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본명 걸고 사업했다가 재벌에게 소송당했습니다”…산업계 뒤흔드는 이름 전쟁 [매경 뒤 시네마]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6. 3. 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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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뒤 시네마-8] 영화 ‘너의 이름은.’

‘매경 뒤 시네마’는 영화 속 경제 이야기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에서 이름을 빌려 왔습니다. 매일경제 뒤에 있는 영화관에서 담소 나누듯 경제 뉴스를 무겁지 않게 다뤄봅니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2016)은 한국에서만 397만명이 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 작품이다. 자고 일어나 보니 서로 몸이 바뀐 두 남녀가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제목이 ‘너의 이름은.’인 이유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열쇠여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떠올리느라 안간힘을 쓴다.

영화에서 경제 이야기를 짚어내는 ‘매경 뒤 시네마’에서 오늘 ‘너의 이름은.’을 선정한 건 오늘날 경제에서 이름이 차지하는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기업은 더 잘 기억되기 위해서 사명을 바꾸고, 또 좋은 이름을 차지하기 위해 소송전도 펼친다. 여기에 더해 영화 속에서 드러난 일본의 지방 소외 현상까지 훑어보고 나면 ‘너의 이름은.’이 경제적으로 다양한 분석이 가능한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 소녀 미즈하는 자고 일어나 보니 소년의 몸으로 변해 있어 깜짝 놀라고 만다. 참고로 ‘너의 이름은.’의 제목은 마침표까지 적어주는 것이 온전한 표기법이다. 이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설명이다. [IMDb]
<목차> [줄거리 요약] 자고 일어나 보니 모르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경제 포인트1] 같은 일본일까?…카페 천국 도쿄, 카페 사막 시골 [경제 포인트2] “거래처 사장님 이름 기억 못 하면 낭패”…명함 정리 기술의 변천사 [경제 포인트3] 지하철역 이름에 무슨 병원이 이렇게 많아 [경제 포인트4]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내 회사에 내 이름도 붙이지 못하고 [씨네프레소 한 잔]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의 힘
줄거리 요약: 자고 일어나 보니 모르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이야기는 시골에 사는 소녀 미즈하와 도쿄에 거주하는 소년 타키의 몸이 서로 바뀌면서 시작된다. 일주일에 2~3일은 일면식 없는 이성의 몸으로 변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한동안 당황한다. 그저 눈치껏 행동할 뿐이다. 이를테면 누군가 친한 척을 하면 ‘저 사람이 친구인가 보구나’라고 짐작하는 식이다. 그러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두 사람은 몸이 변했을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든다. 샤워를 금지한다든지, 상대방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룰이다.
시골에 거주하는 소녀 미즈하. 그의 동네에서는 카페에 가자는 제안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IMDb]
정체불명의 현상에 시달리던 어느 날, 몸이 변하는 일이 갑자기 멈춘다. 타키는 기억 속 장면을 더듬어 미즈하의 동네를 찾아가는데, 몸이 바뀌는 동안 소녀에게 마음을 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근처에 간 타키는 당황스러운 진실을 마주한다. 그곳은 이미 3년 전 혜성 충돌로 소멸한 상태였다. 심지어 타키는 미즈하의 이름마저 가물가물해지는 걸 느끼는데… 이 미스터리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궁금하다면 OTT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혜성은 아름답다. 우리 동네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IMDb]
경제 포인트1: 같은 일본일까?…카페 천국 도쿄, 카페 사막 시골
‘너의 이름은.’에서 살펴볼 첫 경제 포인트는 바로 도시와 지방의 격차다. 우리가 아는 ‘미래 도시’ 일본은 사실 도쿄의 모습이고, 시골은 일상에 불편을 겪을 정도로 낙후됐음이 드러난다. 일례로 지방 소녀 미즈하는 도쿄 소년 타키와 몸이 바뀔 때마다 카페에 가서 비싼 디저트를 사 먹는다. 자기 동네에서는 “카페에 가자”는 제안이 곧 ‘자판기 커피 사 마시자’는 의미로 해석될 만큼 젊은 층을 위한 시설이 부재했던 반면, 도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페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왼쪽) 미즈하의 동네에서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음료는 대부분 미리 제조된 RTD다. (오른쪽) 그러나 타키로 몸이 바뀐 후에는 도쿄에 있는 세계적 카페에서 즉석으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IMDb]
실제 일본에서는 시골은 물론 지방 소도시에서까지 경제적 낙후가 심화하면서, 지방 소외 현상을 해결하는 게 국가적 과제가 됐다. 아무래도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에서 ‘쇼핑 난민’이나 ‘식품 사막’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유통시설이 지역을 떠나기 때문에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더 먼 동네를 찾아야 하는데, 대중교통마저 하나둘 운행을 줄이면서 장보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식료품을 실은 이동 판매 차량을 운행하는 등의 대책이 실시되고 있다. 한국도 고령화에 따른 지역 간 격차가 심각한 문제가 된 만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지방에서 식품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식품 사막’ 현상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물론 유통사까지 나서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식품 사막 현상을 방치하면 지방의 인구 유출이 더 심해지고, 이에 따라 상업시설도 운영을 종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진은 BGF리테일이 시니어를 위한 이동형 편의점을 운영하는 모습 [BGF리테일]
경제 포인트2: “거래처 사장님 이름 기억 못 하면 낭패”…명함 정리 기술의 변천사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살펴볼 부분은 이름을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서로 이름을 잊게 되면 대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름을 잊는다고 재해가 일어나지야 않겠지만, 개인이나 기업 차원에선 끔찍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비즈니스적으로 중요한 상대방의 이름을 헷갈린다면 큰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패션업계의 냉혹한 경쟁을 다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잡지 신입직원 앤드리아(앤 해서웨이)가 기회를 얻는 데도 이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이 주최한 행사에서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참석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자 앤드리아가 귓속말로 속삭여준 것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드리아가 미란다의 귀에 대고 파티 참석자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IMDb]
그래서 비즈니스계에선 남의 이름을 더 잘 기억하게 해주는 상품들이 인기가 많았다. 1950년대에 뉴욕 문구 제조업체 제퍼 아메리칸은 롤로덱스라는 명함 정리기를 내놨다. 20개 이상의 인덱스를 두고 600장 이상의 명함을 정리하게 하는 방식으로 사업가와 영업사원에게 각광받았다. 심지어 롤로덱스를 두고 직원과 회사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롤로덱스에 정리해둔 정보 가치가 높다고 생각해 퇴사한 직원과 회사 간 갈등이 생긴 것이다.
다양한 인덱스를 가지고 수많은 명함을 정리할 수 있는 롤로덱스 [위키피디아]
요즘엔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서 명함 정리가 보다 수월해졌다. 2010년대 중반부터 주목받은 명함 관리앱이 대표적이다. 앱에 명함 사진만 올려두면 운영 업체의 타이피스트가 수기로 대신 입력해주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사진 속 텍스트를 인식하는 OCR(광학문자인식) 기술과 AI가 만나 더 정확하고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이제는 스마트 글래스를 통해 남의 이름 기억하기가 더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은 스마트 안경에 네임 태그라고 불리는 얼굴인식 기능을 탑재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를테면 회의장에 누군가 들어왔을 때 스마트 글래스가 ‘A회사의 홍길동 씨입니다’라고 속삭여줄 수 있을 것이다. 앤드리아(앤 해서웨이)가 미란다(메릴 스트립)에게 해주던 역할이 필요 없어질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기능은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을 뿐 아니라 시민 감시에 악용될 우려도 제기된다. 이용자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뇌의 일정 영역이 퇴화하는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 남의 이름을 어떻게든 기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17일 미국 실리콘밸리 메타 본사에서 열린 ‘메타 커넥트 2025’ 행사에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스마트 글래스를 써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경제 포인트3: 지하철역 이름에 무슨 병원이 이렇게 많아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들은 상대방 이름을 기억하려는 만큼 자기 이름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실제 산업계에서도 자기 이름을 남에게 명확히 인지하게 하는 건 중요한 작업이다. 기업은 사명을 바꾸고, 또 자기 이름을 곳곳에 노출한다. 지하철역 이름의 매매도 이와 같은 차원에서 이뤄진다. 자사 명칭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은 기업의 욕구와 수익 구조를 개선하려는 교통공사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성수역에 무신사가 병기되고, 여의도역에 신한투자증권이 병기되는 식이다.

최근 부산교통공사가 실시한 부기역명 입찰에서는 무려 5곳이 병원으로 선정됐다. 병원은 실제로 가보기 전엔 서비스 질을 판단하기 어렵고, 그래서 이름 홍보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효과가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러다 보니 부산에서는 상당수 부기역명이 병원으로 채워지는 현상이 보인다. 부산이 병원의 도시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역명을 판매할 때 단순히 교통공사의 수익성만 볼 게 아니라 공익성을 함께 반영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무신사가 병기된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 표지판 [무신사]
경제 포인트4: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내 회사에 내 이름도 붙이지 못하고
올해엔 이름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에스티로더가 영국 향수 기업가 조 말론이 신규 사업을 하면서 조 말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자기 사업을 하면서 본인 이름을 썼다고 소송당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왜 발생했을까.

사연은 이렇다. 영국 조향사인 조 말론은 1994년 조 말론 런던을 시작했다. 이 향수가 자연스러운 향으로 인기를 끌면서 승승장구했다. 1998년엔 뉴욕에 진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고, 1999년 에스티로더가 조 말론 런던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조 말론은 본인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와 이름 사용권을 에스티로더에 함께 매각했다.

영국 유명 조향사 조 말론 [신세계인터내셔날]
그런데 조 말론이 최근 패션 브랜드 자라와 협업하면서 조 말론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인수합병(M&A) 당시의 계약을 위반했다는 게 에스티로더가 소송을 제기한 취지다. 조 말론은 2011년부터 새 향수 브랜드인 조 러브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작년 패션 브랜드 자라가 조 러브스와 협업 상품을 내놓으면서 ‘조 말론이 만든 제품’이라는 문구를 쓴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조 말론은 자기 이름에 대한 권리를 넘긴 것을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해왔다. 이번에 또 한 번 뼈저린 후회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메모장으로 이용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남녀 주인공 [IMDb]
씨네프레소 한 잔: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의 힘
오늘 ‘너의 이름은.’과 관련한 다양한 경제 포인트를 살펴봤다. 동시대의 고민을 담아 제작한 영화인 만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현실과 비교해볼 만한 지점이 다양한 작품이다. 물론 경제적 맥락을 제외하고 우리 삶에 적용해 볼 만한 메시지도 있다. 이 영화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의 힘을 보여준다. 인간은 가슴 아픈 과거를 두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애써 잊어버리려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적어내고 떠올리려는 노력은 인간을 더 성숙하게 한다. 작품은 이처럼 외면하고 싶은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너의 이름은.’ 포스터 [IMDb]
‘매경 뒤 시네마’는 OTT에서 감상 가능한 영화 속 경제 이야기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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