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채팅창에 생겨난 새로운 38선

2026. 3. 22. 11: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최정상 영문매체 Korea Times는 글로벌 전문가들의 영문 칼럼이 가득합니다. 그 가운데 깊은 생각과 문제 의식의 돋보이는 칼럼들을 번역해 한국일보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새로운 비무장지대(DMZ)는 이제 강원도 철원의 산속에 있지 않다. 당신 회사에서 업무전용으로 많이 쓰는 '슬랙(slack)' 채팅창에 있다.

수십 년 동안 한반도는 단편적이면서도 오해 소지가 있는 이미지(요새화되어 있으며 눈에 보이는 경계선)로 이해되어 왔다.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강화된 38선은 단순히 영토를 나눈 것이 아니었다. 38선은 안보를 상상하는 방식과 북한 ‘위협’을 관리하는 방법을 규정지었다. 위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었고, 식별 가능했으며, 종종 의도적으로 과시되었다. 미사일 발사, 포대의 이동, 그리고 이미 위태로운 평화를 무너뜨리겠다는 과장된 수사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 모델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북한의 ‘침투’는 전선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안보 환경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시스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업 내부에서, 조용히,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원격 정보기술(IT) 노동자 운영 방식과 이에 따른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재 지정에 관한 보도는, 북한의 새로운 사이버 전술의 심각한 문제를 보여준다. 김정은 정권은 제재를 피하는 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구조 체제 안에서 능숙하게 살아남는 방법까지 익혔다. 개방성, 분절성 그리고 지속적인 인재 수요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북한 요원들은 더 이상 외부에서 (어렵게) 시스템을 침투하는 방식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면접을 통과하고 기업의 업무 내부로 들어오는 합법적 절차에 의해 채용된다. 그들의 존재는 전통적 의미에서 교란적이지 않다. 일을 수행하고 결과를 내며 조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일반 직원과 구분이 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우려스럽다. 그들은 의심조차 받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이 모델이 효과적인 이유다. 핵심은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일단 내부에 들어오면 이들은 적발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기보다 ‘정상적으로’ 자리를 보전받는다. 그리고 더 자연스럽게 통합될수록, 위협으로 보일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북한이 우리가 거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몇 가지 전제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개방성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원격 근무는 효율적이다, 인재는 맥락 없이도 평가될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현대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이지만, 동시에 제재를 받는 국가가 이를 선택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활용하기 쉽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사이버 작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접근(structural access)의 문제다.

이는 기업 보안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북한의 안보 위협에 대해 채택했던 전통적 이해와도 관련된다. 북한 정권과 그 전략적 목표(특히 핵 프로그램)를 유지하는 광범위한 재정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강력한 제재 아래 있었던 국가에 적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수익원은 단순한 경제 활동의 의미를 넘어서 김정은 정권에 전략적 생명선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벌어들인 자금은 여러 중개 단계와 디지털 자산을 거쳐 흐르며, 결국 정권이 버티고, 투자하고, 장기 목표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한다.

오래 지속된 제재는 북한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접근을 차단하며 자본을 통제하고 고립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 논리에는 압박이 마찰을 낳고, 그 마찰이 결국 전략적 타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북한이 제재를 회피해 왔다는 사실 자체는 놀랍지 않다. 문제는 이제 북한이 글로벌 시스템의 틈새를 찾아내고 그 사이를 점점 더 정교하게 통과하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이를 우회하고 자신이 배제된 구조 내부로 스며들고 있다.

이것이 지금의 상황을 더욱 중요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제 ‘북한 위협’은 외부로 드러나는 군사력(무기, 미사일, 무력 시위)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대적 참여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은 시스템 내부에 얼마나 효과적이고 탐지되지 않게 통합될 수 있는지에 의해 정의된다.

물론 미사일 방어 체계와 억지 전략은 여전히 중요하며,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현실이 있다. 핵 프로그램은 이념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자원, 접근성, 그리고 적응 능력을 필요로 한다.

북한은,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세 가지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안보를 바라보는 방식의 근본적인 간극을 드러낸다. 여전히 국가 안보는 국가와 제도 중심으로 개념화되어 있지만, 실제 위협의 무대는 이미 분산되고, 민간화되며, 세계적으로 통합된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심각한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 위협은 확산되었지만, 이를 이해하는 우리의 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최전선은 더 이상 38선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 기관이나 군사 조직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좋든 싫든, 그것은 이제 채용 과정, 원격 근무 플랫폼, 기업 내부 시스템과 같이 감시보다는 효율성을 위해 설계된, 일상적인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전장이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제 활동과 전략적 취약성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주시해 왔던 그 경계선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이 칼럼의 시각은 필자 개인의 시각입니다.

코리아타임스 영문 칼럼 주소: https://www.koreatimes.co.kr/opinion/columns/columnists/sookim/20260317/your-companys-slack-chat-is-the-new-dmz

수 킴 전 CIA 분석가, 전략리스크 컨설턴트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