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조종대 잡으려는 미국…정부·기업 총출동해 표준 선점 ‘사활’
글로벌 국제 표준 마련 필요성 대두
미국 민관 모두 규칙 마련에 속도
구글, 엔스로픽, 오픈AI 까지 가세
“규범 마련 돼야 AI 안보 공격에도 안전”
빠르게 기술 수준 높이는 中 경계 움직임
미국 라스베이거스 프리몬트 스트리트 인근에 있는 한 스타트업 사무실. 사무실 내 모니터 한쪽에 ‘인공지능(AI) 협상’ 창이 떠 있다. 이곳 직원이 “다음주 뉴욕 출장, 최저가로 예약해줘”라고 입력하자 화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좌석 확인 중… 요금 변동 감지” “대안 경로 탐색” “가격 재조정 요청 송신”.
찰나의 간격으로 로그가 쏟아졌다. 사용자의 개인 AI가 항공사 예약 시스템 AI와 실시간으로 조건을 주고받으며 최적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뒤이어 호텔 예약 AI가 대화에 가세한다. “도착 시간에 맞춰 체크인 조정 완료, 프로모션 할인 적용.” 마지막으로 결제 시스템 AI가 응답한다. “결제 승인 및 거래 완료.”
이런 모든 과정이 채 5초가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한 일은 단 한 줄의 명령뿐이다. 현장 엔지니어는 “단순 자동화가 아니라 AI끼리 스스로 판단하고 조건을 절충하는 구조”라며 “각기 다른 서비스의 AI들이 ‘같은 언어’로 대화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1990년대 인터넷 초창기와 닮아 있다는 평가다. 당시 세상을 바꾼 것은 컴퓨터의 속도보다 ‘연결의 규칙’이었다. 미국 주도의 통신 표준인 전송제어프로토콜·인터넷프로토콜(TCP·IP)이 글로벌 표준이 되면서 전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였고, 그 토양 위에서 구글, 아마존 같은 플랫폼 공룡들이 탄생했다. 자본과 데이터, 기술의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표준을 만든 미국으로 쏠린 셈이다.
한번 굳어진 표준은 경쟁자가 손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강력한 해자(垓字)가 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iOS)과 구글(안드로이드)이 구축한 생태계가 대표적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려는 전 세계 개발자들은 결국 이들의 규칙과 수수료 구조를 따를 수밖에 없다.
글로벌 AI 경쟁의 축은 단순 모델 개발을 넘어 ‘얼마나 빠르게 일상에 확산시키느냐’로 이동했다. 미국은 표준을 통해 확산의 방향 자체를 장악하려는 ‘AI 네이티브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등 주요 플레이어가 몰려 있는 이점을 활용해 자국 기술 중심의 ‘사실상의 표준’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보안과 안보 측면에서도 표준은 핵심적이다. 리아 시스킨드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연구원은 “에이전트형 AI가 확산될 때 공통된 보안 규칙이 없다면 시스템 전체가 백도어 공격이나 데이터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며 “데이터 출처와 모델 이력을 검증하는 표준은 위험한 AI를 걸러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미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지난 2월 ‘AI 에이전트 표준화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고 AI 간 신원 인증 및 상호 운용성 기준 마련에 착수했다.
빅테크들 역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앤스로픽은 AI 간 통신 규칙인 MCP를 공개하며 업계 표준화를 제안했고, 오픈AI 등과 함께 리눅스재단 산하 ‘에이전틱 AI 재단’을 설립해 기술 공유에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개방’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 기업의 기술 방식을 산업 전반에 이식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짐 젬린 리눅스재단 최고경영자(CEO)는 “공통 기술 규칙이 있어야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연결되고 재사용될 수 있다”며 “개방형 표준은 생태계 분절과 특정 기술 종속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글로벌 차원의 단일 표준은 정립되지 않았다. 기업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AI를 연결하고 있어 하나로 통하는 규칙은 없는 상태다. 게이트 로지노 미국 조지타운대 안보신흥기술센터(CSET) 수석 연구원은 “AI 에이전트 표준을 누가 설계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AI 생태계의 작동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표준 경쟁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중국의 빠른 추격에 대한 위기감도 자리 잡고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여전히 AI 모델 수와 투자 규모에서 앞서 있지만 미·중 간 기술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결국 미국은 기술력에 더해 ‘표준’이라는 장벽으로 주도권을 굳히려는 전략이다. 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 AI는 글로벌 시장에서 연결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승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표준연구본부장은 “앞으로 AI 표준을 만든 쪽은 생태계 중심에서 흐름을 주도하고 수익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며 “나머지 기업과 국가는 그 위에서 움직이게 되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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