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늘었지만... 마음은 '불황'

손유지 2026. 3.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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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경제성장 이어졌지만...국민 체감 행복은 3년째 후퇴
청년층 행복 급락…불안한 일상· SNS 피로가 공통 요인
북유럽 신뢰로 웃고, 한국은 단절 속에 마음 닫혀
부패 인식·공동체 신뢰 회복이 ‘행복 선진국’의 관문
[지데일리] 최근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6)’에서 한국은 147개국 중 67위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9계단 더 떨어졌다. 점수는 6.040점으로, 재작년 52위 → 지난해 58위 → 올해 67위로 3년 연속 하락이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국민의 심리적 체감 행복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주관적 행복도가 3년 연속 하락해 67위로 떨어졌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사회적 신뢰와 정서적 만족은 여전히 낮다. ⓒ픽사베이

보고서는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을 0점(극도로 불행)부터 10점(매우 행복)까지 평가했다. 비교 기준은 ▲1인당 GDP ▲건강한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삶의 선택 자유 ▲관용 ▲부패 인식 등 여섯 가지 지표다. 한국은 소득 수준과 의료·복지 인프라 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공동체 기여(community generosity)와 부패 인식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다.

행복의 질, ‘물질’보다 ‘신뢰’서 갈린다

보고서를 보면 북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핀란드(7.764점)는 9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아이슬란드·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네덜란드가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는 소득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고, 신뢰 기반의 사회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이들 나라의 국민 중 “위기 시 도움을 줄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은 평균 94%에 달한다(OECD Better Life Index).

반면 한국은 이를 크게 밑돈다. 통계청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도 ‘사회적 신뢰 수준’을 보통 이상으로 평가한 비율은 34%에 그쳤다. 한 사회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보다 심리적 안정감, 사회적 신뢰, 공동체적 연대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MZ세대 행복도 급락, ‘불투명한 미래’가 원인

세대별로 보면 특히 20~30대 청년층의 체감 행복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30세 이하 응답자의 평균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5.63점으로 3년 전보다 0.3점 하락했다. 반면 60세 이상 고령층은 6.22점을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지목한다.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 주거 부담, 취업난, 그리고 SNS 중독이 결합돼 심리적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고서는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행복도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미정 교수는 “한국의 청년세대는 ‘충분히 노력했지만 성취가 어렵다’는 체념과 피로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며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 자율성이 낮고, 정서적 연결감도 부족한 점이 주관적 행복을 억누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23위, 일본 61위, 중국 65위

주요국을 보면 미국은 6.73점으로 23위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후 심리적 회복세가 더딘 상태다. 일본은 61위, 중국은 65위로 한국보다 상위권이지만 모두 6점 초반대에서 정체됐다.

이스라엘은 전쟁 중임에도 8위(7.426점)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지역 간 공동체 결속과 종교적 연대감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러시아(79위)와 우크라이나(111위)는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사회적 불신이 여전히 행복지수를 끌어내렸다.

한국, ‘행복의 사회적 토대’ 재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제성장 중심의 국가 경쟁력’에서 이제는 ‘사회적 행복의 질’을 높이는 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재정 확충보다 ‘신뢰 자본’을 키우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행정연구원 한승주 연구위원은 “국가의 부패 인식 개선과 공동체 참여 확산이 한국 행복도 회복의 핵심”이라며 “정책 목표를 ‘삶의 만족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복도가 높은 국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신뢰할 수 있는 제도, 참여할 수 있는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선행되어야 국민 전체의 심리적 복지가 향상된다. GDP가 늘어도 불신이 깊어지면 행복은 오히려 줄어든다.

세계행복보고서는 이제 단순한 ‘순위표’가 아니라, 사회적 단면을 비추는 ‘거울’로 읽힐 필요가 있다. 이번 한국의 67위는 경기 호황 속에서도 ‘심리적 불행’을 느끼는 시민들의 내면을 반영한 경고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회원국 중 1위 수준이며, 직장 내 스트레스, 가족 해체, 개인주의 심화 등 복합 요인이 행복도를 갉아먹고 있다(OECD Health Statistics 2025).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답은 ‘소득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에 있다고 하겠다. 경제성장, 건강, 기술 발전이 아무리 빨라져도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여전히 ‘행복 후진국’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삶이 괜찮다’는 국민의 체감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