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곳곳에서 춘계향사로 신라의 문을 열다

강시일 기자 2026. 3. 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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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춘분을 기점으로 4월까지 경주는 거대한 제례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일구었던 왕들과 나라를 지킨 장군, 그리고 학문의 길을 닦은 성현들을 기리는 춘계향사의 향불이 경주 곳곳에서 타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양산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최근 육부촌의 여섯 성씨 문중에서 촌장들을 모두 왕으로 격상시켜 예우함에 따라 사당의 명칭을 '육부전'으로 고쳐 향사를 올리고 있다.

경주에서 타오르는 춘계향사의 향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통의 매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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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전·숭신전·숭혜전과 숭무전, 육부전에 이어 경주향교와 옥산서원, 서악서원 등 60여 곳에서 춘계향사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를 향사하는 숭덕전에서 20일 후손들이 제례를 올리고 있다. 경주시 제공

3월 춘분을 기점으로 4월까지 경주는 거대한 제례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일구었던 왕들과 나라를 지킨 장군, 그리고 학문의 길을 닦은 성현들을 기리는 춘계향사의 향불이 경주 곳곳에서 타오르기 때문이다.

이 제례 행렬은 단순한 문중 행사를 넘어, 경주가 가진 정신적 뿌리와 문화적 자긍심을 확인하는 장엄한 의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신라 왕실의 위엄을 잇는 향사는 숭덕전과 숭신전, 숭혜전에서 20일 일제히 진행됐다. 신라 3성(박, 석, 김)의 시조와 왕들을 모시는 향사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왕을 모시는 숭덕전에서는 1천여 명의 후손이 참석했다. 숭덕전 제례는 특히 복식과 제수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경상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신라 4대 석탈해왕을 모시는 숭신전과 미추왕, 문무왕, 경순왕을 모시는 숭혜전에서도 전국 각지의 후손들이 모여 왕실의 예법으로 조상을 기렸다. 여기에 더해 경주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전'이 있다. 바로 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숭무전이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이 사후 '흥무대왕'으로 추서됨에 따라 그를 모시는 사당 역시 '전'으로 격상되어 왕에 준하는 향사가 올려지고 있다.

육부전에서는 신라 탄생의 주역들에 향사를 올린다. 나정 인근에 위치한 육부전은 신라 건국 이전 육부 촌장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과거에는 '양산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최근 육부촌의 여섯 성씨 문중에서 촌장들을 모두 왕으로 격상시켜 예우함에 따라 사당의 명칭을 '육부전'으로 고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이, 정, 손, 최, 배, 설씨 등 6대 성씨 후손들이 함께하는 이 제례는 경주가 씨족사회에서 국가로 나아간 역사를 상징하는 장엄한 현장이다.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를 향사하는 숭덕전에서 20일 후손들이 제례를 올리고 있다. 경주시 제공

경주 이씨의 시조이자 육부촌장 중 한 명인 알평공을 제사하는 현장 역시 뜨거운 숭조 열기로 가득하다. 시조의 은덕을 기리는 후손들의 발길은 경주 전역의 재실과 사당으로 이어지며 잊혀가는 가문의 의미와 뿌리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선비의 정신과 성현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향사도 곳곳에서 진행된다. 경주향교에서는 지혜를 숭상하는 선비들의 공간이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 중 하나인 경주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기리는 '석전대제'를 거행한다. 공자와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과 송국 현인, 우리나라 18현을 모시는 이 의식은 유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울러 회재 이언적 선생을 모시는 옥산서원과 김유신, 최치원, 설총을 함께 모신 서악서원 등 주요 서원에서도 춘계향사가 이어진다. 서원 향사는 학문적 스승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다하는 자리로, 선비 정신의 계승과 지역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교육적 의미가 깊다. 매년 봄, 가을에 60여 곳에서 향사가 진행된다.

경주에서 타오르는 춘계향사의 향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통의 매개체다. 조상을 숭상하고 덕을 기리는 숭조덕업의 정신은 경주가 글로벌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자 정신적 뿌리가 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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