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폭발할지 몰라" 대전 화재 공장 퇴사자들, '오일미스트' 경고했었다

송주용 2026. 3. 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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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공업 현장 노동자들, 위험환경 지적
74명 사상 자동차 부품공장 전직 직원들
4년 전부터 글 올려 "오일미스트 탓 불안"
소방 및 산업안전 점검 체계 '구멍' 비판도
대형 화재로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대덕구 문평동 자동자 부품 제조공장의 22일 모습. 대전=하상윤 기자
"(작업장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감과 현장에 날리는 오일미스트 불안감에 퇴사했습니다. 폐질환, 폭발, 화재사고 등 (위험이 커서) 목숨을 담보로 한 생산활동이 너무 불안했습니다."
안전공업 전 직원이라고 밝힌 한 인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과거 올린 글.

지난 20일 대전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큰불이 나 74명이 숨지거나 다친 가운데 이 업체의 노동자들은 이전부터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 탓에 불안에 떨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장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회사는 예방에 나서지 않고, 관계당국은 허술하게 점검해 예견된 인재(人災)가 터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현장에 오일미스트, 악취가 너무 심했다"

20일 대전 대덕구 안전공업 공장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뉴스1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에 화재가 난 자동차·선박 엔진 밸브 제조사인 '안전공업'의 근무 환경이 엉망이라는 지적은 이미 4년여 전부터 꾸준히 나왔었다. 전직 직원들은 블라인드 등 직장인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올려 자신이 목격한 내부 상황을 전했다. 특히 '오일미스트'(윤활유, 절삭유 등 기름 성분이 미세한 입자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이 많았다. 안전공업의 전 직원이라고 밝힌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2022년 5월 올린 글에서 "나름 높은 급여 외에는 장점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며 "환경 악취, 오일 미스트, 휴게시설 부족, 임원들의 계선 의지 없음 등은 최악"이라고 썼다.

오일미스트가 심하면 연기처럼 앞이 뿌옇게 보이기도 하고 악취를 풍긴다. 오일미스트가 심했다는 것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을 암시한다. 노동자가 오일미스트를 흡입하면 두통 등 신체적 문제를 일으키고, 화재의 원인이 된다.

안전공업의 전 직원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들은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2023년 8월 올린 글에서 "오일미스트의 불안감에 퇴사했다"며 "폐질환, 폭발 화재 사고 등 목숨을 담보로 하는 생산활동이 너무 불안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글쓴이는 "대전 지역 내 최고 수준 급여를 줘 돈만 보고 간다면 나쁘지 않다"면서도 "생산환경이 너무 안 좋다.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토로했다.

이날 황병근 한국노총 연합노련 안전공업노조위원장도 화재 현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조는 사측에 환경시설과 집진 시설 화재 위험성 개선을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유증기와 기름 찌꺼기가 축적되는 것을 우려해 집진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청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노조가 반복적으로 제기한 경고와 지적을 묵살해 참사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또 회사 관계자들은 평소 공장 내 화재경보기 오작동이 자주 일어났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하는 환경 개선해달라" 호소에도…

노동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현장 호소가 이어졌지만 실제 달라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안전공업이 실시한 자체 소방점검에서는 주펌프와 충압펌프 압력 미달 등 작은 문제점만 지적됐다. 주펌프는 화재 발생 때 소화용수를 공급하는 펌프이고, 충압펌프는 주펌프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자체 소방점검은 1년에 두 번 민간 소방업체가 대상지를 점검한 뒤 결과를 통보하면 소방당국이 시정 명령을 내리는 제도다.

노동당국이 벌인 산업안전 점검에서도 큰 문제점은 지적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상적인 산업안전점검은 통상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실시해 보고하는 만큼 산업안전점검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개별 기업 관련 정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20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소재 안전공업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불길과 연기를 피해 공장 벽에 매달렸다. 연합뉴스

정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려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중수본은 노동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소방, 경찰, 관계 부처 등으로 구성됐다. 노동부는 유가족이 사고 원인 조사와 관계기관 합동감식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전지방고용노동청장을 전담 소통관으로 지정했다. 또 사고 목격자와 동료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상담 지원 및 맞춤형 산업재해 보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노동부는 이번 사고로 숨진 노동자 14명 중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지, 하청업체나 계약직 노동자가 있는지 등은 유전자 감식 등 관련 조사가 끝나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프링클러, 비상 대피 체계 등 점검해야"

노동계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고 원인이 정확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개선요구가 수년째 계속돼왔고 화재가 발생해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만큼 사업장의 문제점을 촘촘히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또다시 제조업 산업 현장의 참사를 목격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비상 대피 체계는 갖춰졌는지, 가공유 등 위험물질 관리는 이뤄졌는지, 노동자 고용형태와 작업방식은 어땠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사측이 위험물질 관리를 제대로 못해 사업장 내 화재 피해가 키웠던 악몽도 떠올리고 있다. 2024년 6월 24일 23명의 사망자를 낸 아리셀 참사도 화재 대응이 어려운 리튬 배터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고, 고용 형태에 따라 오갈 수 있는 공간이 분리돼 외국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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