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 60년, 한 이름에 담긴 삶의 기록
한국·독일 넘나든 여성의 삶과 기억의 서사

이 작품은 독일에서 생을 마감한 파독 간호사 이모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화자인 차혜경은 장례를 계기로 이모가 남긴 흔적과 주변 인물들을 만나며, 가까이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개인의 죽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점차 세대의 기억으로 확장되며, 가족 안에 축적된 시간과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이야기 속 ‘장례’라는 사건은 오랫동안 미뤄져 있던 기억과 서사를 다시 불러내는 계기가 된다.
소설은 가족과 여성의 몸을 통과한 기억에 주목한다. 엄마와 이모, 딸의 시선이 교차하며 가족 안에 축적된 기억과 감정의 흐름을 드러낸다.
작가는 장례식의 풍경, 오래된 일기장, 흩어진 대화의 조각을 따라가며 서사를 풀어간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시간과 상황을 차분히 축적해 나가는 방식이 특징이다.
특히 이 책은 ‘파독 간호사’라는 이름 뒤에 가려졌던 삶의 결을 짚는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가족과의 단절, 노동과 돌봄의 부담, 노년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이주 여성 노동자가 감당해야 했던 일상의 무게를 담아냈다. 기존의 ‘헌신’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개별 여성의 경험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 점이 눈에 띈다.
이야기는 이모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더 이전 세대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독 간호사 1세대의 삶에서 출발한 서사는 전쟁과 분단, 이주와 노동을 거쳐 가족 안에서 전승된 기억의 흐름으로 확장된다.
화자는 이 과정을 따라가며 한국 현대사의 상처가 사건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의 몸과 삶에 새겨진 기억으로 이어져 왔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자신 또한 그 기억 위에 서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작가는 2007년 독일로 이주한 이후, 이민자의 삶과 기억을 주제로 에세이와 인터뷰 기록집, 희곡 등을 집필해왔다. ‘안녕, 홍이’는 이러한 작업의 흐름이 응축된 첫 장편소설로, 출판과 공연을 통해 축적해온 서사를 소설 형식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작품에서 ‘안녕’은 단순한 작별의 인사가 아니라, 오래 불리지 못했던 이름을 다시 부르고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언어로 제시된다.
박경란 작가는 “이러한 서사를 통해 가족과 기억의 관계를 짚으며, 여성의 삶을 따라 한국 현대사를 다시 바라보고자 했다”며 “나는 소설 속 모든 인물이었다. 여성의 몸을 통과한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과 희망으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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