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남성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주연 2026. 3. 22. 17: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노동] 가르치는 사람이자 연구자 이승현

3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이승현 객원교수는 이번 학기 강의를 하나 더 맡게 되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석사논문으로 〈성별의 법적 결정에 대한 헌법적 고찰: 성전환자의 경우를 중심으로〉를, 박사논문으로 〈혐오표현에 대한 헌법적 고찰〉을 쓴 법학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심하며 열심히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이젠 ‘자식뻘’이라는 학생들 이야기를 할 땐 더 의욕이 넘쳤다. ‘확실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구나’라는 게 확 느껴졌다.

▲ 2026년 3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이승현 객원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다

이승현 씨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성별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됐고,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들었다.

 

-대학에서 강의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10년째인 것 같아요.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정확한 표현이 중요한데요.(웃음) 지금 사실 ‘대학강사’는 아니고 ‘객원교수’에요. 강사로 3년 일했는데, 강사법이 개정되면서 계약 보장이 돼서 6년을 일하긴 했어요. 근데 이 강사법 때문에 학교에선 강사를 적게 뽑기 시작했고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지금은 객원교수(비전임교원, 학기 혹은 년 단위로 계약함)로 일하고 있어요. 근데 이렇게 소개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글쓰고 강의합니다.’라고 말하죠.

 

-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01학번인데요. 사법시험이 있을 때니까, 법대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걸 생각하던 때였죠. 근데 전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법학 전공을 꼭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요. 솔직히 고등학교 때가 정체성 혼란이 심할 때이기도 했고, 성별 불쾌감(디스포리아)과 위화감이 있을 때니까, 내 안에서의 가장 큰 화두는 ‘사람은 왜 자살하면 안 되냐?’는 거였거든요. 우울증의 정점에 있던 때였죠. 그래서 쇼펜하우어 책을 열심히 읽었고 ‘철학과는 어떨까’ 생각했어요. 당시에 학교 윤리 선생님을 붙잡고 ‘왜 죽으면 안 되냐?’ 물어보기도 했었는데, 그 선생님한테 철학과에 가고 싶다니까 ‘굶어서 죽게?’ 하더라고요.(웃음)

일단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고, 거긴 광역학부제(공학계열, 인문계열 등 광역 단위로 입학해 1학기 혹은 2학기 후에 전공을 선택)여서 사회과학계열로 들어갔어요. 입학하고 OT할 때 보니까 다른 학생들은 미리 정보를 다 수집해 왔더라고요. OT 끝나고 나왔을 때 각 학과 학생회 깃발이 쫙 깔려있었는데 다들 원하는 곳을 찾아갔어요. 나 혼자 ‘뭐야? 이게 뭐지?’ 이러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좀 튀는 깃발이 하나 보였어요. 거기만 색깔이 좀 다르더라고요. ‘저 깃발 좋은데?’ 이러고 따라갔어요.(웃음) 그게 법학과더라고요.

그렇게 1년 동안 몇 가지 과목을 수강했는데, 제일 재미있게 들었고 그래서 성적도 잘 나온 쪽이 법학이랑 사회학이었어요. 어느 쪽을 갈까 고민하다가, 이미 1년 동안 법대 건물 썼으니까 ‘그냥 법학으로 해야겠다’ 하고 선택한 거에요. 근데 막상 거기랑 안 맞았어요.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선 제 성별에 의문을 갖지 않고 바로 ‘여성’으로 규정되더라고요. 반면, 대학 들어가자마자 들어간 만화 동아리에선 한달 동안 제 성별 가지고 논쟁이 있었다고 해요. 그땐 그렇게 나를 헷갈려 하는 곳이 오히려 편했어요. 그러니까 법대 공동체랑은 가까워지지 않았죠. 거기다 3학년 땐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기도 했고요. 법대 안에서도 계속 ‘전형적’이지 않은 선택을 했어요.

 

치마정장 입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민번호가 왜 이래요?’…트랜지션 이후 취업은 더 어려워져

 

-법대에 별로 애정이 없었는데, 대학원까지 진학하셨잖아요.

사실 제 정체성과 관련된 거긴 해요. 학부 졸업할 때가 되니까 도저히 취직을 못하겠더라고요. 취직해서 치마정장 입는 그런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법시험 칠 생각도 없었으니까. 선택지가 대학원 정도더라고요. 대학 때 공부는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인권 이슈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기도 했었거든요. 대학원 다니며 인권 관련된 공부를 좀 더 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성별의 법적 결정에 대한 헌법적 고찰: 성전환자의 경우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썼죠.

▲ 이승현 씨는 2007년 논문 〈성별의 법적 결정에 대한 헌법적 고찰: 성전환자의 경우를 중심으로〉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여름에 석사 졸업을 했는데, 박사 과정을 바로 시작했던 건 아니에요. 석사 논문 쓰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성별 정정을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가 무엇일까?’ 그 지점을 정말 많이 고민했으니까요. 결국 논문에서 나름 중요한 내용을 도출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논문을 쓰고 나서 번아웃이 왔어요.

그리고 연애를 시작했는데요. 제가 연애 감정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아닌데, 한번 누군가한테 빠지면 정신 못차리고 빠지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본가에서 독립했고요. 상대 역시 트랜스젠더였는데, 호르몬 주사를 통한 트랜지션(transition,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춰 사회적, 신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전체적인 과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도 해야겠다’ 결정하게 되었죠. 그렇게 트랜지션을 시작하니까 취직은 더 안 되더라고요.

면접을 보러 가면 ‘주민등록번호가 왜 이래요?’ 아니면 ‘군대를 안 갔는데 면제 사유가…’ 이런 반응이었어요. 정말 운 좋게 합격한 곳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면접관들이 아무도 제 주민등록번호를 못 봤기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주민등록번호가 알려지는 일이 있기도 했고, 나 스스로 정말 회사 일이랑 안 맞는 걸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되면서 석 달 만에 그만뒀어요.

전에도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안 맞는진 몰랐거든요. 그때 깨달았어요. 석사 때 고생했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쉬웠다’라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죠.

 

-어떤 지점에선 본인의 선택대로 온 게 아니기도 한데요. 지금 일엔 만족하나요?

일은 기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건데요. 둘 다 잘 맞아요.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INTJ인데(웃음) 내가 생각하는 걸 구현하려고 하면 혼자 작업하는 게 딱 좋고, 수업하는 것도 ‘내가 세운 목표에 부합하게 어떤 수업 내용을 만들까? 어떤 방법을 써 볼까?’하면서 진행하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이제 40대인데, 30대 후반 정도부터 20살인 대학생들이 너무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사실상 거의 ‘자식뻘’이잖아요. 트랜지션 과정에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아서 임신·출산이 불가능한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박탈감이 생겼어요. 해외에는 임신한 트랜스젠더 이런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런 상상도 못해 봤으니까요... 여튼 그래서인지 학생들을 보는 게 좋아요.

▲ 대학에서 강의 중인 이승현 객원교수의 모습. (사진 제공: 이승현)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때요? 요즘 ‘20대 남성의 극우화’ 등에 대해 말들도 많은데 말이죠.

점점 더 고민하긴 해요. 재작년부터 수업 시작할 때 ‘내가 여러분과 20살 이상 차이가 난다. 그래서 알고 있는 기본 상식, 통념이 다를 수 있다. 여러분들의 것들도 알려 달라’고 말해요. 예전부터 청년들 삶이 빡빡하긴 했지만 확실히 요즘은 ‘진짜 빡빡하다’는 게 느껴져요. 학생들이 너무 경쟁에 찌들어 있는 게 보이고요. 그래서 보수화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학생들이 대체로 정말 ‘내 파이가 사라질까봐’ 걱정해요. 그래서 요즘은 인권 수업할 때 ‘이런 이런 게 나의 권리이고, 나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말을 오히려 줄여요. 그건 이미 기본값이 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 존중’을 더 많이 언급하죠. 대형 강의를 하면 1년에 400~500명 정도의 학생을 보는데, 리포트에 ‘남성이 겪는 역차별’ 이런 이야기를 써서 내는 이들이 있어요. 진심으로 그걸 믿고 있는 거죠. 사실 요즘은 꽤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이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죠.

근데 정말 이들의 삶이 너무 빡빡해서 그런 거구나 느낀 순간이 있어요. 몇년 전에 한 남학생이 예비군 훈련 때문에 수업을 못 듣게 된 거에요. 그래서 ‘그건 수업 인정 되니까 괜찮다’고 했어요. 이 학생 걱정은 그게 아니라, 시험이 수업 안에서 나오는데 필기를 공유 받을 친구도 없고 수업도 못 들으니까 자신이 불리해진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학생한테 그럼 다음 시간에 좀 일찍 오면, 빠진 날 어떤 수업을 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 때 그 학생의 표정의 잊혀지지 않아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그렇게 해주신다는 분은 처음이에요.’라고 하더라고요. 새삼 ‘이 애들이 되게 힘들구나’ 싶었어요.

요즘 젊은 남성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없지 않나 싶어요. 트랜스남성이 그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웃음)

 

우리 사회는 ‘강한 남성성’에 포섭돼, 다양한 남성성 모델 부재…

특히 소수자 정체성을 포함한 남성성은 드러나지 않아

 

-청년 남성들에게 어떤 역할모델이 되고 싶으세요?

전 우리가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재정비하고 긍정하는 게 더 좋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트랜스젠더로서 정체화한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남성’으로 정체화했다기 보단 ‘일단 여성은 아니다’라고 정체화를 했어요. 그러다가 트랜스남성이라 정체화했고, 지금은 트랜스남성이라는 정체성과 동시에 남성의 정체성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설명하기 까다롭긴 한데... 예전에 1990년대 페미니즘에서 나온 말 중에 하나가 ‘젠더 차별이 없었으면 트랜스젠더도 없었을 거다.’라는 거였는데, 그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났어요. 난 무인도에 혼자 있었어도 ‘바디 디스포리아’(body dysphoria, 몸에 대한 위화감)가 있었을 거고, 여성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존재한다는 거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최근엔 오히려 젊은 여성들에겐 다양한 롤모델이 있는데 젊은 남성들에겐 다양한 남성성을 보여주는 이들이 부재한 것 같아요. 그냥 어떤 ‘강한 남성성’에 다 포섭되어 버렸달까? 특히 어떤 소수자의 정체성을 포함한 남성성은 전혀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트랜스남성이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이든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 또한 우리 사회에 여전히 부재한 부분이죠.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면 자서전을 써볼까 싶기도 해요.

 

-지금 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기본적인 정체성은 연구자라고 생각해요. 석사할 땐 활동가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었는데, 그 때 지도교수님이 ‘연구하면서도 활동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연구를 열심히 하라고요. 인권운동, LGBT운동 특히 트랜스젠더 운동을 백업할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를 도출해 내는 연구자가 되고 싶어요.

더불어 인생 목표랄까? 법을 기반으로 트랜스젠더, 인터섹스(intersex, 호르몬, 염색체, 생식기 등이 전형적인 성별 이분법에 해당하지 않는 성징을 지닌 사람)와 관련된 교과서를 만들고 싶거든요. 언젠가 법학 내에서 LGBT법 같은 과목이 개설되면 그때 쓸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또 관심있는 연구 분야가 있는데, 근대 헌법에 대한 거에요. 한국의 법이 서구의 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에 대한 논의는 많은데, 아시아의 법이나 한국의 예전 법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거든요. 법학 교과서 열면 프랑스 혁명부터 얘기하는데 좀 이상하잖아요? 사실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가 되기 전에 헌법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사학 쪽에서 하지 법학 쪽에서는 별로 안 해요. 그 시기 한국이나 오키나와,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헌법이나 인권 민주주의를 도모했던 움직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요.

Copyright © 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