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갑신정변 군사 지휘… 가족 멸문지화, 일본 거쳐 미국 망명
개화파 막내… 18세에 과거급제한 "인재"
일본 군사학교 유학 근대 군사·전술 배워
미국 건너가 끈질긴 노력 의사자격 취득

1884년 갑신정변 주역 중의 하나가 충남 논산 출신의 송재 서재필이다. 그는 갑신정변 당일 개화파 군대를 지휘했고,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고 의사가 됐으며,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민족계몽을 통한 독립운동을 벌였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모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홍영식은 정변의 현장에서 죽었고,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암살당했다. 서광범은 1897년 미국에서 병사했고, 박영효는 친일파로 돌아섰다. 제명대로 살아 개화운동을 벌이고 독립운동가로 인정을 받은 인물은 서재필이 유일하다.

서재필의 본가와 생가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서재필의 '출생지'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으로 돼있다. 그의 아버지 대구 서씨 서광효가 살았던 집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어머니 성주 이씨의 집은 보성군 문덕면이었는데 어머니가 친정에 가서 서재필을 낳았기 때문이다. 1960-70년대까지도 친정에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풍습이 있었다. 서재필의 본가는 논산, 생가는 보성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출신지는 논산,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출생지는 보성인 것이다.

서재필은 1864년 외가인 전라남도 보성에서 부친 서광효, 모친 성주 이씨의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논산에서 자랐으며, 6-7세쯤 자식이 없던 서씨 집안의 7촌 서광하(대전 대덕 거주)의 양자가 됐다. 양자 입적은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서광하의 부인이 당대 세도가인 안동 김씨 집안이었는 데 그녀의 도움 덕분에 서울에 사는 외숙부 김성근의 문하로 들어갔던 것이다.
김성근은 전라도관찰사, 공조판서 등을 지낸 인물로 종로 재동에 살았다. 재동과 안국동 가회동의 북촌은 개화파의 온상이었다.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박영효 등의 젊은이들이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 등의 스승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개화를 꿈꿨다. 어린 서재필도 이들을 만나, 공부하고 교류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 13세 연장자인 개화파의 좌장 김옥균은 막내 서재필을 매우 아꼈고 늘 옆에 뒀다고 한다.
서재필은 1882년 과거에 급제, 벼슬길에 오른다. 고종이 등극한 지 20년 되던 해 특별히 열린 별시문과에 병과 3위로 합격한 것이다. 18세 최연소자로 과거에 급제하자, 세상이 떠들썩했고 개화파 선배들도 매우 기뻐했다.

종9품 관직에서 일하던 그는 이듬해 5월 일본의 도야마군사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군사학교 유학은 김옥균이 고종에게 신식 군대를 이끌 간부 양성을 건의하여 이뤄진 것이었다. 조선정부는 양반과 중인의 자제 14명을 뽑아 유학을 보냈다. 군사학교는 하사관과 초급장교를 육성하는 곳으로 근대적인 전술학과 병기학을 가르쳤다. 교육과정이 1년~1년6개월이었으나 고종이 소환령을 내려 조기 귀국해야 했다. 어학연수를 빼면 실제 군사훈련 기간은 7개월에 불과했다. 민씨 일파가 개화파 청년들의 일본 군사유학을 꺼렸고, 사대부들이 양반자제가 머리를 깎고 전쟁을 배우는 것을 비난했던 것이다.
귀국 직후 고종은 유학생들의 제식훈련과 사격술 등을 참관한 뒤 서재필을 신식군대 훈련기관인 조련국의 사관장에 임명하고 훈련원(기존의 군사 교육기관)의 병사 훈련을 맡겼다.
조련국은 김옥균과 박영효 등이 야심차게 설립한 기관이었다. 외세를 극복하려면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봤고, 고종의 윤허를 받아 유학생 출신을 중심으로 조련국을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민씨 일파는 개화파의 군사장악을 경계했고, 고종을 압박하여 문을 닫게 했다. 대신 해방영을 설치하고 간부 자리에 민씨의 자제들을 앉혔다.
개화파는 민씨 세력 및 수구파와 대립하다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이때 20세의 서재필은 개화파 병력을 현장 지휘했다. 개화파에서 비밀리에 사관생도를 모아 결성한 조직(충의계)을 이끌고 고종의 신병을 확보한 채, 왕명으로 수구파 대신을 불러들여 처단했다. 창덕궁 돈화문을 수비했으며, 청나라 군대가 진입해오자 전투를 지휘했다. 개화파가 출범시킨 정부에서는 병조참판 겸 육군 정령관을 맡았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면서 서재필은 김옥균, 서광범 등과 황급하게 일본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서재필은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아버지 서광효와 어머니 성주 이씨는 은진현 관아에 갇혀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재필의 아내 광산 김씨는 관비가 되는 것을 거부한 채 음독자살했고, 어린 아들은 돌볼 사람이 없어 굶어 죽었다. 맏형 서재춘도 감옥에 갇혔다가 자살했고, 이복형제 서재형은 관군에 붙잡혀 참형을 당했다. 서재필과 함께 일본 군사학교에 유학했던 친동생 서재창은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의붓어머니와 이복 동생들 역시 참화를 당했다.
서재필의 일본 생활은 불안하고 궁핍했다. 조선에서는 계속 자객을 보냈고, 일본정부에 송환을 요구했다.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웠고, 일본정부 역시 이용 가치가 없어진 개화파 망명객을 냉대했다. 사면초가에 몰린 서재필은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1885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미국인 선교사와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여비를 마련해줬다.


미국 생활은 무일푼 동양소년의 생존투쟁이었다. 청소와 식당서빙 등 온갖 잡역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교회도 다니고 영어를 배웠다. 그러던 중 1886년 교회에서 만난 대부호 홀렌백의 주선으로 펜실베이니아의 명문 고교인 해리 힐만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거처가 없었던 서재필은 교장의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며 학교를 다녔다. 명석한 데다 엄청난 노력이 더해져 학교 성적도 좋았다.
고교를 마친 그는 워싱턴D.C.의 컬럼비안대학(현 조지워싱턴 대학)의 예비과정을 마치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문구점을 직접 운영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189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의무박사(세균학 전공)가 됐다. 1890년 6월에는 귀화하여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이 무렵 미국 여성 뮤리엘 메리 암스트롱과 결혼한다. 뮤리엘의 아버지 조지 뷰캐넌 암스트롱은 남북전쟁 당시 철도우체국을 창설, 미국 초대 철도국장을 지낸 유명인사였다. 서재필이 뮤리엘의 어머니를 치료하던 병원에서 만났는데 둘은 곧 사랑에 빠졌고 서재필의 청혼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의사 개업을 했지만 유색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환자가 별로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편 조선에서는 1894년 친일 김홍집 내각이 등장하면서 근대적 개혁이 시작되고, 개화파에 대한 사면이 이뤄졌다. 서재필도 1895년 3월 작위가 회복됐고 5월에는 미국에 체류 중인데도 외교를 담당하는 외부의 협판(차관), 8월에는 학부대신(교육부장관) 서리에 임명된다.
서재필은 조선정부의 귀국 요청을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의 가족들을 참혹하게 죽이고 김옥균을 능치처참한 것에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1895년 가을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옛동지 박영효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뀐다. 조선이 개화의 길로 들어섰고 신분도 보장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김홍집 내각이 다시 귀국을 요청하자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12월 26일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갑신정변 실패 이후 망명한지 11년만에 미국인 의학 박사 '필립 제이슨'이 되어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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