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골든타임이 생사 가른다…뇌졸중, 심근경색 사례

이석수 기자 2026. 3. 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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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교수(응급의료센터장)
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교수(응급의료센터장)

#1. 멈춰버린 뇌의 시계: "마당 쓸다가 빗자루를 놓쳤어요"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온 환자는 70세 남성으로, 동행한 자녀는 급박한 상황을 눈물로 전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마당을 쓸고 있던 환자가 갑자기 손에서 빗자루를 놓치며 옆으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보호자가 급히 달려가 대화를 시도했으나, 환자는 이미 언어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평소 당뇨와 고지혈증이 있었으나 운동 요법을 고수하며 건강을 자부하던 환자였다. 응급실 침대에 누운 그는 의식은 있었으나 명료하지 않은 기면 상태(Drowsy)를 보였다. 이름과 현재 상황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려 애썼으나, 입술만 달싹일 뿐 신음 소리 외에는 한 단어도 내뱉지 못했다.

상하지 근력을 확인한 결과, 왼쪽은 지시에 따라 움직였으나 오른쪽 팔다리는 축 늘어진 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우측 편마비(Hemiplegia) 증상이었다. 좌측 뇌혈관이 막히면서 우측 신체가 마비되고 언어 중추 기능이 중단된 것이다. 진단명은 뇌경색(Ischemic Stroke)이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환자가 쓰러진 지 정확히 2시간이 경과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즉시 뇌졸중 팀 가동을 요청하며 긴급 처치에 돌입했다. 뇌세포는 혈류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부터 분당 약 200만 개씩 사멸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세포가 완전히 괴사하기 전, 막힌 혈관을 뚫어 혈류를 다시 흐르게 하는 것뿐이다. 그 운명을 가르는 마지노선, 즉 골든타임은 4.5시간이다.

CT 촬영 결과 다행히 뇌출혈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문제는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이었다. 보호자에게는 혈전을 녹이는 강력한 약물인 혈전용해제(tPA) 투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뇌출혈의 부작용 위험이 있으나,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평생 언어 장애와 전신 마비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고지했다.

약물 투여 한 시간 뒤, 기적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미동조차 없던 환자의 오른쪽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또렷한 목소리로 상태가 호전되었음을 알렸다. 막혔던 뇌혈관의 흐름이 재개되자 멈췄던 뇌의 기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보호자가 증상을 가볍게 여기고 집에서 시간을 지체했다면, 환자는 영영 마당의 빗자루를 다시 잡지 못했을 것이다.

#2. 짓눌린 심장의 비명: "체한 줄 알고 손만 땄어요"
뇌혈관만큼이나 촌각을 다투는 응급 상황이 바로 심장 혈관이다. 새벽 4시경, 가슴을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응급실로 들어온 55세 남성의 안색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환자는 가슴이 터질 듯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했다. 환자는 전날 저녁 식사 후부터 명치 부근의 답답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소화제를 복용하고 손가락을 따고 했으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새벽이 깊어지자 가슴 한복판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전신을 덮쳤다.

통증의 양상을 확인한 결과, 흉통은 왼쪽 어깨와 턱 끝까지 뻗쳐나가고 있었다. 이는 심근에 이상이 생겼을 때 신경이 연결된 인접 부위로 통증이 전이되는 전형적인 방사통(Referred Pain)의 징후였다. 심장은 위급한 순간 가슴뿐만 아니라 팔이나 턱으로도 구조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즉시 심전도(EKG)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 결과가 출력되는 짧은 순간, 종이 위에 그려진 그래프는 성난 파도처럼 비정상적으로 솟구쳐 있었다. 진단명은 ST분절 상승 심근경색(STEMI)이었다.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세 가닥의 관상동맥 중 하나가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다. 이는 심장 근육이 산소 공급 부족으로 괴사하기 시작하며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과도 같았다.

심근경색의 골든타임은 통상 2시간으로 간주된다. 늦어도 12시간 이내에는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하지만, 처치가 빠를수록 보존할 수 있는 심장 근육의 양이 많아진다. 의료계에서 '시간이 곧 근육(Time is Muscle)'이라는 격언이 통용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환자는 긴급 관상동맥 중재술(PCI)을 통해 막힌 혈관에 스텐트(금속 그물망)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다. 조영제를 투입하자 단절되었던 혈관의 형체가 나무뿌리처럼 선명하게 드러났다. 괴사 직전의 심장 근육에 다시 혈류가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심장이 보내는 위급한 구조 신호를 소화불량으로 오인하여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례는 대단히 빈번하다. 40, 50대 돌연사의 주된 원인은 결국 질환에 대한 무지와 대응의 지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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