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왕사남'과 측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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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 모처럼 춘풍(春風)이 불고 있다.
단종이 엄흥도의 아들 태산에게 "측우기를 만든 사람은 노비였다. 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에게 배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며 말을 건네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발명과 지식재산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왔던 필자에게는 발명의 날을 상징하는 측우기의 역사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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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 모처럼 춘풍(春風)이 불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한국 영화로서는 2년여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반가운 소식 때문이다. 명배우들의 혼신 어린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단종의 애달픈 서사와 그 곁을 지킨 민초들의 이야기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유독 시선을 붙잡은 장면이 있었다. 단종이 엄흥도의 아들 태산에게 "측우기를 만든 사람은 노비였다. 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그에게 배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며 말을 건네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일반 관람객들은 신분 제도에 상관없이 좋은 인재를 등용했던 세종대왕과 문종을 잠깐 상기하며 무심코 지나쳤을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직업병이 발동해서였을까. 발명과 지식재산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왔던 필자에게는 발명의 날을 상징하는 측우기의 역사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종의 대사는 노비 출신의 발명가였던 장영실을 지칭하는 듯하다. 그동안 측우기는 장영실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왔고 필자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허청에 들어와 각종 역사적인 사료와 문헌을 살피다 보니 측우기를 고안한 실질적인 주인공은 장영실이 아닌, 단종의 아버지 문종이란 점을 알게 됐다. '세종실록' 세종 23년(1441년) 4월 29일(양력 5월 19일)의 기록은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해,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간 푼수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고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이하 생략)."
당시 세자였던 문종은 극심한 가뭄으로 힘들어하던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며 빗물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측우기를 발명한 것이다. 이를 기초로 1442년 조선에서는 전국적인 강우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됐고 과학적 방법을 통한 농업 발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측우기는 서양보다 약 200년 앞선, 세계 최초의 우량계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는 1957년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한 날(1441년 5월 19일)을 기념해 '발명의 날'을 제정했다. 발명의 날은 올해로 61주년이 된다.
지식재산처는 지난해 10월 특허청에서 승격하며 대한민국의 지식재산 발전을 위한 '새로운 6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최근 글로벌 시장은 신(新)보호무역주의로 대변되는 통상 환경과 격화되는 기술패권 경쟁으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지식재산권이 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이 성장해 다시 혁신에 재투자하는 지식재산 기반의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롭게 출범한 지식재산처가 반드시 이뤄야 할 중요한 책무다. 지식재산처는 이름 그대로 '지식'과 '재산'이 함께 있는 곳이다. 앞으로 지식재산처는 오늘의 아이디어가 내일의 자산이 돼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모든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600여 년 전 문종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측우기가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듯이 말이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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