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6천만년 전 솟은 1만 봉우리…신들의 놀이터인가
협곡 잇는 세계 최고 다리
가난한 오지, 상전벽해
광활한 유채꽃밭에 압도
명주 마오타이주에 황홀

높다. 넓다. 진하다. 중국 구이저우성 여행을 압축하는 세가지 열쇳말이다. 중국 서남부에 있는 구이저우성은 중국 내에선 오지로 알려진 데다. 성도는 구이양. 한자로는 ‘귀양’(貴陽)인데 ‘양지바른 귀한 곳’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약 17만6천㎢로 중국 전체 성 중에서 중위권 정도 크기다. 2020년 기준 구이저우성 인구는 대략 3800만명을 넘었다. 이 중 먀오족, 부이족, 둥족, 투자족 등 소수민족 수는 약 1400만명으로 성 인구의 36%를 차지한다. 이들은 한족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왔다.
구이저우성은 한때 멸칭처럼 따라다녔던 ‘가난한 오지’란 타이틀을 이젠 벗으려 한다. 최근 몇년간 관광 콘텐츠를 강화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식 연구차 여러차례 구이저우성을 방문해온 배화여대 교수이자 ‘계향각’ 주인 겸 요리사인 신계숙 중식 대가는 “상전벽해 했다”며 “먹고 놀기 좋은 데가 됐다”고 웃으며 말한다. “직항편이 없어서 아쉽지만 일단 구이저우성에 가면 토속적인 볼거리가 많고 소박해 좋은 여행이 된다”고 했다. 지난달 세가지 열쇳말을 풀기 위해 구이저우성으로 향했다.


지난달 2일 이른 아침 도착한 화장협곡대교엔 안개가 떠돌고 있었다. 첫번째 열쇳말 ‘높다’를 풀어낼 데다. 자세히 보면 구름인가 싶기도 한 안개였다. 아니, 구름일 게다. 다리를 감싼 운무의 정체가 가늠이 안 됐다. 높아서다. 베이판강 위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의 높이는 무려 625m다. 화장협곡에서 교량 상판 바닥까지의 높이니, 수면에서 따지면 높이는 더 올라간다. 교량·관광 융합 프로젝트 마케팅팀 리찬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긴 다리이며 세계 최고 산악 협곡 교량”이라고 말했다. 2022년 1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9월께 완공됐다. 총 길이는 2890m, 주탑 사이 거리는 1420m, 강철 상판의 무게는 약 2만2천t이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3개를 합친 무게다. 다리의 생명선인 강철 케이블 가닥의 총 길이는 9만3천㎞로 지구 적도를 두바퀴 감쌀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본래 교량의 역할은 원활한 교통이다.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잇고 저쪽 지역 사람과 이쪽 동네 사람을 엮어 인간의 미덕인 소통과 연대를 하게 하는 게 목적이다. 화장협곡대교는 임무가 하나 더 있다. 척박한 농촌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특단의 장치다. 개통한 지 몇달 되지 않았는데 여행객이 많다. 리찬은 개통 이후 월평균 32만명이 다녀갔다고 했다. ‘가장’이란 수식어에 여행객들은 빨려들었다. 신묘한 바람이 슬쩍 뺨을 만지고 가면 눈을 감게 된다. 거대한 위용에 자신은 그저 한낱 모래알이란 생각이 든다.


이날 안개가 좀처럼 걷히지 않은 우울한 날씨는 중국 에스에프(SF) 소설 ‘삼체’(류츠신 지음)가 던진 우주와 인간의 간극, 그 비극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망대에 오르는 길도, 전망대도 여행지였다. 전망대 바닥은 강화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 위에 서면 아찔한 협곡이 보인다. 공포가 밀려온다. 두려움도 여행 콘텐츠다. “다리가 생기기 전 양쪽 지역은 2시간 걸려 오갔는데, 이젠 1~2분이면 통과합니다. 류즈에서 안룽을 잇는 고속도로의 핵심이죠.” 리찬은 이어 ‘화장협곡’의 별명이 ‘지구의 균열’이라고 했다. 균열을 메우는 다리다. 그의 자랑이 이어졌다. “구이저우는 ‘세계 교량 박물관’으로, 약 126만개 봉우리마다 교량 건설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며 “그들은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3만개 넘는 교량이 산과 계곡을 넘나들고 있다”고 했다.


두번째 열쇳말은 ‘넓이’다. 지난달 4일 완펑린(만봉림) 지역에 도착했다. 싱이시에 있는 이곳은 카르스트 산악지대의 절경을 드러냈다. 약 3억6천만년 전 형성된 지질층이다. 예부터 ‘묘족은 산에 의지하고 부이족은 물에 의지한다’란 말이 내려온다. 이곳은 부이족의 거주지다. 수자원이 풍부한 농토에 자리 잡은 부이족의 삶은 목가적이다. 논과 밭, 마을 길 사이로 아담한 봉우리들이 치솟아 있는데, 1만개가 넘어 보인다. 이름의 유래다. 그 앞에 광대한 유채꽃밭이 조성돼 있었다. 넓다. 너무 넓다. 이날 만난 한국인 관광객 채금묵(62·전남 순천) 공인중개사 겸 행정사도 비슷한 감상을 말했다. “광활한 유채꽃밭이 생소한 느낌을 주면서 신선했고 넓이에 압도당했다”며 “제주 유채꽃밭이 아기자기하다면 이곳은 평원이라서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여행 안내원은 완펑린 전체가 ‘천연 산소 카페’라고 자랑했다. 3㎤당 음이온 함량이 3만개에 이른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과장된 설명에 웃음이 나왔지만 이 또한 중국 여행의 맛이다. 완펑린 지역엔 자연적으로 형성된 논 팔괘전(八卦田)과 부이족이 만든 ‘복(福) 자 논’이 있다. 품종이 다른 유채로 만들었다. 매년 3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약 300개의 민박집이 있고, 가격은 대략 100~3천위안(약 2만~64만원)으로 다양하다.



마지막 열쇳말은 ‘진한 향’이다. 지난달 5일 런화이시 마오타이진을 찾았다. 성도 구이양에서 약 216㎞ 떨어진 곳이다. 중국 무협 소설 ‘소오강호’의 주인공 화산파 영호충의 애장품 술 호리병이 나무마다 걸린 듯 술 향이 진동했다. 마오타이진의 명물은 구이저우성을 대표하는 마오타이주다. 딱 3가지 재료로만 만드는 중국 고급 백주다. 수수와 밀로 만든 누룩, ‘츠수이허’(붉은 물이 흐르는 강)의 물이 재료다. 츠수이허는 윈난성에서 발원해 구이저우성과 쓰촨성을 지나는 창장강의 지류다.

여행객은 술문화박물관단지 ‘국주문화성’에서 마오타이주 여행을 시작한다. 입장료는 1인당 60위안(약 1만2천원)이다. 술과 애주가를 형상화한 석상이 즐비하다. 마오타이주의 제조 과정과 재료 설명이 전시돼 있다. 때가 끼고 낡은 초창기 마오타이주의 황홀한 역사도 관람한다. 신분을 상징하는 술잔도 볼 수 있다. 그 모양이 화려하고 정교하다. 박물관 학예사는 “마오타이주 누룩은 가장자리는 단단하고 가운데는 헐거운 형태로 발효에 최적화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볏짚단 사이에 넣은 누룩은 40일간 발효 과정을 거친다. 그는 마오타이주 제조 키워드로 숫자 4개를 꼽았다. ‘2, 9, 8, 7’이다. 2는 두번 원료를 투입한다는 뜻이다. 낮은 해발에서 자란 수수와 높은 해발에서 자란 수수가 각각 다른 때에 재료로 들어간다. 9는 아홉번 증류한다는 말이다. 8은 여덟번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다는 소리고, 7은 일곱번에 걸쳐 술을 받아냈다는 뜻이다. 최소 5년이 지나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술이 완성된다고 한다.



중국 백주는 향과 숙성 기간, 제조 방법에 따라 농향, 장향, 청향, 미향으로 나뉜다. 마오타이주는 장향형이다. 술 마시는 동안 술이 깨는 신묘한 재주를 부린다. 현재 31개 작업장에서 793팀이 연간 5.68만t을 생산한다. 1930년대 마오쩌둥이 장제스의 국민당과 싸울 때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주민들은 상처 처방책으로 마오타이주를 건넸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더 유명한 술이다. 각종 국가 행사에 등판해 외교관 노릇도 했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최근 추락하는 인기 등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술이다. 공장엔 전시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파는 마오타이주도 결코 싸지 않다. 500㎖가 대략 50만원 한다.


국주문화성 안에 있는 제조장에선 실제 수수를 찌고 섞는 과정을 볼 수 있다. 1862년에 세워진 제조장이다. 이날 제조장에선 맨발로 찐 수수가루를 정리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찐 지 오래되지 않아 온도가 높을 게 뻔한데도 이들은 맨발로 작업했다. 이어 시음회가 열렸다. 마오타이 계열 장향 백주인 ‘금전주장’ 생산 책임자인 쩡리 회장이 진두진휘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술을 적게 먹는 문화 확산에 관해 물었다. “마오타이도 마오타이 아이스크림을 만들면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가짜가 많다는 루머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오해인데, 그래도 큐알코드 아래 반짝이는 라벨을 잘 확인해보라”고 했다. 예로 보여준 술은 그가 책임지는 금전주장이었다.
구이저우성엔 ‘맑은 날이 3일 이어지지 않고, 평평한 땅이 3리도 안 되며, 사람들에게 3푼의 돈이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銀)란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 옛말이 됐다. 맑지 않아도 높은 데서 해를 영접하고, 평평하지 않아도 유채꽃밭이 만든 평원이 있으며, 마오타이주로 쌓은 부가 사람들 주머니를 채우는 곳이 구이저우성이다.
구이저우성(중국)/글·사진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매운맛과 신맛의 신묘한 조화
구이저우성의 맛
‘계향각’을 운영하는 중식 대가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는 구이저우성 음식 전문가다. 서울 후암동에서 요리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10여년 전에 이미 구이저우성 미식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그가 말하는 구이저우성 음식, 첸차이(黔菜) 얘기를 들어보자.
“중국에서 가난한 동네로 치지만 산이 많고 물이 좋기로 소문난 데”라며 “세계적 명주 마오타이주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 동네”라는 게 신 교수의 생각이다. 흔히 기후가 지역 음식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구이저우성은 맑은 날이 많지 않아 추운 편이다. 이런 이유로 식탁에 항상 기름기 있는 음식이 오른다. 가장 큰 특징은 매운맛과 시큼한 맛의 절묘한 조화다. “구이저우성 사람들은 매운맛과 신맛을 좋아하는데 3일 동안 신맛을 안 먹으면 다리가 꼬여 못 걷는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대표 음식은 ‘쏸탕위’(酸湯魚)다. 구이저우성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이다. 특이하게 비릿한 메기 같은 민물생선과 토마토가 재료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재료가 펼치는 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생선은 물기 없이 저장해뒀다가 토마토와 함께 발효 소스가 넉넉한 탕에 넣어 끓여낸다. 쓰촨성처럼 이곳도 훠궈가 인기다. 하지만 쓰촨성 훠궈와는 맛이 조금 다르다. 향신료 화자오로 낸 맛이 아니다. 지역 고추나 야생식물이 재료다. 신 교수는 “귀여운 매운맛”이라고 했다. 야생식물 어성초는 우리네 김치처럼 식탁에 늘 오른다. 날것 그대로 식물을 씹는 듯한 맛이 나 다른 지역 중국인들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먹을수록 매력이 넘친다. 신 교수는 “체력을 보강하는 약식동원의 개념”이라고 덧붙인다. ‘쓰와와’(丝娃娃)도 대표 음식이다. 밀전병에 각종 채소와 고기 등을 싸서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소스는 매콤하다.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의 마오타이주 공장 인근에 있는 식당 ‘마오타이 메모리스’(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 창정로 69번지)에선 각종 첸차이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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