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 전쟁해 돈 번다지만…‘천궁-Ⅱ 대박’ 안 쓴 이유
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원유 수급과 방산을 계속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1800만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기로 했다고 브리핑하다가, ‘아랍에미리트와 방산 관련 협의를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일부 매체들은 ‘아랍에미리트가 방공무기 천궁-Ⅱ에 감동해 한국에 원유 공급 0순위를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는 한국과 천궁-Ⅱ 10개 포대 도입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까지 2개 포대가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Ⅱ는 북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개발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이다.
이달 초 일부 매체가 정부와 군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아랍에미리트를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을 때 에미리트의 천궁-Ⅱ가 요격률 90% 이상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확인한 결과, 아랍에미리트에 배치된 천궁-II 2개 포대가 이란의 미사일, 드론 복합 공격을 96% 명중률로 요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후 ‘천궁-Ⅱ가 첫 실전 투입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거나 ‘천궁-Ⅱ가 실전 상황에서 90%가 넘는 명중률을 달성해 향후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케이(K)-방산 대박 신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한겨레도 이달 초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아랍에미리트에서 천궁-Ⅱ가 이란 미사일을 90%가 넘게 요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기사를 쓰지 않았다.
먼저 ‘천궁-Ⅱ요격률이 90%가 넘는다’는 주장은 개연성은 있지만 사실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방공망은 미국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패트리엇, 한국산 천궁-Ⅱ, 이스라엘산 애로와 바라크-8 등 다층방어망으로 짜여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방부는 이란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드론 공격에 맞서 방공망을 총동원해 90% 이상의 요격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천궁-Ⅱ가 속한 아랍에미리트 전체 방공망 요격률이 90%를 넘으니 천궁-Ⅱ 요격률도 90% 이상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전체 방공시스템의 요격률을 발표할 뿐, 개별 방공미사일의 요격률을 밝힌 바 없다.
한겨레는 ‘천궁-Ⅱ요격률 90% 이상’이란 주장을 서로 다른 정보 출처나 취재원에게 교차 검증하기가 어렵다고 봤다. 확인이 안 된 추측을 사실처럼 쓰는 것은 저널리즘 기본에서 벗어난 일이다.

‘이란 미사일 요격률이 90%가 넘는다’’는 아랍에미리트 국방부 발표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쟁 당사국들은 군사적 피해는 축소하고 성과는 과장한다.
1991년 걸프전 때 미국 패트리엇이 이라크 스커드 미사일을 거의 완벽하게 요격했다며 유명해졌지만 패트리엇의 실제 요격 성공률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전쟁 중 미국 정부는 미 의회에 사우디 상공에서 89% 수준으로 요격에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1992년 미 의회조사국, 회계감사원 등이 작성한 걸프전 당시 패트리엇 미사일 성능 조사 보고서는 ‘패트리엇이 요격한 44발의 스커드 미사일 중 0~4발을 명중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현재 패트리엇 성능은 걸프전 때 사용했던 미사일 시스템보다 크게 개선됐다.
과거 실전 상황에서 패트리엇 요격률 논란을 고려하면, 아랍에미리트 국방부가 발표한 ‘전체 방공망 요격률 90% 이상’ 에 기반해 천궁-Ⅱ 요격률도 90%가 넘을 것이란 추정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쟁으로 중동 곳곳에서 사람이 죽고,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진 상황에서 ‘천궁-Ⅱ의 경이적 실전 요격률로 케이(K)-방산 대박’ 기사를 쓰는 것은 초상집 옆에서 잔치를 벌이는 일이다.
이란 남부 소도시 미나브 초등학교 공습에 대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꿈과 희망을 품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들이 있었다. 오늘 그들의 삶이 참혹하게 막을 내렸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썼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은 “전쟁을 산업적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을 절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전 원장은 “많은 언론인과 전문가들이 요즘 ‘케이-방산 대박’이라고 자주 표현한다.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는 전쟁 참화를 세계인이 목격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돈 벌 기회로 바라보는 나라를 외국에서 어떻게 볼까. 방위산업에 대한 흥분된 논평을 절제하고 차분한 메시지로 접근해야 방산 산업 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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