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두려움, 난망한 출구전략…이란 대통령 아들의 ‘전쟁 일기’로 본 이란 지도부 일각의 속내

박은하 기자 2026. 3. 22. 16: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아들 유세프
2월 28일 이후 텔레그램에 일기
“민주적 정권 이양은 환상”
유세프 페제시키안 인스타그램 캡처

이란 최고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하메네이와 주요 인사들이 피살되는 가운데 이란 지도부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주변 걸프국에 보복 공격을 가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무기화하며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 지도부의 실제 속내는 어떨까.

개혁 성향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현 이란 대통령의 아들이며 정부 고문으로도 활동하는 유세프 페제시키안(44)의 일기가 단서를 제공한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유세프가 텔레그램에 쓴 일기 일부를 공개했다. 일기에서 항전 의지와 더불어 암살에 대한 공포, 전쟁의 출구전략을 둘러싼 고심 등을 엿볼 수 있다.

유세프는 전쟁 엿새째인 지난 5일 “일부 정치인들이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다. 국민은 전문가들과 정치 지도자들보다 훨씬 강하고 회복력이 뛰어나다. 진정한 패배는 우리가 패배감을 느낄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고 썼다.

그는 또한 자신과 두 형제·자매가 아버지의 남은 임기 2년이 빨리 끝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썼다. 일기에 따르면 유세프는 전쟁이 시작된 지난 2월 28일 이후 아직까지 아버지와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

유세프는 전쟁 첫 주에 정부 관리들의 회의에 참석했다며 전략에 대한 의견 차이가 불거졌다고 적었다. 그는 “우리의 가장 심각한 의견 차이는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하는가’라는 점”이라며 “영원히? 이스라엘이 파괴되고 미국이 후퇴할 때까지? 이란이 완전히 붕괴되고 우리가 항복할 때까지? 우리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한다”고 썼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지난 7일 영상 메시지에서 주변 아랍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사과하고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유세프는 일기에서 아버지의 결정을 옹호하며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우방국의 미군 기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그들이 우리의 상황을 이해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공습 중단 약속은 지도부 내 보수파의 반발로 몇 시간 만에 철회됐다.

하메네이에 이어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이스마일 카티브 정보부 장관 등이 제거되자 그는 공직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제1과제가 됐다고 말했으며 표적 살해를 저지하는 것은 “명예의 문제”라고 적었다. 라리자니 사무총장이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전혀 믿고 싶지 않았다”며 “적에게 또 한 번의 암살 기회를 허용해서는 안 됐다”고 썼다. 라리자니 사무총장은 이란 지도부 내 협상파로 알려졌다.

유세프는 친구나 지인 등으로부터 “정권을 이양하고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고 썼다. 그는 “이는 무지하고 망상에 불과한 생각”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도부의 이란 공직자 표적 사살을 막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 적었다.

유세프의 일기에는 일상적 내용도 담겨 있다. 아이들과 함께 색칠놀이를 하고, 할머니를 보고 온 일 등이다. 정체불명의 초대 메시지를 받고 긴장했지만 알고 보니 친구들이 라마단 금식 해제 후 저녁 식사에 초청한 것이었다는 일화도 전했다.

그는 조국의 미래를 고민하다가 쿠란을 펼쳐 봤다며 “내 생각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앙은 우리 자신의 행동의 결과다. 어쩌면 눈물이 우리의 구원이 되고 용서를 구하는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19일간의 전쟁 끝에 무너졌고 여러 번 울었다”는 구절도 있다.

유세프의 일기 일부는 인스타그램에도 올라와 있다. NYT는 유세프와 친분이 있는 이란 관리 두 명과 전직 고위 관리를 통해 유세프가 해당 계정들을 직접 운영한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란은 하마네이 사망 후 대통령, 사법부 수장, 헌법수호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된 임시 지도자 위원회를 통해 통치하고 있다. 유세프 대통령과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며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들이 군사작전을 주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