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충의공 엄흥도 후손들, 군위군 진묘 성역화 제안



지난 20일 오후 군위군 산성면사무소 회의실에는 묘한 긴장감과 숙연함이 동시에 흘렀다. 벽면에는 '충의공 엄흥도 군위군 진묘 성역화 제안 고함'이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그 아래로 백발이 성성한 영월 엄씨 후손들, 그리고 학계와 지역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500년 넘게 이어진 한(恨)과 기억,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현장' 그 자체였다.
최근 1천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조선 단종의 비극적 삶을 다시금 대중 속으로 끌어올리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마지막을 지킨 인물인 충의공 엄흥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화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장면에서 막을 내리지만, 정작 그 이후 시신을 숨기고, 생을 감추며 이어진 엄흥도의 삶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 "이곳이 진묘" 현장에서 울려 퍼진 절절한 외침
이날 행사에는 엄흥도 후손 30여 명을 비롯해 언론, 학계,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실 한쪽에는 족보와 문서 사본이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고,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료를 넘기며 서로 의견을 나눴다.
영월 엄씨 충의공계 20세손이자 종손인 엄근수(61)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충의공께서는 둘째 아들 엄광순과 함께 이곳 군위로 내려와 터를 잡고 사셨습니다. 돌아가신 뒤에도 이곳에 모셔졌고, 후손들은 대대로 제를 지내며 살아왔습니다"
짧은 발언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구전과 기억이 응축돼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 문헌이 말하다…"군역·잡역 면제" 왕명 남아
엄흥도의 행적과 묘소의 진위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구전의 영역을 넘어선다. 2009년 김광순 경북대 명예교수가 발표한 논문 '충의공 엄흥도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은 고문서와 문헌 자료를 통해 군위군 산성면 일대가 그의 묘역일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특히 결정적인 단서는 후손들이 대대로 보관해온 고문서에서 확인된다. 2019년 11월, 군위 문중은 1733년(영조 9년)에 발급된 병조 완문과 1464년 편지, 1748년 족보 등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탁했다.
이 가운데 영조가 내린 완문에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충의를 기려, 그의 후손들에게 군역과 잡역을 면제하라'는 내용의 명이 담겨 있다. 이는 단순한 예우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그의 충절을 공식 인정한 기록이다. 학계에서는 이 문서를 엄흥도의 실존과 행적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료로 평가하고 있다.
◆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후손들의 기억
현장에서 만난 후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때부터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밖에 알리지 말라고…."
엄근수 종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먹을 건 못 챙겨도 족보는 꼭 챙기라는 어른들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이는 단순한 가훈이 아니었다. 단종 복위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역사적 무게, 그리고 정치적 격변 속에서 후손들이 감내해야 했던 긴 시간의 흔적이었다.
◆ 역사와 관광, 그 경계에서
이날 행사에서는 단순히 '진묘' 여부를 넘어서, 국가 차원의 성역화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역사적 인물이 우리 지역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라며 "국민에게 교훈을 주는 역사 현장으로 남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들어 군위 산성면 일대에는 엄흥도 묘소를 찾는 발길이 점점 늘고 있다. 대구시가 진행하는 '대구 시티투어'에도 군위 엄홍도 묘소가 포함되어 있고, 전회 예약이 매진되어 추가 운행을 계획 중이다. 영화의 영향과 더불어, 문헌 공개가 이어지면서 '현장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 552년 만의 호소 "역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
"충의공 엄흥도의 진묘 진위를 밝혀 500년 한을 풀어주시고,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워 주십시오."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낭독된 '진심으로 고함'은 그 어떤 발언보다도 절절했다.
"모든 국민이 진실을 알아야 하며, 국가는 이를 밝힐 책임이 있습니다" 낭독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박수 대신 조용한 고개 끄덕임이 이어졌다.
엄흥도 사후 552년. 시간은 흘렀지만, 한 인물의 충절과 그를 둘러싼 진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군위 산성면의 작은 묘역은 이제 단순한 지역 유적이 아니라,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다.
배철한 기자 baech@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