더 갈 수 있는 자리에서 한 번 더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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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을 반복해 쌓은 흔적, 진행을 끊어낸 선택
4월 1~13일 제주시 돌담갤러리
강연주 作


전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걸어 들어가지 못합니다. 몇 걸음 안 가서 멈추게 됩니다. 

무엇이 눈에 들어와서가 아니라 더 갈 수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속도를 끊게 됩니다. 

전시는 대상을 따라가게 하지 않고 관람의 흐름을 중간에서 멈추게 만듭니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보다 어디서 더 가지 않게 되는지가 먼저 작동합니다. 

오는 4월 1일부터 시작하는 강연주 작가의 개인전 《시선》입니다.

■ 이어지지 않기로 남겨둔 상태가 관계를 만든다

서로를 향해 서 있는 인물들이 중심처럼 보이지만 시선은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다시 흩어지며 다른 대상과 맞물립니다. 

한 번 형성될 듯한 관계는 곧 다시 거리를 만들고, 장면은 쉽게 묶이지 않습니다. 

거리는 이미 충분히 좁혀져 있고 한 걸음이면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 멈춤은 부족해서 생긴 공백이 아니라 이어지지 않기로 한 선택입니다. 

관계는 형성되지 않고 그 직전 상태에서 유지됩니다.
이어질 수 있었던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고, 진행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 지우지 않은 선이 판단을 반복해서 드러낸다

색연필 선은 한 번에 그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번 겹쳐 쌓인 흔적입니다. 

선은 덧입혀지고 다시 눌리며 축적됩니다.
중요한 건 이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정리된 표면을 만드는 대신 남겨둔 선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작업은 시간이 아니라 판단이 쌓인 결과로 보입니다.
무엇을 더했는지가 아니라 어디서 멈췄는지가 반복되어 드러납니다.

■ 완성 직전이 아니라 멈춘 상태 자체를 유지한다

형태와 구성은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습니다. 더 진행할 수 있고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멈춥니다.

미완이 아니라 기준입니다. 
더 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남겨둔 채 멈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하나의 장면 안에는 현재의 모습과 이어질 수 있었던 다음이 동시에 남습니다. 
이 간극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됩니다.


■ 중심이 없어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고양이, 나무, 돌, 인물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가 중심이 되지 않고 각자가 제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보는 쪽의 시선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합니다. 계속 이동합니다. 
이 이동이 반복되면서 관람은 특정 대상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머물다 옮겨가는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 어디서 멈췄는지 남는다

보고 나면 개별 이미지는 빠르게 흐려질 수 있습니다. 
대신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멈추게 되는 경험이 남습니다. 더 갈 수 있는 자리에서 한 번 더 서게 됩니다. 

그때 이 전시가 다시 떠오릅니다. 

무엇을 봤는지가 아니라 어디서 멈췄는지가 남습니다.

■ 쌓아온 방식을 한 자리에 드러낸 첫 개인전이다

강연주는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시각예술가로 자연환경과 일상의 장면을 작업으로 다뤄왔습니다.
제주 기반 환경문화예술단체 ‘모다드로’의 핵심 멤버로 참여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환경과 예술을 연결하는 흐름 속에서 작업의 방향을 확장해왔습니다.

그 과정은 대상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무엇을 남기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시선》은 작가가 유지해온 태도를 한 자리에 모은 첫 개인전입니다.
색연필을 매체로 반복해 쌓은 선과, 끝까지 나아가지 않고 멈춘 상태가 작업 전반에 놓여 있습니다.

인물과 사물 사이에서 관계가 형성되기 직전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구조가 전시를 관통합니다.

전시는 4월 13일까지 제주시 중앙로 돌담갤러리에서 진행됩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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