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청년을 주체로 만드는 '청년자율예산제'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주인공 프란시스가 친구에게 자신의 일을 소개하며 꺼내는 말이다. 몇 년째 무용단에서 견습 단원으로 지내고 있는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친구 앞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뭇거린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분명하지만, 주거와 일자리, 관계까지 삶의 모든 것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뉴욕이라는 도시 속에서 방황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청년, 프란시스의 일상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15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그의 고민과 삶의 풍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에게도 여전히 낯설지 않다.
국가데이터포털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이거나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또는 '취업준비자'에 해당하는 20~30대 청년은 지난달 기준 158만 9000명에 달한다.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9~34세 청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4명으로, 전년보다 1.3명 증가했다. 이는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잠시 숨을 고르는 청년, 준비 중인 청년, 그리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이 약 160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청년 문제의 규모와 깊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에 대해 당사자인 청년 스스로 대응하고 지방정부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메울 대안으로 '청년자율예산제'를 제안한다. 청년자율예산제는 청년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예산 편성 과정까지 참여하는 제도다. 이는 단순한 시민 정책 제안이나 주민참여예산제의 '청년판'이 아니다. 미래를 이끌 세대를 시민 주체로 인정하고, 도시 운영에 청년을 동등한 파트너로 참여시키겠다는 지방정부의 의지이자 선언이다.
이미 여러 지방정부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2019년부터, 세종특별자치시는 2021년, 제주특별자치도는 2022년부터 청년자율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청년 마음건강 지원 ▲청년수당 ▲자립준비청년 일상지원 ▲월세 지원 ▲청년 주거정보 플랫폼 ▲청년 재능기부 사업 ▲세종청년플랫폼 기능 강화 ▲미래청년 원스톱 창업지원 ▲대학·지역사회 연계 교육과정 ▲고립·은둔 청년 지원 ▲공익활동 청년과 취약 청년이 함께 성장하는 '동그라미 활동단-품' ▲청년 상생레슨 프로젝트 ▲청년 맞춤 금융 종합지원 사업 '노원 청년 생활금융클래스' 등 다양한 혁신 정책이 실제로 도입되었다.
이에 비해 대전의 도입은 다소 늦은 편이다. 지방의회 5분 발언 등을 통해 제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2025년 12월 개정된 「대전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에 청년자율예산 관련 조항(제18조)이 포함되면서, 제도 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마련된 상태다. 이제는 준비를 넘어 실행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자율예산제가 실질적인 혁신 정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다양한 청년 주체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브랜딩과 적극적인 홍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존재를 알리지 못한 제도는 작동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실질적인 거버넌스 구축이다. 청년정책 예산학교,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등 다양한 참여 구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제도가 형식에 머물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문성을 갖춘 기존 청년 조직과 전문가 멘토 네트워크, 지역 커뮤니티와의 단계별 연계가 필요하다. 청년들의 참여가 단순한 경험에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조정과 설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자율예산제는 단순한 '예산 나눠주기'가 아니다. 미래 세대인 청년을 도시의 주체로 호명하는 출발점이다. 지방정부와 의회,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 이 제도는 단순한 정책을 넘어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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