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차 안, 아내의 마지막 눈빛 선한데”…산불 1년, 남겨진 사람들[더뎁스]
아들 잃은 옥자씨, “이웃 덕에 버텨”
피해 주민 87%가 외상후장애 위험
그래도 남은 사람들 “살아가야지요”
더뎁스(The Depth)는 사건과 사고 뒤에 숨겨진 입체적인 맥락을 파헤치는 시리즈입니다. 현장의 소음에 가려진 핵심 쟁점을 파고들어 ‘왜’와 ‘어떻게’를 선보이겠습니다.
결혼기념일을 닷새 앞둔 지난해 3월 26일. 김수태 씨(65)는 그날이 사랑하는 아내와의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경북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를 덮친 산불은 김 씨의 보금자리와 사과 농장뿐 아니라 부인 김수정 씨(당시 59세)까지 앗아갔다. 세찬 바람을 타고 불길이 수정 씨의 차를 덮친 것. 화마로 휩싸인 차 안에서 수정 씨를 구하려던 수태 씨의 얼굴에는 선명한 화상의 흔적이 남았다.

● 가족 잃었지만 마을에 남은 사람들


당시 옥자 씨는 첫째 딸로부터 소식을 듣고 “숨이 콱 막혔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날 입은 마음의 상처로 몸에 염증이 도지는 등 건강까지 나빠졌다. 약 1년을 포항시와 서울 등지의 병원을 전전하다가 지난달 말 다시 화매리로 돌아왔다. 옥자 씨는 “시집와서 이곳에서 애들까지 다 키운 정든 곳”이라며 “남은 생은 마을 주민들과 같이 아픔을 이겨내며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도 옥자 씨의 집에는 그를 찾는 이웃 주민 3, 4명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 피해 주민 87% PTSD 위험… 3명 중 1명은 “심리 지원도 효과 없어”


결국 단기적인 상담 프로그램만으로는 이들의 깊은 상흔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의학적인 치료를 넘어, 주민들이 서로를 보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공동체 회복’ 중심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내의 숨결이 남은 과수원에서 다시 사과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수태 씨의 간절함. 잿더미 위에서도 기어이 ‘평범한 내일’을 꿈꾸는 옥자 씨의 소망. 무너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끝내 터전에 남기로 한 이들의 결심은 정말 우리가 보듬지 못할 욕심일까.
안동·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안동·영양=정동진 기자 haedo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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